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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생명 같은 오른팔 잃고 나니 그들의 아픔이 보였어요”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 사진·박해윤 기자

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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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세창정형제화연구소의 진열대에 놓인 100컬레가 넘는 신발은 저마다 다른 장애와 사연을 지닌 주인을 떠올리게 한다.

족부의학을 공부하고 본격적으로 신발 제작에 착수하자 당장 급한 게 족틀(목형)이었다. 일반 신발은 형태와 크기에 따라 규격화된 목형이 나와 있지만, 장애인 신발 목형은 사람에 따라 일일이 새로 만들어야 했다.

“한 손이 없으니 입으로 물고 뜯고 하면서 수많은 족틀을 만들었습니다. 손, 입, 옷 가릴 것 없이 온통 본드가 묻어 난리도 아니었죠. 발의 장애를 동반하는 각각의 질병에 맞게 족틀을 응용해서 만들어야 하니 여간 머리를 써야 하는 게 아닙니다. 덕분에 아마 치매는 안 걸릴 겁니다.”

발에 꼭 맞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가령 소아마비로 보행에 불편을 겪는 고객이 방문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 시스템으로 양발의 무게중심을 측정한다. 이는 구두 도안을 그리는 기초가 된다. 다음으로 고객의 양쪽 다리 길이와 발을 자세히 관찰해 특징을 파악하고 석고 본을 뜬다. 석고 본이 굳으면 이를 토대로 발목과 발바닥이 기운 정도를 여러 각도에서 잰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신발 만드는 과정에 들어간다. 먼저 신발 도안을 완성한 다음 목형에 코르크를 붙여 도안에 알맞은 목형을 만든다. 목형에 가죽을 붙인 다음 이리저리 늘여 못을 박고 형태가 만들어지면 바느질을 하고 중창, 밑창을 단다. 간단한 과정 같지만 공정 하나에 수십, 수백 번의 손길이 간다.

신발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5일 남짓. 연구소엔 패턴사인 그를 포함해 재봉사, 저부(밑창) 기술자, 속창 기술자 등 12명의 직원이 있다. 소아마비, 당뇨, 류머티스 관절염, 무지외반증, 기형 발가락, 발 절단, 족저근막염, 평발 등으로 장애를 겪는 사람을 위한 특수화와 특수 깔창을 만든다. 하루에 생산하는 구두는 평균 여덟 켤레. 하루 200~300켤레를 만들 수 있는 일반 신발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량이다.



“일반 기성화는 조립이 가능해 하루 200켤레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화는 1㎜의 오차가 생겨도 장애인에게 큰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려도 어쩔 수 없고, 더욱 정성을 쏟아야죠.”

편안함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색상에도 신경 쓰는 고객이 많다. 신발이 얇다, 밑창을 두껍게 해달라, 모양이 뭉툭한데 날렵하게 해달라는 등의 까다로운 요구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지만, 옷과 달리 신발은 시침질하고 미리 신어볼 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완성된 신발이라 해도 고객이 신어본 다음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가차 없이 뜯고 새로 만든다.

더 예쁘게, 더 편하게

번거로움과 이익을 생각하면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건만, 그는 신발을 찾으러온 고객을 상대로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몇 번이고 확인한다. 어차피 큰돈 벌자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까다롭게 요구해야 자신에게 꼭 맞는 좋은 신발이 만들어질 수 있다며 오히려 고객들을 부추긴다.

“장애인이라고 예쁜 신을 신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게 아닙니다. ‘치마 입고 걷는 게 소원이니 예쁜 구두를 만들어달라’는 것이 신발 맞추러온 고객들의 한결같은 부탁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일그러지고 뒤틀린 발 모양이라도 신발 안쪽에 쿠션을 덧대서 겉은 매끈해 보이게 만듭니다. 또 양쪽 발 모양이 달라도 신발 모양은 똑같게 만들어요. 그래야 이상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고 1때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40대 초반 여성이 매장을 찾았다. 남궁 소장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 여성은 어릴 때부터 신발 욕심이 많았다고 했다.

“발이 뒤틀리고 아프지만 신발 욕심은 많아요. 병을 앓는 동안 이멜다 부럽지 않게 수많은 신발을 샀어요. 하지만 내가 신을 순 없으니까 남에게 주거나 그냥 버리고…. 그렇게 날린 돈이 어마어마해요. 여기서 신발을 맞춰 신은 지는 7년쯤 돼요. 진작 이런 곳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신발을 정말 예쁘고 편하게 만들어주세요.”

남궁 소장이 가장 가슴 아플 때는 8~9㎝짜리 장애아동용 신발을 만들 때다. 평생 특수 신발을 신고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가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는 비싼 돈을 주고 맞춤 제작한 의수를 착용하지 않는다. 어깨에 단단히 고정되지 않아 의수가 옷소매 안에서 덜렁거리기 때문이다. 별 쓸모도 없이 보기에 흉하기만 한 의수. 그래서 더 예쁜, 더 편한 구두를 만들어 장애인에게 신겨주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런 노력 끝에 그가 만든 신발은 지난해 ‘이 시대 좋은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예술의전당에 전시되는 감격을 누렸다. 2000년에는 장애인 복지향상에 일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이 됐다.

그해 미국 롱비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용품 전시회(Abilities Expo)’에 참가한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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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 사진·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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