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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③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농민의 논리, 국가주의 앞에 무너지다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귀신이 온다(鬼子來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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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온다(鬼子來了)’
든든하게 먹었으니 이젠 택시비 흥정에 나설 차례다. 일단 중간 지점인 쳰시(遷西)현까지 택시로 갈 작정이다. 탕산에서 쳰시까지 약 80km. 1시간30분쯤 걸릴 것이다. 택시를 잡고 흥정한 끝에 150위안(한화 1만9500원)에 가기로 했다. 중국에서, 특히 관광지에서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것이 가격 흥정이다. 예전에 항저우에서 인력거를 타고 골목길을 돌아볼 때였다. 10위안(1300원)에 가기로 했는데, 도착해서는 20위안(2600원)을 내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더니 중간에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한 번 대기했으니 10위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따져도 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 10위안을 더 얹어주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인력거를 타거나 말을 타거나 택시를 탈 때 확실하게 챙긴다. 중간에 쉬어도 되는지, 사람 수에 따라 요금이 다른지, 편도인지 왕복인지,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다.

이번엔 운전수를 잘 만난 것 같아 쳰시까지만 탕산 택시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목적지까지 계속 타고 갔다. 목적지까지는 미터기 요금대로 가고, 탕산으로 돌아올 때는 100위안(1만3000원)을 더 내는 조건이었다. 나중에 탕산에 돌아와 계산해보니 총 450위안(5만8500원)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도 먹지 않고 꼬박 열한 시간을 달린 것을 생각하면 거저 다녀온 셈이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아마 2박3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마땅히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최종 목적지는 시펑커우(喜峰口)라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댐에 수몰된 장성이 있고, 영화 ‘귀신이 온다’를 찍은 세트장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장성이 물 속에 잠겨 있을까.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버티면서 탕산에서부터 다섯 시간을 내리 쉬지 않고 달렸다. 살면서 그처럼 많은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쓴 적도 없다. 일대가 온통 철광석 광산 지대였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들이 온통 철광석이고, 길옆으로 늘어선 산에는 생전 처음 보는 노천 철광이 연이어 나타났다.

중국은 철광석 매장량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하지만 세계 1위의 철강 소비국이자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이다. 우리나라에서 철강을 가장 많이 사가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고, 전세계 철강 소비량의 23%를 차지한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의 자동차, 가전, 조선, 건설업이 활기를 띠면서 철강 수요가 급증해 세계적으로 철강 가격이 급등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근 제련소로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일으키는 시커먼 흙먼지를 대책 없이 들이마셨다. 옷도 얼굴도 온통 새까맣다. 침을 뱉으니 그마저 까맣다. 따가운 목을 생수로 헹구는데 문득 공포가 엄습했다. 중국의 비약적 발전이 인류에게 비극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중국의 운명은 좋건 싫건 세계적 공안(公案)이고, 근접해 있는 우리에게는 특히 민감한 문제다. 중국은 머지않아 경제 대국, 또 하나의 제국이 될 것이다. 그 제국이 인류에게, 동아시아에, 무엇보다 중국인에게 축복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중국 작가 루쉰을 흉내 내어 말해보자면, 중국은 마땅히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미국이나 서구 근대가 갔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한국인과 중국인 자격요건

이러이러한 사람이 한국인이고, 이런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식으로 어느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나열한다면 한국 국민과 중국 국민이 되기 위한 공통 조건 중 하나는 일본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일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국민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자, 국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처럼 여겨진다. 양국에서 ‘항일(抗日)’은 대외용이 아니라 대내용인 경우가 다반사다.

올해 중국의 반일(反日)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그리고 일본인이 단체로 광저우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된 일이 맞물려 최근 몇 년 동안 반일 열기가 고조됐는데, 올해 들어 정점에 달한 느낌이다. 일본 패전 60주년을 우리는 광복 60주년이라고 하고, 중국은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60주년’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 중국을 지켜냈다는 항일전쟁 승리에 대한 자부심이 여기에 들어 있는 셈이다.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장제스(蔣介石)의 중국국민당과 경쟁할 때, 중국공산당이 민심을 잡은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중국공산당의 항일운동이었다. 항일운동 때문에 중국인은 중국공산당을 민족주의 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국에서의 항일은 일본의 잔악한 제국주의 침략 행위를 폭로하는 일이자 중화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임을 부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중국인으로 하여금 항일전쟁의 기억을 상기하도록 적극 나서는 정치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전 승리 60주년을 기념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가 끊임없이 선을 보이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이 천편일률이다. 중국공산당이 항일투쟁을 지도하는 가운데 전중국인이 나서 지난한 전투 끝에 마침내 일본군을 이기고, 일본군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폭로하는 것이 고정 레퍼토리다.

그런데 영화 ‘귀신이 온다’는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된 후 50년 동안 지속된 중국 항일 영화의 패턴을 단번에 뒤집어 버렸다. 무대는 일본에 점령당한 한 농촌 마을이다. 그러나 항일운동을 지도하는 중국공산당이 등장하지 않고, 마을 주민에겐 일본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이 없다. 마을을 점령한 일본군과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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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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