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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행가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모래바람 속 동양의 신비 드러낸 2만5000마일 대장정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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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옛날 박트리아 왕국의 수도이던 발흐(Balkh)에 남아 있는 15세기 때의 이슬람 사원. 발흐는 지금 아프가니스탄령이다.

“밤새 비와 눈이 내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안개비가 계곡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텐트 속에서 기록하거나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날씨가 맑게 개 더 높은 곳에 오르자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고산병에 강한 현지인을 데리고 온 게 큰 도움이 됐다. 훈자족 인부들 덕분에 체력을 가다듬고 얼마간 눈 속 행군을 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자 스타인은 안내자와 인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고액의 보수를 받은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스타인은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7월29일 드디어 중간 기착지인 카슈가르에 닿을 수 있었다. 현지 영국영사 조지 매카트니 부부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초면이었지만 서로 잘 통했다. 매카트니는 어머니가 중국인이라 중국어에 능통한데다 그들의 관습과 사고방식에 정통하고 중국 관리들과도 면식이 넓었으니 스타인으로서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매카트니가 인도를 찾은 것은 1887년, 그러니까 스타인이 인도로 떠난 해였다. 그는 중국에서 영사직을 얻고 싶었으나 줄이 없어서인지 이뤄지지 않자 미얀마 치안판사의 중국어 통역인으로 인도를 찾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는 카슈가르의 행정관이 됐고 도합 28년을 그곳에 머물렀다.

오아시스 여관 ‘캐러밴 세라’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국의 고민은 러시아 문제였다. 러시아가 신장 최서단의 오아시스를 탈취하고 거기서 인도로 통하는 군용도로를 자기들의 관리 하에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그곳이 아프가니스탄의 손에 그대로 있기를 바랐다. 대영제국의 최후 방어선이 아프가니스탄이기 때문이다. 스타인은 서구인에 대한 중국인의 적의와 반감이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매카트니를 만나보니 경계해야 할 대상은 반외세를 주장하는 중국의 의화단원(義和團員)이 아니라 은근 슬쩍 위협해오는 러시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매카트니가 스타인이 카슈가르에 머무는 동안 지내라고 ‘티니베크’라는 가옥을 강변에 지어주었는데, 그 집의 발코니에 서면 강은 물론 밭과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투명하게 열리는 날이면 멀리 흰 눈을 뒤집어쓴 산이 눈에 들어왔다.

스타인이 티니베크에 들어간 것은 7월31일. 두 달에 걸쳐 흰눈 덮인 산속을 행군한 뒤라 휴식이 필요한 터였다. 그는 그곳에서 피로를 풀면서 마음의 평정을 얻었고, 무엇보다 매카트니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그와 함께 중국의 역사와 고대 중국의 순례자, 초기 유럽인 여행가들의 기록도 살펴봤다.

하지만 스타인의 등장으로 카슈가르에 긴장이 감돌았다. 러시아측에서 그를 스파이로 봤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오해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매카트니는 그들에게 “스타인은 고고학자이며, 이슬람 전래 이전 한·당대의 문화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투르케스탄을 찾았다”고 해명했다.

스타인은 대개 오전에는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의 권위자들을 만나 투르크어 경전을 배우고, 오후에는 촬영한 사진을 암실에서 현상하면서 보냈다. 때로는 일과 연구를 중단하고 중국인 관리들을 만나기도 했다. 예정된 탐험의 목적을 그들에게 알리고 또 도움을 얻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중국인을 대할 때 지켜야 할 예의를 배웠다.

카슈가르에서 5주일 남짓 머물면서 몸과 마음의 원기를 되찾은 그는 9월4일 다시 길을 나섰다. 나무와 관목이 자라지 않는 불모의 회색 땅을 오랫동안 걷기도 했다. 그러다 중국령 투르케스탄의 상업 중심지로 한때 번성했던 야르칸트에 닿았다. 일행을 맞이한 현지 인도 상인이 매카트니가 마련해준 숙소로 안내했다.

10월2일에는 사막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길 위에 막대기가 아주 촘촘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는 여행자가 야간이나 모래바람이 불어 시야가 좋지 않더라도 길을 잃지 말라고 그렇게 해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곳에도 오아시스는 있었고, 그곳을 지나던 여행자나 캐러밴은 오아시스에 세워진 ‘캐러밴 세라’라고 부르는 여관에서 물과 먹을 것과 잠자리를 얻었다. 우편 취급소에서는 말을 구했으며, 업무 통신문을 보낼 수 있었다.

사막이라 길은 여전히 모래에 덮여 있었으나 일행은 계속 전진해 호탄 지역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다는 카라카슈(黑玉河)에 도착했다. 설마 했는데 사막 한가운데인 그곳에 실제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일행이 묵은 호상(豪商)의 집은 방이 미로처럼 이어졌고 조명과 환기가 엉망이었다. 뜰에는 관목이 자라고 있었으나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아 폐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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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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