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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의 시드니 통신

호주의 든든한 친한파, 변조은 목사·버지니아 저지 하원의원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우리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ipsyd@naver.com

호주의 든든한 친한파, 변조은 목사·버지니아 저지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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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는 나쁜 말이지요”

하루는 변조은 목사가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청년 두 사람이 “야, 양코배기 새끼가 탔다”며 시시덕거렸다. 변 목사는 잠자코 있다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새끼’는 나쁜 말이지요”라고 한 마디 했다.

언젠가 변 목사가 “참 웃긴다”는 말을 하자 홍길복 목사가 “목사님은 천재적인 언어감각을 갖고 태어나셨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변 목사가 버럭 화를 내며 한소리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한국말을 배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사실 그는 대단한 언어학자다. 모국어인 영어와 대학에서 전공한 히브리어는 논외로 치더라도 예수가 사용한 아람어에도 능통하고, 약간 더듬거리지만 호주 원주민이 쓰는 애보리진어와 인도네시아어도 구사한다. 필자는 천자문까지 익힌 변조은 목사가 고사성어를 써가며 한국어로 설교하는 걸 듣고 그가 한국인이라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이쯤에서 홍길복 목사의 회고담을 직접 들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교신학대에서 공부한 홍 목사는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고초를 당한 바 있는데, 훗날 변조은 목사의 초청으로 호주에 정착했다.

“변조은 목사님과 여러 차례 함께 여행을 했는데, 한방을 쓰기엔 영 적합한 분이 아니다. 이분이 새벽 4시 전후에 깨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자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명상에 잠기는데 그래도 옆사람이 편히 자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기왕에 설친 잠, 나도 일어나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멜버른 근처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분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 가기 전에 소에게 여물을 주고 젖을 짜는 일을 해야 했다. 그때의 습관이 평생의 습관이 된 것인데, 여행 동반자로는 부적하지만 목사로서는 얼마나 바람직한 습관인가.

변 목사님이 한국에 기여한 공로는 선교사 생활과 장로교신학대학 교수생활 이 전부가 아니다. 한국 농촌의 빈곤퇴치운동과 도시빈민운동, 노동자인권운동, 정치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로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

우선 그가 가르친 제자 중 도시산업선교회 총무를 지낸 인명진 목사와 빈민운동을 하면서 활빈교회를 설립한 김진홍 목사의 활동을 생각해보면 그의 민중사상과 사회의식이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호주 원주민 인권운동 등 호주의 소수민족을 위해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목사님은 YH 사건, 도시산업선교회 사건, 국제어페럴 사건 등에 관여했고 김대중 선생의 석방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변 목사님은 호주로 돌아온 뒤에도 한국의 민주화에 무관심할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여러 제자가 긴급조치 위반 으로 수감돼 있을 때 위로편지를 보내주셨고, 관계 당국에도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비단 정치·사회적인 사안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빈민구제 쪽에 더 큰 관심을 뒀다. 그래서 김진홍 목사가 설립한 활빈교회에 호주의 소를 보내줬고, 도시산업선교회를 통해 노동운동과 도시빈민운동을 함께 지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1974년 호주 최초의 한인교회인 시드니연합교회를 설립한 주인공으로, 호주 한인교회 30년 역사의 산 증인이자 정신적인 지도자다. 한국 사람인 나보다 한국과 한국인을 더 지극하게 사랑하는 분이다.”

최초의 한인교회 설립

변조은 목사가 12년간의 한국파송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온 1972년, 호주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서너 가구의 한국인과 만날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예배모임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1974년 7월경, 변조은 목사의 친구이며 대한예수회 총회장인 김윤식 목사가 시드니를 방문했을 때 시드니에 사는 한국인들이 환영행사를 마련했다. 그때 한국인 교회를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고, 1974년 9월6일, 마침내 한인들이 모여 예배하는 ‘시드니 한국인 크리스천 교제회’라는 모임이 시작됐다. 이 모임이 훗날 최초의 호주 한인교회인 시드니연합교회로 발전했다.

교제회 모임엔 개신교 신도뿐 아니라 호주에 유학 온 두 명의 가톨릭 신부도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개신교 목사와 가톨릭 신부가 교대로 예배를 인도했다. 또한 교제회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그 공동체는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 없이 한인들의 친목도모와 정보교환을 위한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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