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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논술강사 이재열의 청소년 글쓰기 실태 진단

주술(主述) 호응 무시, 극단적 흑백 논리, 논점 흐리는 ‘대충주의’

  • 이재열 모어댄논술학원 대표 ljyeol@hanmir.com

기자 출신 논술강사 이재열의 청소년 글쓰기 실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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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말은 상대적으로 매우 관대한 편이다. 주어가 생략돼도 문맥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면 과감하게 빼버린다. 예를 들어 ‘정부는 지진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 지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의료진도 파견할 예정이다’는 문장에서 뒷부분은 주어가 없지만 어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어에서는 세상 없어도 주어를 써야 한다.

시제는 또 어떤가. 영어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기본 시제에 완료형, 진행형까지 있지만 우리말은 훨씬 간단하다. 심지어 한 단어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표현할 수도 있다. ‘간다(go)’라는 동사를 예로 들어보자. ‘철수가 어제 교회에 가는데, 영이가 말을 걸었다’(과거), ‘철수는 지금 교회에 간다’(현재), ‘내일은 일요일이어서 철수는 교회에 간다’(미래)의 세 문장은 모두 문법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단수, 복수도 엄격하게 따지지 않는다. ‘최명희의 소설에는 주옥 같은 고유어가 많이 사용됐다’고 하면 되지, 굳이 ‘최명희의 소설들에는’이라고 복수임을 드러내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것이다.

‘거시기식 글쓰기’

많은 학자는 이를 두고 서구식 합리주의와 다른 동양 문화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국어 어법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제의 경우 우리말에서는 위 문장들처럼 ‘어제’ ‘지금’ ‘내일’처럼 시제를 알 수 있는 단어가 있으니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또 ‘많은’ 이라는 단어로 복수임을 알 수 있으면 굳이 복수 접미사까지 붙여 문장을 번거롭게 만들지 않는다.



이처럼 어법에 관한 한 국어가 영어보다 유연하며 관용적일 뿐만 아니라 합리성 측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문제는 이를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많은 학생이 우리글을 쓸 때 적당히 넘어가려는 ‘대충주의’에 빠진다는 점이다. 즉 의미만 대충 통하면 적당히 써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펴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제품 불법 복제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해외시장 개척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쓴 한 학생의 문장을 보자. 형식상으로 따지면 ‘해외시장 개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부분의 주어는 ‘불법 복제율’이 되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복제율이 발목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발목을 잡는 것은 ‘불법 복제율’이 아닌 ‘불법 복제’이므로 위 문장의 ‘해외시장’ 앞에 ‘불법 복제가’란 말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 이 문장을 쓴 학생은 “생략해도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데, 글은 말과 달라서 엄밀함을 더욱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우리가 한글과 다른 문자들을 비교해볼 때 매우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임을 알 수 있다’는 문장에서 틀린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답을 제대로 지적하는 학생은 열에 한 명꼴도 되지 않았다. ‘매우’ 앞에 주어 ‘한글이’를 반드시 써줘야 정확한 문장인데도 학생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이를 생략해도 의미가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글에는 더 나아가 의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표현도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이는 중·고생에만 해당되지 않는 전반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확한 단어를 써야 하는데도 대명사를 사용하는 바람에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이다.

‘황산벌’이란 영화에서는 계백 장군이 “우리의 전략 전술의 ‘거시기’는 ‘뭐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고 병사들을 독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을 해석하기 위해 신라(같은 민족 아닌가!) 진영에서는 연일 작전회의를 여는 우스개 장면이 나온다. 이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일상, 글쓰기에서도 이런 유의 ‘거시기식 글쓰기’가 자주 나타난다.

‘철수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이 의아스럽다’는 표현을 보자. 여기서 대명사 ‘것’은 완전히 ‘거시기’가 돼 버렸다. 왜냐하면 ‘것’을 씀으로 인해 이 문장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우선 ‘철수의 (텔레비전) 보는 자세가 이상하다’는 뜻일 수 있고 아니면 ‘밤도 아닌 벌건 대낮에 보는 것이 이상하다’나 ‘시험기간임에도 공부를 안 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한심한 모습이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모호함이 나타난 이유는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할 부분에 ‘것’이란 단어를 사용해 의미를 흐려버렸기 때문이다.

문법상으로는 별문제가 없지만 이해를 어렵게 하는 이런 식의 표현은 숱하게 많다. ‘정부가 언론보도에 대해 중재를 신청한 사건이 지난해 20건에서 올해는 50건으로 늘어났다. 이는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문장도 ‘정부와 언론이 얼마나 갈등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는 식으로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문장간의 논리관계가 선명해야 하는데 이를 얼버무리는 경우도 매우 많다. ‘어제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석을 했다’는 문장을 보자.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뒷수습을 해야 하느라 결석했는지, 아니면 도둑에게 충격을 받아 쓰러진 어머니를 병간호하느라고 그랬는지, 또는 통학수단인 자동차를 도난당했기 때문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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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모어댄논술학원 대표 ljyeol@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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