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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⑨

월왕 구천의 복수와 오왕 부차의 몰락

‘와신상담’앞에 무너진 ‘2세 심리’의 부조리

  • 박동운 언론인

월왕 구천의 복수와 오왕 부차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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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합려가 강대국인 초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위세와 권위의 후광이 국내외에 걸쳐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역할 분담에 바빠 한때 흩어졌던 오자서와 손무 등 두뇌집단(싱크 탱크)이 많은 경험을 쌓고 다시 밤낮으로 일당에 모여 앉게 된 강점이 있었다.

초군이 보복에 나서자 오군은 수륙 양쪽에서 맞받아쳐서 이를 격파했다. 공포에 질린 초나라는 후퇴해 수도를 200km나 떨어진 곳으로 이전시켰다.

한편 북방의 제나라가 비우호적인 동향을 보이자 합려는 정벌 계획을 세웠다. 역시 공포에 질린 제나라는 화친정책으로 전향했다.

그러한 위세를 믿은 합려는 노경에 접어들면서 사치스러운 유락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동안 태자 파(波)가 병사했다. 왕실의 급선무로 새 태자 선정 문제가 부각됐다.

후계자 문제와 ‘2세 심리’



계승 순위의 상식으로는 죽은 태자의 동생인 부차(夫差)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합려의 눈은 달랐다. 부차는 ‘우둔한 편이고 착하지도 않다(愚而不善)’고 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신민이 우러러보며 따르지도 않을 것이고, 국가 유지가 곤란하리라고 걱정한 것이다.

합려의 견해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정확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주 또는 집권자의 자질로는 ‘슬기롭고 착하다’면 그만이다. 경력이니 학력이니 모친이니 업적 등을 따져봤자 ‘지도자 선출의 오류’로 연결될 따름이다. 국민의 불행과 정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기야 슬기롭지 못하고 약간 ‘우둔한 편’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라도 자위본능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하려 한다. ‘눈치보기’의 능력만은 나면서부터 갖추고 있다. 부차도 부왕이 후계자 지명, 즉 태자 옹립에 관해 자기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느끼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왕을 수시로 만나고 신임도 두터운 오자서에게 아부해 도움을 얻고자 결심했던 것이다.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자기가 태자가 될 수 있도록 진언해주면 일생 그 은혜에 보답하겠다느니, 나라의 절반을 할애해도 좋다느니 하며 백방으로 오자서의 마음을 흔들었다. 마침내 오자서는 그 결사적인 열의와 정성에 지고 말았다. 오자서야말로 군주나 그 유망주의 호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겪지 않았던가. 하루는 합려왕의 자문이 떨어졌다. 오자서가 부차를 천거했음은 물론이다.

합려 : “부차는 총명하지 못한 데다 착하지도 않다. 그가 국왕으로 등극하면 국운이 위태로울까 걱정이다.”

오자서 : “황공하오나 혹시 성급하게 사려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현명하고 인자하십니다. 그리고 예부터 후계자 선정을 에워싼 분규를 예방하려면 순서를 고려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합려 : “경의 진언을 경청하는 뜻에서 재고해보지.”

합려는 뾰족한 대안도 없는 터라 결국 오자서의 건의를 수용하고 만다.

이 경우 합려의 오판은, 비록 부차에게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오자서를 비롯한 중신들이 호의를 갖고 보좌하면 큰 탈이 없을 거라는 헛된 희망으로 요약된다. 새 군주와 중신 사이의 모순, 중신 상호간의 암투 가능성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오자서는 2세 후계자의 심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오자서는 부차가 국왕이 되면 그를 천거해준 자기의 은혜를 깊이 명심하여 행동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2세 심리’라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후계자 경쟁을 뚫고 집권한 2세는 자기의 등극은 자신이 우수하거나 최소한 운세가 좋아서 이뤄진 것이지, 결코 어느 누구의 은혜나 덕분 때문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다. 이는 권력의 자체 확인, 그리고 집권 후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압박감과 불안감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심리다. 요컨대 ‘2세 심리’에서 은혜란 명심 대상이 아니라, 망각 대상이 되고 만다. 이러한 심리적 편향을 극복하는 힘은 오직 슬기로움에서 샘솟을 따름이다. 부차는 바로 그러한 지혜가 모자랐다. 합려가 일찍이 걱정한 바와 같다. 그러한 결함이 망국(亡國)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애병필승(哀兵必勝)의 도리

그 무렵 이웃 월나라에서는 국왕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句踐)이 왕위에 올랐다. 한편 오왕 합려는 이에 편승하여 월나라를 정벌코자 수만 대군을 동원했다. 소식을 듣고 격분한 구천은 오나라를 향해 진군했다. 취리라는 곳에서 양군이 격돌했는데 결과는 오군의 참패였다.

전투의 와중에 월나라의 한 대부(大夫)가 오군의 본영을 습격, 세모창으로 합려왕의 신발을 뚫고 엄지발가락을 잘랐다. 합려는 아픔을 참으며 수도 가까이로 후퇴했다. 겨우 전투대형은 재정비했으나, 부상이 악화된 합려는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는 새 태자인 부차를 머리맡으로 불렀다.

합려 : “월군이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잊지 말아라.”

부차 :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3년 안에 꼭 복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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