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의 지지도는 늘 선거를 기점으로 변곡점을 찍었다. 4·30 재·보선 직전 박 대표의 지지도는 주춤대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이는 박 대표의 지지도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러나 7월 들어서면서 이 시장의 지지율이 다시 치고올라왔고, 박풍(朴風)의 기운은 잦아들었다. 박 대표는 야당 대권주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지지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7월2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지지도 조사 결과는 박 대표 12.9%, 이 시장 15.1%였다.
10·26 재·보선은 박 대표로서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계기였다. 박 대표는 자신의 측근을 의원직 사퇴시켜 선거에 내보내며 ‘재·보선 올인’ 전략을 다시 구사했다. 결과는 4대 0 완승.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0월31일 조사에선 박 대표의 지지율이 19.2%로, 21.6%인 이 시장을 바짝 추격했다. 박 대표는 내년 초까지 적극적 행보로 지지기반을 다진 뒤 5월 지방선거에서 다시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전망된다. 11월8일 한나라당 중앙위원들을 상대로 한 박 대표의 연설에선 적극성이 배어나왔다.
“황우석 교수팀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 최고가 됐습니다. 지방선거와 대선 승리를 위해 우리 모두 월화수목금금금이란 생각으로 노력합시다. 저의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딱 ‘철의 여인’ 대처 영국 전 수상 스타일이다.
고건, 움직이니 추락하더라
10월24일 저녁 삼성서울병원. 이회창 전 총재의 모친 김사순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그곳에 고건 전 총리가 들어섰다. 수행원도 몇 명 대동하지 않은 채 조용히 나타났다. 빈소를 지키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악수만 했을 뿐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나갈 때도 조용히 사라졌다. 몇 시간 뒤 찾아온 이명박 시장이 2시간 동안 떠들썩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다 간 것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시간은 9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대통령발(發) 연정론이 정국을 흔들고 있었다. 내년초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고 전 총리 주변에서도 조기 대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준비 없이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진언이 쏟아졌다.
이윽고 고 전 총리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 즈음 그와 독대했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신중하기만 하던 그로부터 확고한 권력의지가 읽히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도와달라” “젊고 좋은 사람들을 좀 모아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뭔가를 만들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리고 고 전 총리는 9월12일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하는 중부권 신당 행사에 참여했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당의 정책연구소 ‘피플 퍼스트 아카데미’ 심포지엄이었다. 그 자리엔 민주당 한화갑 대표도 참석했다. 고 전 총리는 “개인적 친분관계에 의한 불가피한 참석”이라고 설명했지만, 고건-심대평-한화갑 연대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9월2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은 폭락했다. 7월 같은 기관 여론조사에서 35.1%로 부동의 1위를 달리던 고 전 총리는 이날 27.9%로 주저앉았다. 반면 이 시장은 20.3%로 바짝 고 전 총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가 중부권 신당 및 민주당과 어울리는 듯한 장면과 지지율 하락 사이에는 분명 인과관계가 있다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고 전 총리 진영에도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측근 인사들의 의견이 갈렸다. 고 전 총리의 현실정치 참여를 주장해온 측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 노선과 지지기반이 분명하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다. 더욱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들의 조언이었다.
그러나 신중한 접근을 주장해온 측근 인사들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고 전 총리의 경쟁력은 높은 지지율에 있다. 이를 지렛대 삼아 차기 대권구도가 요동칠 때 단숨에 중심부로 진입해야 한다. 현재로선 정치와 관련해 아무 일도 안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 최종 결론은 후자였다고 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고 전 총리의 지지도에 대해 “적극적 지지라기보다는 반(反)정치인 정서가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와 담을 쌓고 있기에 부동의 1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담을 허물려는 순간 지지도도 함께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로선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고 전 총리의 하루 일정은 아침 일찍 서울 종로구 동숭동 자택 부근 동네 목욕탕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20년 단골인 이 목욕탕 때밀이 침대 위에서 자신이 개발한 체조를 한다. 근처 설렁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마로니에 공원을 산책한다. 연지동 사무실로 걸어서 출근하고 점심도 그 주변에서 먹는다. 지인들과 대학로 주변에서 가끔 만난다. 그것이 그의 하루다. 그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정에서 당분간 일탈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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