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거대 공룡 재향군인회, 꼬리 무는 의혹

5년간 4000억대 수의계약 특혜, 허위 임대계약, 불법 재하청, 명의 사칭…

  •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5-10-24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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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공룡 재향군인회, 꼬리 무는 의혹
    10월6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열린우리당 김현미(43) 의원과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이상훈(72) 회장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김 의원 : “제 나이가 몇 살로 보입니까.”

    이 회장 : “알고 있습니다.”

    김 : “62년생입니다.”

    이 : “네.”



    김 : “올초에 제가 재향군인회에 자료를 요구했더니, 왜 우리 친정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서 질문을 못하게 하십니까.”

    이 : “네? 잘 못 들었습니다.”

    김 : “저 성인이거든요. 제 아들도 곧 성인이 돼요.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데 질문을 하라 마라 하는 것을, 왜 친정아버지에게까지 사람을 보내가지고…. 그렇게 하실 정신 있으면 자료나 똑바로 만들라고 지시하십시오. 그리고 이번 국정감사 하는 동안에 재향군인회측으로부터 질문을 자제하거나 약화해달라는 부탁을 다섯 명에게도 넘게 받았습니다.”

    이 : “재향군인회가 저 혼자입니까.”

    김 : “(전화한 사람들에게서) 회장님의 부탁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 “재향군인회 시도, 시군구 회원들이 전국에 다 퍼져 있는데, 김현미 의원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 아는 사람 통해서 부탁받아 이야기했으면 했지, 제가 누구한테 이야기했다는 건지.”

    김 : “제가 그러면 회장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그분을 데려다가 대질하는 푸닥거리를 해야 하겠습니까.”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김 의원의 목소리는 한껏 격앙됐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반면 답변하는 이 회장의 얼굴에선 잔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40여 년 긴 세월 동안 누구도 건드리기 힘든 거대 공룡조직으로 변한 재향군인회와 이를 5년째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의 노련함 앞에서 초선의원의 목소리는 제풀에 지쳐갔다. 언론도 이에 한몫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날 김 의원과 이 회장 간의 설전을 흥미롭게 다루는 데 그쳤다. 김 의원을 비롯한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제기한 재향군인회와 관련한 비리 의혹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이쯤에서 끝낼 태세가 아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된 재향군인회의 각종 비리 의혹과 국가보훈처의 자체 감사 결과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감사원은 재향군인회가 1994년을 마지막으로 10년이 넘도록 감사를 받지 않았다는 의원들의 지적과 감사 요구에 따라 재향군인회 감사의 적절성에 대한 내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향군인회 안팎에서 제기되는 운영상의 문제점과 각종 비리 의혹 진상을 추적했다.

    매년 자산, 100억~200억씩 늘어

    재향군인회는 정부 산하기관·단체가 아닌 제대 군인들의 순수한 친목모임이다. ‘재향군인회법’ 제1조 설립목적 조항엔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라고 명시돼 있다. 정상적인 친목모임이라면 회비로 운영돼야 한다. 하지만 재향군인회는 지난 40년 동안 ‘재향군인회법’이라는 특별법의 ‘우산’ 아래 기형화했다. 각종 특혜시비와 불법·편법 의혹을 받는 이상한 ‘친목모임’으로 변한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재향군인회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정회원이 123만명에 달한다는 재향군인회가 2004년 한 해 모금한 순수 회비는 8억5000만원. 하지만 재향군인회는 그해 34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산하 12개 사업체를 통해 32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4년 말 현재 재향군인회 소유 부동산은 서울 등 13개 시도에 토지 10만1359㎡(3만700평), 건물 200여 동에 달한다. 토지는 공시지가(1852억원), 건물은 취득가(856억원)로 평가할 경우 2708억원 상당의 자산이지만, 현 시가로 치면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재향군인회가 지분 100%를 보유한 중앙고속, 향우산업, 향우실업, 향우종합관리, 통일전망대, 충주호관광선, 호남규석광업의 7개 기업과 5개 직영사업본부의 총자산은 1036억4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다 합하면 재향군인회의 총 자산은 무려 5000억원에 달한다. 전국 13개 시도 각 지회 및 지부에서 운영하는 중소규모 사업체의 자산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국가보훈처와 재향군인회가 국회에 제출한 각종 자료에 따르면 재향군인회의 자산은 해마다 100억~200억원씩 증가하고 있다. 2004년 한 해에만 토지 4825㎡(37억원), 건물 11동(58억원) 매입과 총수입 중 152억원이 자본으로 편입돼 모두 247억원이 늘었다. 문제는 이처럼 자산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각종 불법 또는 편법 의혹과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는 것.

    재향군인회의 주 수입원은 7개 산하기업과 5개 직영사업본부다. 2004년 이들 12개 사업체의 총매출은 3253억여 원에 달한다. 이를 통한 순이익은 174억5400만원. 재향군인회는 이 수익금의 대부분인 171억2000만원을 ‘보훈성금’으로 정부에 기부했다가 ‘보훈기금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예산 14억원이 추가된 185억원을 지원받았다. ‘이익금 174억원(재향군인회)→보훈성금 171억원(정부)→보훈기금 보조금 185억원(재향군인회)’ 형태로 자금이 이동한 것.

    재향군인회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44억원의 세금(법인세+주민세)을 감면받았다. 재향군인회는 이 같은 경로로 2001년 50억원, 2002년 43억원, 2003년 44억원의 세금을 감면받았다. 지난 4년(2001~2004)간 18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았으니 특혜를 받은 셈이다.

    ‘-62억 회사’가 성금 1억 기부?

    이에 대한 재향군인회의 해명이 흥미롭다. “국방부 소속일 때는 법인세법 제24조 2항2호 국방헌금과 동법 시행령 38조 2항에 근거해 면세혜택을 받다가, 국가보훈처로 이관되면서 산하업체 수익금이 보훈기금에 편입될 수 있도록 보훈기금법을 개정했다”는 것. 한마디로 오래 전부터 세금감면을 받았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재향군인회가 1961년 5·16 직후 재건되면서부터 국방부에 편입돼 면세혜택을 받았다면 44년 동안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다음은 2004년 8월 국회 예산정책처 ‘2003년도 기금결산 분석’ 자료 중 일부다.

    “해외 재향군인회는 회원들에 의한 회비가 연 예산의 40~50%를 차지하고 있음. 해외 재향군인회에서도 기금운용과 수익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기업군을 이끌면서 우회적 방법으로 세제지원을 받는 사례는 없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금감면을 받기 위한 편법이 결국 사업체의 부실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산하기업체의 경영상황은 심각한 형편이다.

    재향군인회 기업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중앙고속의 경우 2004년 말 현재 자본금 25억2000만원에 부채규모가 301억4000만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1192%에 달한다. (주)충주호관광선은 자기자본금이 -62억1000만원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재향군인회가 1988년부터 2003년까지 15년 동안 자본금 102억원을 쏟아부었지만 누적적자가 164억원에 이른 데 따른 것이다. 또 자기자본비율은 -189.2%로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지난해 중앙고속은 순이익 33억5500만원 가운데 33억원을, 충주호관광선은 3억8400만원 중 1억원을 보훈성금으로 기부했다. 부채를 줄여야 할 판에 수익금을 보훈성금으로 기부해 재향군인회 운영자금으로 지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그리고 그 잉여금은 고스란히 재향군인회 본부 자산으로 편입됐다.

    부채비율이 98.5%(부채 23억1600만원)로 재무구조가 비교적 양호한 통일전망대는 순수익 7억1500만원보다 많은 8억7000만원을 보훈성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결국 통일전망대는 2004년 재무제표상 1억55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회 정무위 박명광 의원(열린우리당)은 이에 대해 “이는 재향군인회 산하 사업체의 연쇄 부실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조세 정의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편법 세제감면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역·제조·회관·휴게소·사업개발단 등 재향군인회 5개 직영사업본부는 그나마 다소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연간 매출액이 가장 많은 제조사업본부는 자본금 17억600만원에 부채가 5600만원으로 부채율이 3.2%에 그쳤다.

    그러나 연간 1000억원대에 달하는 제조사업본부 매출 대부분이 조달청과 국방부 등 정부부처와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체와의 수의계약을 통해 발생하고 있어 특혜 시비와 각종 불법 및 편법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한전, 5년7개월간 3149억 수의계약

    한국전력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기사업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재향군인회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금액이 2000년 479억원, 2001년 513억원, 2002년 578억원, 2003년 556억원, 2004년 61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7월 현재까지 406억원 어치를 수의계약했다. 5년7개월 동안 무려 3149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의 수의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계약품목은 합성수지파형관부터 케이블 행거 안전캡, 나경동연선, 전력량계 단자커버, 표준형 지상변압기, 인입용전주까지 20여 가지에 이른다.

    조달청은 재향군인회와 2002년 145억4500만원, 2003년 183억1600만원, 2004년 116억2000만원 등 3년 동안 444억8100만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계약품목으로는 배전반과 자동제어반, 계장제어장치, 오버헤드 크레인 등 설비가 주를 이루고, 간혹 승차권(철도청)과 버클(경찰청), 태극기(국방부)도 포함돼 있다.

    또 국방부 조달본부는 계급장과 부대표시, 피복류, 가구, 꼬리곰탕 등을 재향군인회와 수의계약을 통해 조달했다. 수의계약 규모는 2002년 65억원, 2003년 130억원, 2004년 144억원으로 3년간 총 340억원.

    재향군인회는 이밖에도 한국통신, 도로공사, 주택공사, 지하철공사, 포스코 등 공기업들로부터 지난해 35억원의 수의계약을 따냈다. 이를 종합해보면 재향군인회가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한 규모는 지난해에만 연간 1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재향군인회가 이처럼 수의계약으로 따낸 모든 물량을 직접 제작해 조달할 능력이 있는가다.

    재향군인회의 수의계약 근거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 8항이다. 여기에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법인이 당해 법률에서 정한 사업을 영위함으로써 직접 생산하는 물품의 제조·구매 또는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들에게 직접 물건을 매각·임대하는 경우에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법률상 수의계약 대상을 직접 생산하는 물품에 한정한 것이다.

    재향군인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조사업본부는 전업사업단 2개, 전선사업단 3개, 중전기사업단 2개, 통신사업단 1개, 직할(사업소) 11개 등 모두 19개 공장을 임차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생산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가장하고 실질적으로는 그 공장에 다시 도급을 준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허위 임대차계약과 불법 하도급 의혹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그 구체적인 사례로 중전기사업단의 경기 안산 중전기공장과 충북 옥천 파형관공장을 지목했다. 김 의원이 재향군인회로부터 제출받은 두 공장의 임대차 계약서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이상훈 회장 명의로 (주)조양 대표이사 나○○씨와 안산공장과 옥천공장 두 곳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돼 있다. 안산공장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00만원, 옥천공장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500만원, 기간은 1년 조건이다.

    그러나 김 의원이 제시한 신용보증기금의 기업조사정보를 보면 안산공장의 실제 회사명은 (주)조양산전이고, 대표이사는 한○○씨다. 또 옥천공장의 회사명은 (주)조양으로 계약서상 회사명과 같지만 대표이사는 조○○씨다.

    교차 확인한 결과 한씨와 조씨는 (주)조양산전과 (주)조양, 두 회사의 지분을 각각 50%씩 소유한 실질적인 경영주였고, 계약서에 등장한 나씨는 (주)조양의 임원이었다. 그리고 (주)조양의 재무제표상 임대수익은 전무하다. 재향군인회와 (주)조양 간의 임대차 계약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실질적인 경영주 조씨가 재향군인회 간부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재향군인회가 한전과 수의계약한 납품건을 재향군인회 간부가 자신의 수익사업으로 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W금속, K산업 등과 재향군인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이 일고 있다. 두 회사는 재향군인회와 임대차 계약을 맺지 않았으면서도 W금속은 생산물품의 38%, K산업은 30%를 재향군인회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재향군인회가 사실상 이들 회사에 재도급을 줘서 납품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업체 가운데 특히 K산업은 재향군인회 전업사업단 평택공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 K산업의 주소지는 평택시 포승면 내기리 6XX-10번지. 그리고 그 계열사인 S공업은 인접한 평택시 포승면 내기리 6XX-11번지로 재향군인회 평택공장의 주소와 같다.

    확인 결과 재향군인회는 S공업 공장 일부를 임차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S공업과 재향군인회 평택공장은 둘 다 플라스틱 사출공장으로 공교롭게도 생산하는 제품이 같다. 이 과정에서 재향군인회 평택공장이 S공업으로부터 납품을 받았다면 이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에 대해 “일시에 발주량이 폭주해 생산량을 초과하는 경우 전신주 일부 품목의 부속품을 W금속과 K산업, S공업 등으로부터 (납품받기 위한) 수의계약을 한 사례가 있다”고 일정 부분 시인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어 “(주)조양은 재향군인회에 안산공장을 임대해준 회사다. 다만 미국 HFC사의 분산제어 시스템 에이전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조양에서 수입한 분산제어 시스템의 일부를 재향군인회에 납품한 사례는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조달청은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음은 조달청이 지난해 10월 작성한 ‘보훈복지단체 생산물품 정부우선구매제도 개선(안)’에서 현행 제도의 운영상 문제점으로 자체 진단한 내용 중 일부다.

    ‘□사회복지단체 등 상당수가 직접 생산하지 않고 하청생산

    ○보훈·복지단체 지원은 당해 단체가 직접 생산하는 물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상당수 단체가 중소기업에 하청 생산하는 실정. 공장 실태조사시 공장 및 생산설비를 보유 또는 임차하고 있어 직접 생산 여부 확인이 사실상 곤란.

    ○실질적인 수혜를 받아야 할 단체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배정받은 단체운영진과 하청 기업주만 이롭게 하는 제도로 전락.’

    조달청은 국무회의에서 이를 보고하고 관계부처와 대책을 논의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향군인회 내부자의 고발

    재향군인회를 둘러싼 수의계약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향군인회라는 명의를 도용하거나 사칭해 국방부 조달본부와 예하 부대 등으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사실이라면 이는 사기행위에 해당한다.

    올해 초 청와대 인터넷신문고와 국가보훈처, 기무사령부 등에 재향군인회 내부 관계자의 민원 한 통이 접수됐다.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 전○○ 단장이 개인회사의 영업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직위와 재향군인회의 명의를 도용해 국방부 및 예하 부대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을 고스란히 재하도급 하고 있다고 했다. 민원 내용 중 일부다.

    “전씨는 2003년 개인사업체인 향우기획을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으로 개명해 특별법의 ‘우산’을 쓰고 군부대와 조달본부에 수의계약이라는 특혜를 요청해 2004년 60여 건 7억4000만원의 수의계약을 따냈습니다. 이것은 재향군인회법의 설립취지를 위배한 것으로 ‘재향군인회’라는 명칭을 교묘하게 위장해 군부대를 기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저수조 청소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사는 100% 하도급을 주고 있습니다.”

    민원인은 그 증거로 수의계약 명세와 하도급자, 하도급액 등이 자세하게 적힌 ‘공사대장’을 제시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청와대 민원제안비서관실이 민원 내용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했다.

    다음은 국방부의 민원회신 결과 내용 중 일부다.

    “확인 결과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장 전씨는 재향군인회와 별개의 사업체인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을 설립한 후 예비역 군인들을 고용, 재향군인회의 명의를 빌려 군부대로부터 수의계약을 수주하고, 실제 계약은 자신이 설립한 사업체 명의로 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국가보훈처도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의 위법행위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조치 결과를 통보했다.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은 재향군인회와는 사업상 어떠한 제휴도 없는 별개의 상법상 회사임이 확인됐습니다. 재향군인회는 향군환경관리사업단의 불법명의도용 등 영업행위와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한 후 조치할 예정입니다.”

    재향군인회는 그러나 별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취재 결과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과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환경관리사업단장 전씨는 여전히 단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회사명이 ‘향군환경관리사업단(주)’에서 ‘환경관리사업단(주)’으로, 대표이사는 김모씨에서 이모씨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전씨는 “사무실은 같이 쓰고 있지만 재향군인회 환경관리사업단과 환경관리사업단(주)은 이제 아무 관계도 없다. 지난해까지는 내가 직접 운영했지만 이제 모두 손을 뗐다”고 주장했다.

    속칭 ‘대명사업’ ‘이임사업’ 횡행

    그러나 민원인은 “민원을 제기했을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재향군인회가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체하니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고, 적발돼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재향군인회 주변에는 ‘재향군인’ ‘향군’ ‘향우’ 등 재향군인회와 관련이 있어 보이도록 회사명을 정하고 사업하는 속칭 ‘대명(代名)사업’ ‘이임사업’이 횡행하고 있다”며 “주로 재향군인회 관계자나 그들의 친인척이 이런 사업을 하고 있으며 적어도 10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에 대해 “해당 임원에게 경고조치를 내리는 한편 해당 업체의 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히고 “본회에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기 목적으로 명의를 도용한 사례가 있으나, 이런 사건들은 문제가 드러나야만 확인할 수 있어 재발방지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향군인회는 각 지자체로부터도 적지 않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향군인회 한 지회의 내부문서 내용 중 일부다.

    ‘1. 6·25행사기념회 행사비용 : 시에서 1000만원 지원.

    2. 재향군인회 건물 신축비용 : 시 3억원, 국비 3억원, 도비 2억원.

    3. 신축건물 준공 후 집기류 구입비용 : 시 5000만원, 추후 시에서 11인승 차량지원-1대 2005. 08. 30일 이내, 중앙에서 사무국장 및 간사 급료 300만원 지원.’

    재향군인회 전직 관계자는 “각 지회의 건물이 신축된 후에는 재향군인회 중앙본부의 자산이 되고, 그 임대 수입료만 지회 운영예산으로 사용한다. 또 기존 지회 건물의 매각 대금 또한 재향군인회 중앙예산으로 편입된다”며 “지자체보다 많은 재산을 가진 재향군인회에 건물 신축뿐만 아니라 차량까지 지원해주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최근 재향군인회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밖에서는 평화재향군인회라는 새로운 단체가 세력을 키우고 있다. 또 정치적인 집회 참여를 자제하면서 보수단체로부터도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재향군인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데다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향군인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향군인회 한 고위간부의 고백이다.

    “박정희 정권은 (재향군인회에) 중앙고속을 주고, 노태우 정권은 유람선을 줬다. 전두환 정권은 철도용역사업권을 주고 심지어 김대중 정권도 휴게소 운영권을 줬다. 하지만 이제 사회가 바뀌었다. 정권의 보호에 더는 안주해서도 안 되고 특혜를 바라서도 안 된다.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향군의 혁신을 위해 혁신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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