모둠회 접시에는 다양한 종류의 생선회가 담겨 있으나 일반 소비자들은 각각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생선회를 맛있게 먹으려면 우선 자신이 먹는 생선의 이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름을 알면 종류별 맛의 차이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생선회의 참맛을 보려면 생선과 채소를 따로 먹어야 한다. 생선회를 마늘, 초고추장, 풋고추 등과 함께 쌈을 싸 먹으면 생선회 고유의 맛이 마늘의 강한 향에 가려지고, 채소가 생선 씹는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때문. 생선회 고유의 맛도 느끼고, 산성 식품(생선회)과 알칼리성 식품(채소)을 균형 있게 섭취하려면 생선회와 채소를 따로 먹는 것이 좋다.
참치회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참치회에는 으레 김과 참기름이 따라 나온다. 그러나 참치를 김에 싸서 먹으면 김의 독특하고 강한 냄새 성분(황화수소, 메틸디슬파이드, 유기산 등)과 맛(아미노산, 이노신산 등)이 참치회의 고유한 맛을 가려버린다. 참기름 역시 진한 향이 참치회 고유의 맛과 향을 희석시킨다. 참치회는 한 점씩 고추냉이(와사비)에 찍어서 먹는 것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생선회 양념장은 보통 고추냉이를 푼 간장과 초고추장, 된장, 이 세 가지다. 흰살 생선회는 톡 쏘는 성분이 비린내를 없애줄 뿐더러 항균작용을 하는 고추냉이 소스와 가장 잘 어울린다. 지방이 많은 생선회는 선도가 빨리 저하되고 좋지 못한 냄새를 풍기므로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 좋다. 된장의 콩 단백질과 카르보닐 화합물이 냄새를 제거하기 때문. 오징어, 굴, 멍게 같은 연체류와 패류는 초고추장과 잘 어울린다.
생선요리에 레몬즙을 뿌리는 것은 생선의 선도가 떨어지면 알칼리성 물질인 암모니아, 아민 등의 좋지 않은 냄새 성분이 나오므로 이를 산성인 레몬즙으로 중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또한 레몬즙은 짠맛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아 생선을 염장해 보관할 때 생선요리에 자주 쓰였다.
하지만 생선회는 활어를 조리한 것이므로 중성(pH 7.0)이고 비린내가 거의 없다. 중성의 생선회에 강산성(pH 2.4)의 레몬즙을 뿌리면 생선회 고유의 맛이 레몬향에 가려진다. 레몬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레몬즙을 생선회에 직접 뿌리지 말고, 양념장에 뿌리는 것이 좋다.
순서대로 먹자

생선회 먹는 순서
생선회마다 써는 법도 다르다. 육질이 단단한 어종은 얇게, 육질이 연한 어종은 두껍게 썰어야 씹는 맛을 최상으로 느낄 수 있다. 육질이 가장 단단한 복어는 ‘나비 날개처럼’ 쟁반의 무늬가 보이도록 얇게 썰어서 펼친다. 얇게 썬 복어회를 양념장에 찍은 다음 입에 넣고 혀로 굴리면서 맛보는 담백함과 씹을 때의 쫄깃쫄깃함은 가히 일품이다. 흰살 생선인 넙치, 조피볼락, 농어 등은 5~10mm로 썰고, 방어와 참치 등 육질이 연한 붉은살 생선은 10~20mm로 두껍게 썰어야 씹히는 맛이 좋다. 단 기름기가 많은 참치의 뱃살은 보통 두께인 5mm 정도로 썰어야 느끼하지 않다.
“생선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은?” 하고 물으면 한국 사람은 대부분 ‘소주’라고 답한다. 반면 일본인은 정종이 생선회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소주와 정종은 각각 희석주와 발효주로 제조방법이 다르고, 알코올 도수도 23도와 13도로 차이가 난다. 단백질 식품인 생선회는 술에 취하는 속도를 완화하고 숙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생선회가 술안주로 제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횟집의 광경을 떠올려보자. 주요리인 생선회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부요리(쓰케다시)를 안주삼아 소주잔이 돌아간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른 다음엔 오감(五感)이 무뎌져 생선회 맛을 느끼기에 역부족이 되어버리고 만다. 고가인 생선회가 중저가인 술의 안주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종류별로 생선회 맛을 충분히 본 다음 소주를 곁들이면 생선회 맛을 즐길 줄 아는 미식가가 될 뿐 아니라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생선회는 쇠고기 안심이나 등심에 뒤지지 않는 비싼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짐한 무채 위에 얹어진 생선회를 보면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 무채를 깔지 않은 ‘누드회’를 파는 곳도 있다. 그러나 생선회 밑에 까는 무채는 생선회를 보기 좋게 하고, 습기를 적당히 머금고 있어 생선회가 건조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일부에선 무채가 지방의 산화를 막고, 염분을 흡수하며 항암작용까지 한다고 선전하기도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된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