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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특집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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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번지는 희망의 바이러스

▼ 이명박 서울시장

2005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서울청계천이 복원된 후 열흘쯤 지나 동대문 지하상가에 간 일이 있다. 오래 전에 건설되어 시설도 낡고 공기도 탁한 그곳에 들어서면서 나는 내심 걱정했다. 사실 시장(市場)은 정치인을 반기는 곳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연말연시, 명절마다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시장이건만 상인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상인들의 표정이 밝았다. “시장님, 시장님” 하며 악수하고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그들이 내민 손을 잡으며 장사가 잘 되냐고 물었다. 상인들은 “아직까지는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사람이 많이 오니 앞으로는 잘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하상가에서 하루 종일 장사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났는데, 요즘은 청계천변에 나가 맑은 물 보며 심호흡하고 내려오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다. 주름진 얼굴 사이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들은 “이명박 시장이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얼마 뒤 언론을 통해 청계천 주변 상가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청계천이 새물을 맞은 이후 많은 분이 칭찬해주신다. 통수(通水) 한 달 만에 620만명이 다녀갔고, 국제적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 뒤에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과연 내가 상인들에게 약속한 대로 그분들의 장사가 잘될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만약 상권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상인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잖아도 불경기로 장사가 안 되는 이곳 사람들을 ‘2년만 지나면 틀림없이 좋아진다’는 믿음 하나로 설득했는데, 상인들을 속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텐데…” 걱정은 내 마음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물론 리모델링이나 이주단지 조성 등 최선의 대책을 마련했지만, 서울시는 상인들에게 단 1원의 현금보상도 하지 않았다. 이전보다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만을 제시하며 이해를 구했다. 처음부터 상인들이 납득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울시의 진정성을 이해해줬고, 대승적인 관점에서 협조했다.

처음엔 상인들을 설득하는 문제를 두고 서울시 공직자들과 나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경제적인 보상도, 문서 약속도 없는 협상방식을 공직자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문서로 보장하고 공증을 세워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말로 하는 약속을 믿겠느냐는 것이었다. 청계천 주변에는 22만명의 상인과 1500명의 노점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각각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서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만약 보상을 한다고 했으면 금액을 절충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을 것이다. 보상이 없다는 원칙을 정해버리면 실패할 가능성도 크지만 성공할 가능성 또한 크다. 대신 서울시 당국이 민원인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이제까지의 국책사업은 보상이 관건이었다. 가까운 예로 방폐장 건설만 봐도 꼭 필요한 사업인데도 정부가 수조원대에 이르는 지원을 약속한 지 19년 만에야 해결됐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은 무보상으로 2년여 만에 완수했다. ‘신뢰의 승리’였다.

10월1일 준공식 자리에서 준천사를 읽는 내 눈앞에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던, 청계천 복원을 반대하던 분들의 얼굴이 고마운 얼굴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간 내 속에 쌓여 있던 갈등과 증오와 미움의 감정들이 남김없이 씻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분들의 반대가 각오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고, 칼날 같은 지적과 조언이 복원과정을 더욱 치밀하고 섬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갖는 상인들을 보면서 나도 희망을 갖는다. 도시인들은 길 가다가 어깨를 조금만 부딪쳐도 눈을 흘긴다. 그러나 청계천에선 맑은 물을 보다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이나, 발을 밟힌 사람이나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청계천 복원으로 닫힌 가슴이 열리고 막힌 경제가 뚫리기를 기대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힘을 합하면, 서로 신뢰하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바이러스가 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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