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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섬뜩한 비바람 굉음 속, 귀마개 나눠주며 “죽어도 같이, 살아도 같이…”

  • 한은정 미국 사우스앨라배마주립대 석사과정·커뮤니케이션

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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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다간 완전 고립이야!”

오후 2시쯤 교회에서 돌아와 보니 아파트 현관문에 허리케인 경보용 노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내용인즉, “엄청난 허리케인이 온다. 얼른 피난 가라. 네가 여기 있든 피난 가든 그건 네 맘이지만, 네가 여기 있다가 사고 나면 우린 책임 안 진다”였다. 아파트 관리실도 문을 닫았고, 주차창도 많이 비어 있었다. 다들 벌써 대피했나? 참고로, 여기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오면 주로 텍사스주나 조지아주로 피난 간다.

나는 피난 갈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케인이 오면 며칠간 전기가 안 들어올 테니) 밀린 빨랫감을 모두 모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욕실과 냉장고를 청소했다. 그때 마침 친구 영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짐 싸서 자기 집으로 피난 오란다. 몇 시간 후면 허리케인이 온다고, 이번 허리케인은 정말 어마어마한 거라서 자동차도 다 날려버리고 아파트도 무너질 거라 혼자 있다간 완전 고립된다고 했다. 영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왔는데 그동안 큰 허리케인을 여러 번 만나봤기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그저 천하태평인 나 같은 유학생을 보면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결국 영주의 끈질긴 설득에 “알았어. 저녁에 해지면 짐 싸서 너희 집에 갈게”하고는 곧바로 여기저기 가까운 친구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내 룸메이트는 자기랑 친한 일본인 아줌마 집으로 피난 가겠다고 하고, 나랑 친한 몇몇 미국인은 하나같이 “허리케인에 완벽하게 대비해놨다”면서 다들 자기 집으로 피난 오라고 했다. 교회 집사님들을 비롯한 한국인은 “근처에 사는 이웃과 비상연락망을 통해 매 시간 서로서로 살피고, 유사시엔 같이 움직이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한국 남학생들은 우르르 한집에 모여 있겠다고 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과 후배 수진이는 나랑 같이 오늘 저녁에 영주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 수진이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상대적으로 좀 튼튼한 건물이라(다른 기숙사 건물은 어젯밤부터 강제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강제 대피령을 알리는 빨간 딱지가 안 붙었다. 그래도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 같이 피난을 가겠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오면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숙사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학생들 모두 나가라고 독촉하는 거다. 그리고 곧바로 학교 안에 있는 건물에 비상대피소를 마련해서 오갈 데 없는 학생들, 특히 외국 유학생들을 대피시킨다. 지난해엔 일반 시민도 우리 학교 안에 있는 대피소로 왔다.

여하튼 주민 대부분이 허리케인이 오기 며칠 전부터 전반적으로 “그냥 내 집에 있겠다”는 추세였다. 어떤 한국인 말대로 “허리케인이 와도 큰 피해 없는데 괜히 지레 겁먹고 피난 갔다가 쓸데없이 돈만 날리고 왔다”는 기억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의 안전불감증이란….

갈대처럼 휘청이는 나무들

오후 4시경, 혼자 집을 지키면서 영주네 집으로 피난 갈 때 가져갈 중요한 서류(유학생에겐 여권, 비자, I-20, 운전 면허증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비상시엔 ‘이혼서류’를 꼭 챙겨야 한다고 했다)와 귀중품(노트북컴퓨터, 책, 각종 페이퍼)을 챙겼다. 학교 후배 주은에게서 안부전화가 왔다. 오전에 미시시피주 빌럭시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 보고 지금 모빌로 돌아오는 중인데, 고속도로가 피난차량으로 꽉 차서 시속 16km도 못 달리고 있다고 했다. 모빌 시민 대부분은 피난을 가지 않는 분위기인 데 반해 이웃 미시시피주나 루이지애나주는 태풍의 핵심지역으로 보도되면서 이곳 모빌로 피난 오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주은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번엔 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선, 학교 휴교령이 다음주 수요일까지 연장됐고, 또 수진이네 기숙사 건물에도 빨간 딱지가 붙었다며 지금 바로 영주네 집으로 가자고 했다. 시력이 매우 나쁜 나로선 야간운전이 무척 힘들고 게다가 비까지 쏟아진다면 거의 죽음일 게 분명했다.

아니나다를까, 6시경 수진이를 태우고 영주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엉금엉금 거북이 운전으로 영주네 집에 겨우 도착하고 보니 저녁 7시.

예상대로 영주네 집 문이란 문은 모두 나무판자로 단단히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에선 허리케인이 온다는 소식만 들리면 온 집안 남자들이 마당으로 나와 나무판자로 집을 둘러친다. 미국 주택은 창문이 많고 커서(거실 전면이 유리로 된 집도 많다) 강풍이 불면 와장창 깨지기 때문에 나무판자로 튼튼하게 둘러쳐야 한다. 나는 지난해 나무판자를 사지 못해서 라면박스로 아파트 창문을 둘러쳤다.

영주 남편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혼자서 세 건물(영주네 집, 근처에 사는 부모님 집, 그리고 영주네 가게)에 나무판자를 둘러치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밤 10시경, 영주가 “죽어도 온 가족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며 엄마 곁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다같이 영주네 부모님 집으로 피난을 갔다. 늦은 시각인데도 영주 부모님은 안 주무시고 계속 TV 속보를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인인 영주 아빠가 소형 귀마개를 건네줬다. 초강력 태풍이 오면 굉음이 나는데, 이 굉음이 공포심을 더 자극하기 때문에 귀마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난 속으로 ‘미국인들 참 우습네’ 하면서 귀마개도 내팽개치고 그냥 평소처럼 일찌감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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