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러시아-중국-인도 삼각 군사동맹의 실체

‘반미 코드’로 뭉친 세계 2위 무장세력, 산둥반도 군사훈련은 한반도 개입 준비?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5-09-28 15: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러시아-중국-인도 삼각 군사동맹의 실체

    2005년 8월18일 러시아와 중국의 사상 첫 합동군사훈련인 ‘평화의 사명 2005’ 개시에 앞서 황광리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왼쪽)과 유리 발루예프스키 러시아 육군참모총장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충탑에 경례하고 있다.

    “이번 군사훈련은 단순한 기동훈련이 아니다.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안보체제 구축으로 가는 첫걸음이다.”(8월25일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

    러시아군과 중국군이 8월18~25일 극동 러시아 지역과 중국 산둥(山東)반도에서 사상 최초의 합동군사훈련인 ‘평화의 사명(Peace Mission) 2005’를 수행했다. 훈련은 끝났지만 그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군과 중국군 수뇌부는 내년에는 러시아 영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중 군사훈련이 정례화할 조짐인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9월), 러시아와 인도(10월)의 합동군사훈련도 이어진다.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내년 중 러시아·중국·인도의 합동군사훈련 실시 여부다. 러시아 관영 이타르타스 통신은 ‘평화의 사명 2005’가 끝나자마자 국방부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러-중-인 합동군사훈련이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러-인, 중-인 합동군사훈련은 한두 차례씩 실시된 바 있다. 이젠 3국이 일시에 참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세 나라는 냉전체제 해체 후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기 위한 방안으로 ‘러-중-인 삼각동맹’을 꾸준히 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껏은 아이디어에 그쳤고 별다른 실체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 삼각동맹의 현실화 가능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내년 러-중-인의 합동군사훈련이 이뤄진다면 이는 큰 의미를 가진다. 세 나라의 영토, 인구, 군사력은 실로 대단하다. 세 나라가 군사동맹으로 가는 신호탄을 쏘는 것은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다.

    우선 러-중-인 삼각동맹 구상이 나온 배경을 알아보자. 이 구상의 설계자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로 알려져 있다. 한때 그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고령과 건강 때문에 대권(大權) 후보 대열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 국내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거물 정치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권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동방주의자’ 프리마코프의 아이디어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기 때문에 현 집권 세력에는 KGB 인맥이 대거 포진해 있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KGB 대선배로 ‘KGB 인맥의 대부’로 꼽힌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옛 소련 시절 KGB 제1국 국장과 제1부의장을 지냈고 옐친 정권에선 KGB의 후신인 대외정보부(SVR) 부장을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정계를 떠난 지금도 푸틴 대통령의 배려로 러시아연방상공회의소 의장을 맡고 있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한국에도 익숙한 인사다. 한소(韓蘇) 수교 이전인 1989년 한국 정치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를 맞은 사람이 바로 프리마코프인데 그때 그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소장이었다. 그는 1년 후 소련 연방회의 의장(국회의장) 자격으로 김영삼-고르바초프 회담에 배석했다. 한소 수교협상 과정에서도 그가 일정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1998년 한러 외교분쟁 당시 프리마코프는 외무장관이었다. 이 사건은 러시아 보안당국이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의 조성우 참사관을 간첩 혐의로 추방하자 한국 정부도 서울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맞추방하면서 일어났다. 당시 프리마코프 장관은 한국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도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러시아 외교당국은 한국의 화해 제스처를 뿌리치고 추가로 모스크바 주재 한국 외교관 3명을 추방했다. 한국 정보당국은 대북(對北) 정보 수집 창구인 러시아의 거점이 붕괴되는 타격을 입었고 박정수 외교부 장관이 경질됐다. 사태 수습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박 장관이 악수를 청하며 내민 손을 외면한 프리마코프 장관의 ‘터프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러-중-인 삼각동맹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러시아의 외교·안보통 가운데 대표적인 ‘동방주의자’다. 러시아 외교는 전통적으로 냉전시대 라이벌인 미국, 지리적으로 인접한 유럽을 가장 중시한다. 자연히 대미 관계나 대유럽 관계 담당자들이 외교라인의 요직을 맡는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냉전이 끝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미국 외교에선 소련을 전공한 이른바 ‘소비에트 스쿨(Soviet school)’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알렉산더 버슈보 신임 주한 대사도 소련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미국통도 아니면서 러시아 외교의 수장이 됐으므로 특기할 만하다. 그는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를 졸업한 중동 전문가로 소련 관영 통신사인 타스(Tass)의 중동총국장과 동방학연구소장을 지냈다. 실제로는 기자 신분으로 위장한 KGB의 중동거점장(총책)이었다.

    프리마코프 전 총리는 이라크전이 일어나기 직전 푸틴 대통령의 밀사로 바그다드를 방문,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만나 사태 해결을 위한 마지막 중재를 시도했다. 이런 프리마코프 전 총리가 만든 구상인 만큼 삼각동맹이 전개될 주무대는 아시아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삼각동맹은 미국포위 전략

    정통 ‘KGB맨’답게 미국이나 서방에 대한 프리마코프의 태도는 보수적이고 강경하다. 냉전 종식 후 옐친 정권의 외교라인은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 등 친서방 온건파가 이끌었다. 이들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지원 등 반대급부를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러시아의 반대를 무릅쓰고 옛 소련 위성국인 폴란드 등을 끌어들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러시아의 코밑까지 확장했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친서방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경파인 프리마코프가 1996년 외무장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프리마코프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 미국을 역포위하는 전략을 세웠다. 바로 중국과 인도를 미국에 맞서는 동맹국으로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중국이나 인도는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군사대국으로 각기 동북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의 맹주다.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국제질서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프리마코프 장관은 1998년 인도 뉴델리 방문 중 자신의 러-중-인 삼각동맹 구상을 처음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이상적인 생각(utopian idea)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세 나라가 강력한 동맹을 구축해도 경제력의 열세로 미국, 나토, 일본 등 ‘범(汎)미국 동맹세력’에 대항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세 나라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만 해도 국경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리마코프의 구상은 점차 세 나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세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미국에 맞서 한목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경제관계도 밀접해졌다. 또 다른 변수는 최근 수년 사이 세 나라의 경제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경우 2000년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10여 년이나 계속돼온 사회혼란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인 러시아는 5년 동안 연평균 7%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인도 역시 폭발적인 성장세를 탔다. 해마다 9%대의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2010년 독일을 제치고, 2020년 세계2위 경제대국 일본을 추월한다는 야심을 갖게 됐다. 인도 역시 해마다 6%씩 성장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중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브라질을 합쳐 브릭스(BRICs)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만큼 세 나라는 신흥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 경제력이 커지니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에너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가 영향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러-중-인 협력의 중심도 에너지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한 중국과 인도에 러시아는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다. 러시아에 있어 두 나라는 주요 시장이면서 투자자다. 러시아 동시베리아 유전에서 개발된 원유는 철도를 통해 중국으로 공급된다. 러시아는 건설을 추진 중인 동시베리아 송유관의 노선을 중국에 석유를 공급하기에 유리하도록 잡았다.

    인도 역시 러시아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인도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2001년 러시아 정부와 협상, 러시아국영석유공사(로스네프티)가 갖고 있던 사할린Ⅰ프로젝트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인도는 추가로 사할린 에너지 개발 사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처럼 국가이익이 맞아떨어지면서 세 나라간 협력은 군사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 나라는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러시아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무기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이것은 순전히 중국과 인도 덕분이었다. 세계 최대 무기수입국인 중국과 2위 국가인 인도가 러시아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다. 러시아의 전체 무기수출량 중 83%를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제(製) 무기를 대거 도입한 데는 미국 탓도 있다. 미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일어나자 ‘인권탄압국가’인 중국에 대해 무기 금수(embargo) 조치를 내렸다. 미국의 압력으로 유럽연합(EU)도 이 조치에 가담했다. 프랑스 등은 내심 중국 무기시장을 탐냈으나 워낙 완고한 미국의 태도에 눌려 감히 중국에 무기를 수출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군 현대화가 시급한 중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서방 대신 러시아에서 무기를 집중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인도 또한 비슷하다. 지역 라이벌인 파키스탄은 미국의 우방국이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군사 지원을 하는 것에 맞서 인도는 러시아를 방산(防産)협력 파트너로 삼았다.

    에너지, 무기거래로 협력강화

    결과적으로 인도군과 중국군은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하게 됐다. 인도군과 중국군이 보유한 장비의 70%가 러시아제다. 세 나라 군은 자연스럽게 유사시 호환이 가능한 무기체계를 갖추게 됐다. 세 나라간 협력이 점차 군사 영역으로 넓어지면서 군사동맹의 토대가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러시아나 중국, 인도의 고위 관리가 삼각동맹의 추진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한번도 없다. 세 나라는 삼각동맹 아이디어를 공유한 후 이심전심으로 자연스레 여건을 성숙시키고 있다. 삼각동맹을 진행하는 데 가장 획기적인 일이 올해 상반기에 있었다.

    올해 초 러-중 국경분쟁이 완전히 해결됐다. 러시아(옛 소련)와 중국은 1964년부터 40여 년 동안 국경분쟁을 벌였다.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두 나라 모두 ‘땅 한 뼘이라도 양보하지 않는’ 전통을 고수 했기에 분쟁은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무력충돌에다 사회주의권의 헤게모니 장악 경쟁까지 겹쳐 한때 양국 관계는 최악이었다. 소련 해체 후 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국경선 확정 협상을 벌여 상당 부분의 국경선을 확정했다. 그러나 무력분쟁이 일어났던 극동 아무르강 일대 영유권 문제는 풀지 못했다. 그런데 러시아쪽에서 먼저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푸틴 대통령은 “문제가 되고 있는 영토 일부를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논리는 문제가 되고 있는 영토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 양국간 분쟁대상 영토는 현재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가 먼저 양보한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하바로프스크 인근 아무르강에 있는 타라바로프섬 전체와 우수리스크섬 일부를 중국에 넘겨줬다. 면적으로는 서울의 절반인 337㎢ 정도다.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국가인 러시아의 영토확장 욕망은 엄청나다. 제정 러시아는 19세기 알래스카를 싼값에 미국에 팔았다. 그뒤 알래스카에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자 러시아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지금도 일부 러시아 정치인은 “알래스카를 되찾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를 양보하면서까지 중국과 국경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대단한 결단으로 평가된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도 국내 반대여론에 고전했을 정도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 정상화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40년 국경분쟁 완전 타결

    물론 러-중 국경분쟁이 러시아의 일방적 양보로 타결된 것은 아니다. 분쟁 지역의 전면 반환을 요구해온 중국도 절반만 돌려주겠다는 러시아의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여 나머지 부분에 대한 권리를 영구히 포기했다. 이는 후진타오 주석 집권 후 중국 외교정책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 주석은 “이웃나라를 동반자로 삼아 선하게 대하고 다툼을 피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러시아 못잖게 국경선이 긴 중국도 주변국과 국경분쟁이 잦았다. 중국은 러시아뿐 아니라 인도, 베트남과도 영토 문제로 무력충돌을 빚었다. 그러나 후 주석 취임 후 중국은 “해결 가능한 분쟁은 타협안을 찾아내 즉시 해결하고,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훗날로 미뤄 당장의 충돌을 피한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중국은 카슈미르 지역, 부탄 접경 지역을 놓고 영토분쟁을 벌여온 인도와도 분쟁 해결의 원칙에 합의했다. 지난 4월 중-인 수교 55주년을 맞아 인도를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공동으로 발표한 뉴델리선언에서 “국경문제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해결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 중국과 인도의 관계와 대조적인 것이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러-중 관계뿐 아니라 러-일 관계도 정상화하려 했다. 러-일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도 영토분쟁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가 점령한 쿠릴열도 남단의 4개 섬(일본에서는 ‘북방영토’라고 한다)의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러시아와 일본은 올해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을 맞았지만 아직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영토분쟁 때문이다. 국제법상으로 러시아와 일본은 여전히 교전 상태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정·경일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정·경일치 정책이란 정치문제(영토 반환과 평화협정 체결)와 경제문제(대러시아 투자 등 경제협력)를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관계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일본 기업의 대러시아 투자는 제한적이라는 메시지다.

    일본의 이 같은 전략은 러시아와 일본 양측에 큰 손실이었다.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 자본의 유치가 시급한 러시아로서는 일본의 투자가 아쉬웠다. 일본 기업들도 러시아에 상품은 수출했지만 현지공장 건설 등 본격적인 투자를 할 수 없어 옛 소련권까지 포함해 인구 3억의 거대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러-일의 이 같은 어정쩡한 관계에 혜택을 입은 쪽은 한국 기업이다. 한국 대기업은 일본 기업이 ‘정치의 덫’에 걸려 주춤거릴 때 러시아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러시아 내 가전제품 시장, 자동차 시장은 한국 기업의 독무대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가 일본의 소니와 도요타를 제치고 러시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데는 불편한 러-일 관계가 큰 몫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일 영토문제도 러-중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섬 4개를 2개씩 나눠 가지자고 일본에 비밀리에 제의했다. 권위주의 체제인 러시아와 중국은 의회나 여론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영토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일본 언론은 러시아의 ‘영토 반분’ 제의를 전격 폭로했다. 일본 여론은 들끓었다. “4개 섬 전부를 돌려받기 전까지는 절대 러시아와의 평화협정에 서명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러-일 관계의 정상화는 가까운 시일 안에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던 푸틴 대통령은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러시아는 아태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에서 일본을 배제하고 중국에 ‘올인’한 것이다.

    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나

    물밑에서 진행되던 러-중-인 삼각동맹이 구체화된 계기는 지난 6월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3국 외무장관 회담이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 나트와르 싱 인도 외무장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엔과 같은 다자외교 무대에서 세 나라 외무장관이 회담을 한 적은 있지만 별도 모임은 처음이었다. 회담 장소가 모스크바나 베이징, 뉴델리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였다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삼각동맹의 주요 무대가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아시아 지역이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세 나라는 세계의 다극(多極)체제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극화란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국제질서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삼각동맹의 코드가 ‘반미(反美)’임을 은연중 비친 것이다. 중국의 리 부장은 이날 “세 나라는 지역은 물론 세계 차원에서 이해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제적인 현안이 있을 때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뜻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의 바실리 미하예프 부소장은 “러-중-인 삼각동맹은 반서방 반미 정서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 러시아, 중국, 인도가 삼각동맹을 현실화할 때 그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세 나라의 인구는 24억5000만(중국 13억, 인도 10억, 러시아 1억5000만)이다. 전세계 인구의 40%가 넘는다. 영토 면적은 세계 육지 면적의 44%다. 군사력의 경우 병력수만으로 실체를 드러내기는 어렵지만 세 나라 병력을 합치면 453만명(중국 225만, 인도 132만, 러시아 96만)에 이른다. 이것은 미국 국방정보센터(CDI)의 자료인데, 중국의 경우 정규군인 인민해방군만 계산한 것이다. 중국은 정규군 외에도 약 130만명의 각종 병력이 있다. CDI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42만명, 나토는 158만명의 병력을 갖고 있다. 더욱이 세 나라는 모두 핵보유국이며 다양한 핵무기 발사체를 갖고 있다. 삼각동맹의 군사적 잠재력은 미국 다음이다.

    러시아-중국-인도 삼각 군사동맹의 실체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 다음이다.

    삼각동맹이 가장 처지는 분야는 경제력이다. 세계 경제에서 세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 그러나 세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높은 초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어 미래의 판도는 예측불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러-중-인 삼각동맹은 지금 당장 미국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 않지만 갈수록 파괴력이 커질 거라고 볼 수 있다. 미국도 긴장하고 있다. 삼각동맹이 계속 유지 강화될 경우 현재의 미국 주도 국제질서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러-중-인 세 나라는 미국에 대한 정면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러-중 합동훈련 기간에도 양국 군 수뇌부는 “훈련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며 군사 블록을 형성하려는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유라시아 대륙 군소국까지 편입

    삼각동맹의 외곽에 ‘상하이(上海)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SCO)’가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2001년 6월 창설된 SCO는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옛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을 회원국으로 하고 있다. 창설 명분은 역내 평화와 안보. 실제 SCO의 결성 이유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슬람원리주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데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 지역에선 소련식 사회주의 이념이 사라진 후 생긴 공백을 이슬람 원리주의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타지키스탄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무장 봉기로 내전이 일어났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확대가 두드러졌다.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동부 안디잔에서 일어난 유혈폭동 사태에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개입됐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발흥은 당사국뿐 아니라 인접한 러시아와 중국에도 큰 위협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SCO의 결성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SCO는 이제 ‘삼각동맹’의 외곽 지원세력이 되었다. 러시아, 중국, 인도로선 뜻밖에 소득을 얻은 셈이다. SCO 회원국간 결속력은 계속 강화돼 경제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SCO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의 이익과는 상충된다. 2001년 9·11 사태가 일어나면서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대테러전 수행을 명분으로 SCO 회원국인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공군기지를 설치했다. 이들 공군기지는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활용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의 앞마당인 중앙아시아에 미군이 들어온 것이다.

    러시아는 처음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에 밀려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러시아도 키르기스스탄에 공군기지를 설치하는 등 대응조치를 취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장기주둔을 꾀했다. 그러자 러시아와 중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세력 확대를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SCO는 미국에 키르기스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미국은 경제지원을 내세워 키르기스스탄을 설득한 끝에 수도 비슈케크 인근의 마나스 공군기지는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우즈베키스탄도 미국측에 철군 요구를 한 상태다. 미국은 할 수 없이 우즈베키스탄 주둔 병력을 아제르바이잔으로 이동 배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SCO의 성격이 뚜렷이 ‘반미’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SCO는 최근 외연 확대에 나섰다. 중앙아시아로 한정돼 있던 지역적 범위도 넓어졌다. “한국도 원하면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힐 정도다. 인도도 파키스탄, 몽골과 함께 옵서버로 참여하게 됐다.

    러시아, 중국, 인도는 SCO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8월29일 “앞으로도 러-중 군사훈련은 더 있을 것이고 여기에는 SCO의 다른 회원국이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바노프 장관은 “(군사훈련에) SCO의 옵서버 자격인 인도의 참가도 가능하다”고 지나가듯이 덧붙였다.

    옐친 정부의 안보회의 서기를 지낸 안드레이 코코신 하원의원은 러시아 일간 ‘네자비시마야가제타’에 쓴 기고문에서 “앞으로의 합동군사훈련은 삼각동맹과 증대되는 SCO 활동의 일부로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군사 소식통이 밝힌 첫 러-중-인 합동군사훈련은 내년 상반기 실시될 예정이다. 이 훈련은 SCO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SCO 회원국인 러-중의 군사훈련에 SCO의 옵서버 국가 자격인 인도가 합류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무력개입 의도 확실”

    SCO는 이미 2003년 8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5개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대테러 훈련을 벌인 적이 있다.

    코코신 의원은 SCO와 러-중-인 군사훈련의 목적에 대해 “에너지 자원 때문에 중요도가 더해 가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해상 석유수송로 확보”를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8월의 러-중 군사훈련은 왜 중앙아시아가 아닌 중국 산둥반도 등 동북아시아 지역과 대만해협에서 실시됐냐는 점이다.

    상당수의 미국 전문가와 미국 언론은 러-중 훈련이 대만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미군이 개입하는 경우를 상정해 훈련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훈련이 있기 수주 전 한 중국군 장성이 “미국이 대만에 개입할 경우 중국은 미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러-중-인 삼각동맹의 활동반경은 동북아지역을 포함한 아태지역 전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번 훈련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사태에 대비한 것이라는 러시아 전문가의 주장도 있다. 군사문제 전문가인 드미트리 예브스타피예프 박사는 러시아 시사주간지 ‘엑스페르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중 군사훈련은 러시아와 중국이 한반도에서 벌일지도 모를 평화유지활동을 연습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브스타피예프 박사가, 이 훈련이 한반도를 상정했다고 보는 근거는 첫째, 남북한 관계에 따라 한반도에서 언제든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한반도 정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것.

    둘째, 한반도에서 일어날 사태는 대만에서 일어날 사태와 달리 러시아의 이해에 직접적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전쟁은 러시아에는 중국의 ‘내부 문제’일 뿐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러시아군이 중국군의 대만 공격에 동참할 일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러시아 공수부대가 대만에 투하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중국군 공수부대와 함께 침투훈련을 벌였다고는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이상적 워게임 장소”

    셋째,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했을 경우 주(主)전장은 한반도가 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국과 총력전을 벌일 공간은 한반도밖에 없다는 것. 중국은 대만과 전쟁을 벌이더라도 통일 후를 생각해 대만의 경제역량이 모조리 파괴되는 전면공격에는 나서기 어렵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라면 미국과 중국이 모두 ‘부담 없이’ 전투를 치를 수 있다는 것.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동북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워게임(war game) 장이 될 수 있다.

    러시아 전문가의 진단은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현실적이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졌을 때 반미 성향의 러시아와 중국이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개입할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 더욱이 한반도의 북반부를 점유하고 있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주의 국가이며 중국, 러시아에 매우 우호적이다. 이번 러-중 합동군사훈련을 통해 실체가 드러난 반미 동맹의 대두가 향후 한반도의 운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만은 확실한 것이다.

    러-중-인의 삼각동맹이 강화될수록 이에 맞선 미일동맹의 반발도 거세질 전망이다. 한때 동북아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의 한 축이었으나 지금은 한미동맹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의 선택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