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우종창 기자 통해 5000만원 받았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9-28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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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투자기업 S투자평가원 정모 사장(41)은 2002년 12월18일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최근 정 사장은 측근을 통해 대통령 직속 국가청렴위원회(위원장·정성진, 장관급)에 부정행위를 신고했다.

    “모 월간지 우종창 기자를 통해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에게 자금을 제공했으며 한나라당 현역 Q의원에게 도 청탁자금을 줬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신고서엔 “신흥 조직폭력단체인 ‘전주월드컵파’가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기업사냥에 나서 사회적인 폐해가 크다”는 제보도 있었다. 정 사장은 “조직폭력단체 사이에 기업사냥은 새로운 유형의 이권(利權)사업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으며 여야 정치권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들의 기업사냥 과정에 자신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다는 게 그의 항변이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전주월드컵파와 관련된 신고 내용은 서울중앙지검에 넘겼고, 현재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 관련 신고 내용에 대해서는 내사 중인데 조만간 검찰 이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가청렴위원회 담당자는 “신고서가 접수된 뒤 정 사장을 조사했다. 그로부터 ‘한나라당 전현직 중진의원들에게 거액을 줬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가청렴위에 “거액 제공” 진술

    정 사장측은 국가청렴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기자에게 제보했다. 정 사장이 옥중에서 작성한 서신의 사본도 제공됐다. 그때까지 정 사장은 ‘신동아’와는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다. 정 사장은 서신에서 “옥중에서 ‘신동아’를 몇 차례 읽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사장측의 제보가 구체적인 데다 매우 공적인 사안이라 사실 확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9월6일 기자는 정 사장을 면회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2002년 4월13일 시작)을 앞둔 시점에 모 월간지 우종창 기자의 제의로 최병렬 당시 후보에게 거액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총선 출마에 대비한 공천 헌금 명목으로 최 의원에게 돈을 줬다. 돈이 전달된 뒤 최 의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2002년 전국 12개 지역에서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4월13일 인천 경선에서 시작되어 5월9일 서울 경선으로 종료됐으며, 이회창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전국 누적 득표에서 1만7481표(득표율 68%)를 확보했고, 최병렬 후보는 4694표(18.3%)로 2위에 올랐다. 이부영 후보와 이상희 후보는 각각 2926표(11.4%), 608표(2.4%)를 얻었다.

    “정치권에 이용당했다”

    다음은 정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국가청렴위에서 ‘우종창 기자를 통해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거액을 줬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종창 기자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모 박사의 소개로 2000년 말쯤 처음 만났습니다. 한 박사는 북한문제 전문가여서 우 기자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후 식사자리를 몇 차례 가지면서 우 기자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저는 벤처투자사를 설립해 업계에서 주목받는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돼 한때 개인 재산이 100억원쯤 됐습니다.”

    -최병렬 전 대표에게 경선자금을 제공한 경위는.

    “우종창 기자와 대화하던 중 내가 ‘정치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우 기자는 ‘최병렬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려고 하는데, 만약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면 지금 최 의원을 도와주는 게 낫다. 최 의원은 한나라당 실세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01년 10월 중순 서울 여의도 일식집에서 우 기자와 함께 최 의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최 의원의 절친한 친구 사무실에서 최 의원의 친구에게 5000만원을 주었습니다. 당시는 한창 ‘이회창 대세론’이 뜰 때라 한나라당이 집권할 줄 알았어요. 돈을 전한 뒤 최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고맙다’고 해 그 돈이 최 의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와 별도로 최 의원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정 사장은 돈을 준 횟수, 시점, 액수, 전달 방식 등 당시 정황을 설명했으나 우 기자는 “5000만원 외엔 정 사장에게서 최 전 대표측으로 전달된 돈이 없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보도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양쪽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액수 차이가 있어 추가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 기자의 제의로 최 전 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나는 현금을 제공할 때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당일 은행에서 출금해 직원을 시켜 돈을 전달하곤 했습니다. 최 전 대표에게 돈을 줄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 기자에게 별도로 돈을 줬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압니다.

    “2002년 2월 우종창 기자에게 5000만원을 줬습니다. 우 기자는 자신의 아파트 전세를 얻는 데 그 돈을 보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 전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도록 힘을 써줬습니까.

    “내가 2002년 12월18일 구속됐고 다음날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기 때문에 나의 공천문제가 거론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구속되면서 사업도 망했습니다. 구속된 후 최 전 대표나 우 기자가 외면해 비애를 느꼈습니다. 돈만 받아간 뒤 외면하니 나로선 그들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 기자는 최근 500만원을 입금했으며 ‘아파트 전세를 빼서 돈이 생기면 나머지 금액도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한나라당 당사에서 청탁자금 줬다”

    -최 전 대표 외에 ‘한나라당 중진 모 의원에게도 1억1500만원 상당의 현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더군요.

    “회사를 경영하는 장인이 모 구청에서 발주하는 관급공사를 수주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모 박사를 통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으로 알려진 Q의원을 소개받았습니다. Q의원이 공사를 수주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 2001년 8월30일경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내 한 사무실에서 내가 직접 Q의원에게 1000만원을 줬습니다. 현금을 300여 만원씩 은행봉투에 담은 뒤 봉투들을 쇼핑백에 넣어 건넸습니다. 이후 사람을 시켜 세 차례에 걸쳐 3000만원을 더 줬습니다.

    그밖에도 서울 광화문 부근 고급 유흥업소인 J주점 등에서 열다섯 차례에 걸쳐 7000만원 상당의 향응을 Q의원에게 제공했습니다. 계산은 제 신용카드로 했으며 그 자리엔 종종 다른 사람들도 참석했습니다(정 사장의 측근은 ‘정 사장이 한나라당 의원을 접대하는 자리에 4성 현역 장군이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 장군이 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정 사장은 ‘이회창 대세론’의 위세를 실감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현금과 향응은 모두 대략 2개월 사이에 제공된 것입니다.”

    -Q의원은 관급공사를 수주할 수 있게끔 노력했습니까.

    “전혀 노력하지 않았으며, 내가 구속된 뒤로는 내가 보낸 사람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정치권에 이용당하고 속은 것 같습니다. 깊이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 측근을 통해 국가청렴위원회에 신고하게 된 것입니다.”

    답변 태도에 비춰 정 사장은 구속된 처지에서 이 같은 내용을 신고할 경우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 사장을 면회한 지 이틀 후인 9월8일 오후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우종창 기자를 만났다. 그에 앞서 이날 오전 우 기자에게 전화해 정 사장의 증언 내용을 소상하게 전한 터였다.

    우 기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2002년 초 나의 제의로 정 사장의 돈 5000만원이 최병렬 전 대표에게 경선자금으로 제공됐다”고 밝혔다. 우 기자의 증언은 구체적인 부분(최 전 대표의 친구 회사 사무실에서 돈이 건네졌다는 점 등)에서도 정 사장의 증언과 일치했다.

    우 기자, “법 위반일 수도”

    다음은 우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정 사장은 한모 박사의 소개로 우 기자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한 박사는 독일 유학 중 북한 공작망에 포섭돼 북한에 들어가 교육을 받은 뒤 한국에 왔다가 1990년대에 자수했습니다.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이 ‘한총련 배후세력’ 발언을 한 것도 한 박사를 통해 얻은 정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 박사를 취재원으로 자주 만났는데 그가 정 사장을 내게 소개해 줬습니다. 정 사장은 부장 판사 출신인 부친(작고)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성장해 성품이 바르다고 판단해 친하게 지냈습니다.”

    -2002년 한나라당 경선 무렵 ‘최병렬 전 대표에게 금전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 사장에게 제의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제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정 사장의 어머니와 최병렬 전 대표의 부인이 절친한 사이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정 사장에게 그런 제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나라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회창씨가 후보가 되어서는 한나라당은 절대 대선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이회창씨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한나라당 후보가 돼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던 최병렬 전 대표를 찾아가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최병렬 전 대표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최 전 대표는 자금 사정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나는 기자로서 최 전 대표의 개인재산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어 그의 재산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 전 대표의 경선자금을 내가 좀 끌어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 사장은 최 전 대표를 도와주라는 내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후 최 전 대표의 친구 회사 사무실에서 정 사장의 돈 5000만원이 최 전 대표의 친구에게 건네졌고, 이 돈이 최 전 대표 캠프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나의 제의로 정 사장의 돈이 최 전 대표측으로 간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최 전 대표의 친구가 중간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돈이 전달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 전 대표는 돈 문제에 관한 한 결벽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 전 대표에게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런 방법이 선택된 것으로 압니다. 당시 최 전 대표는 전혀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전달된 최 전 대표 친구의 회사는 어디입니까.

    “그것은 밝힐 수 없습니다.”

    -최 전 대표에게 5000만원이 전달된 것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까.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개인적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 사장은 공천헌금 용도로 5000만원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정 사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진출할 의사를 밝히기에 내가 ‘정치를 할 의사가 있으면 도움이 긴요하게 필요한 정치인을 미리 도와주는 게 낫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 사장이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최 전 대표, “직접 돈 안 만진다”

    -사업가가 정치인에게 돈을 전달하는 일에 기자가 관여했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양해해주십시오.

    “기자의 본분을 벗어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그때는 옳은 일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면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회사와는 관련이 없고 개인적으로 한 일입니다.”

    -정 사장은 관련된 분들이 돈을 받은 후 자신을 외면해 비애를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어왔지만 그가 구속되는 과정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어려움에 빠졌다고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정 사장측과 만나 오해를 풀었습니다.”

    -정 사장의 증언을 순순히 사실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전에 허 기자의 전화를 받은 뒤 착잡했습니다. 정 사장이 그렇게 증언했더라도 나로선 부인하거나 인터뷰를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후배 기자 앞에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얘기해달라는 요구에 침묵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정 사장은 우 기자에게도 5000만원을 줬다고 합니다.

    “2002년 2월쯤 내가 아파트 전세자금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것을 정 사장이 알고 5000만원을 빌려줬습니다. 대가성 있는 돈은 아닙니다. 나는 ‘나중에 전세를 빼서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2개월 전쯤 정 사장의 어머니가 내게 찾아와 ‘정 사장이 구속과 사업실패로 재산을 모두 잃었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500만원을 마련해 보냈으며 잔액은 전세를 빼서 돈이 생기면 갚겠다고 했습니다.”

    우 기자를 인터뷰한 다음날인 9월9일 오전 최 전 대표와 전화통화를 했다. 최 전 대표는 “정 사장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최 전 대표에게 우 기자의 증언 내용을 전했다. 이어 “2002년 우 기자로부터 한나라당 경선 참여를 권유받았나” 하고 묻자 최 전 대표는 “우 기자뿐 아니라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내게 경선 참여를 권유했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우 기자의 주선으로 정 사장으로부터 5000만원의 경선자금을 받았는가. 우 기자는 그렇게 증언했는데 우 기자의 증언이 사실무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최 전 대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최 전 대표는 “도와준 사람이 있었나…정 사장에게 감사 전화를 한 적이 없다. 나는 돈을 직접 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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