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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섬뜩한 비바람 굉음 속, 귀마개 나눠주며 “죽어도 같이, 살아도 같이…”

  • 한은정 미국 사우스앨라배마주립대 석사과정·커뮤니케이션

한국 유학생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체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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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9일 월요일

새벽 6시. 잠에서 깨어나니 바람소리, 빗소리가 뒤섞인 늑대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살짝 뒷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집 전체를 나무판자로 둘러쳐놨기 때문에 집안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갈대처럼 휘청대고 있었다. 게다가 방안에 있을 때는 그리 크지 않게 들리던 바람소리가 문을 여니 엄청났다. 지난밤에 영주 아빠가 왜 귀마개를 줬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허리케인 상습지역은 보험도 못 들어

한편 영주 엄마는 새벽 3시경 전기가 나갔다며 발전기를 돌려 열심히 아침을 준비했다. 이곳 동남부 지역엔 허리케인이 워낙 잦고, 또 허리케인이 한번 왔다 하면 평균 일주일 정도는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웬만한 집에선 모두 가정용 발전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발전기도 가스가 떨어지면 못 돌리니 아껴서 써야 했다. 휴대전화 충전할 때, 요리할 때만 잠깐씩 돌리고, 정말 못 참을 정도로 더우면 선풍기 잠깐 켜고….



그 와중에도 영주 엄마는 나와 수진이를 위해 그 귀한 발전기를 돌려서 노트북컴퓨터를 충전할 수 있게 해줬다. 하루 종일 컴컴한 집에 갇혀 있으려면 심심할 테니 컴퓨터로 다운로드한 한국 드라마라도 보라고 했다. 덕분에 나랑 수진이는 하루 종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면서 그 유명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1회부터 10회까지 볼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여기저기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모두들 전화 통화(받는 전화, 거는 전화)로 바빴다. 특히 나와 수진이는 한국의 가족, 친지에게서 걸려온 안부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CNN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한국에 있는 가족이 여기 있는 우리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고, 불안한 마음에 수시로 전화를 해댔다. 수진이네 엄마는 우리가 전혀 듣지도 못한 (TV로 뉴스를 볼 수 없으니) 뉴올리언스 상황까지 다 아시고는 “뉴올리언스엔 지금 시체들이 둥둥 떠다녀서 세균이 득실댄다는데 너 지금 당장 예방주사라도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병원도 다 문 닫고 (응급실만 빼고) 게다가 도로에 나갈 수도 없는 이 와중에 어디 가서 예방주사를 맞냐고요!

한편, 목사님 댁에 안부전화를 했던 영주 엄마는 “미시시피주에서 피난 와서 목사님 댁에 머물고 있는 손님의 자동차에 집채만한 나무둥치가 바람에 날려와 떨어지는 바람에 차가 다 깨졌다”며 걱정했다. 영주씨 부부는 가게 지붕이 날아간 것 같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고 잔뜩 걱정을 했다. 재해보험에 들어놓긴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전혀 해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아이반’이 올 때도 영주네 가게는 큰 피해를 당했지만 보험회사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심지어 올봄에 새 보험에 가입하려고 여기저기 보험회사에 연락했는데 계속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피해가 워낙 심각해서 중소 보험회사들은 아예 문을 닫았고, 큰 보험회사들도 휘청거리는 상황이라 요즘은 신규 고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험 상담을 하려고 찾아가면 일단 입구에서 안내자가 주소를 물어본 후 거주지(혹은 상가 위치)가 바닷가에서 가까운 곳이거나 저지대면 아예 처음부터 상담도 안 하고 바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학교 대피소에 있다는 상민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 괜찮은데, 먹을 걸 안 갖고 와서 배가 너무 고프다”고 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얻어먹으려고 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일단 대피소에 들어가면 학교 경찰이 24시간 지키면서 출입을 통제한다. 설사 경찰이 허가해준다 해도 지금 상황으론 운전이 불가능하다) 상민은 한동안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빌럭시에선 80명이 한꺼번에 몰살

점심식사 후 두어 시간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영주 아빠가 “다행히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이곳 모빌을 비껴서 지나갔다”고 했다. 대신 근처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 빌럭시 지역 피해가 엄청나다고 했다. 뉴올리언스는 아예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빌럭시에선 한 카운티에서 무려 80명이 몰사했다고 했다. 발전기를 돌려 TV를 켜보니 정말 뉴올리언스 시내는 교통신호등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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