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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⑫

전국시대의 영재, 오기(吳起)의 생애

자존·공명·결단의 야심가, 중상모략에 무너지다

  • 박동운 언론인

전국시대의 영재, 오기(吳起)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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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영재, 오기(吳起)의 생애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사진)는 잦은 당적 변경으로 구설에 올랐다. 중국 전국시대의 영재 오기도 국적 변경 시비에 휘말렸지만,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인물평을 들은 문후는 오기를 정중히 불러들여 직접 대화를 나누고는 중용키로 결심했다. 문후는 인재 등용에 있어 부질없이 회의를 소집해 자문하거나, 말단 정보원들의 보고서 읽기 등에 구애하지 않았다.

당시 위나라는 중원의 선진지역에 위치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서도 강대한 편이었다. 또 문후는 개혁과 개방의 정치를 표방하면서 인재 등용이 국운을 좌우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위나라엔 신흥의 기상이 왕성했다. 오기를 중용한 것에서 보듯이 소악(小惡)에 구애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대담하게 등용하고 특별대우와 신임하는 데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임명식 거행에 앞서 성대한 환영 연회를 마련했는데, 문후의 부인이 직접 술을 따라 오기에게 바치기도 했다. 이어서 융숭한 의식을 거행하고 오기를 정식으로 대장에 임명했다. 전국시대치고도 휘황찬란했던 오기의 본격적인 군사적·정치적 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오기는 감격에 겨워 위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무한충성을 바치고자 결심했다.

문후는 오기를 대장으로 임명하고는 잠시 군정을 파악하게 한 뒤 중대한 명령을 내렸다. 서쪽 강대국인 진(秦)나라에 대한 진공을 명령한 것이다. 목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하서(河西)지구 점령이었다. 이 지방은 오늘의 산시성(山西)성과 산시(陝西)성의 경계를 흐르는 황허(黃河)와 산시성 서북부를 관통하는 뤄수이(洛水)의 중간지대인데, 그동안 위진 양국의 군사적 충돌이 빈번했다가 당시는 그 대부분이 진군의 점령하에 놓여 있었다. 진나라의 중원 진출 근거지 격이고, 위나라에 최대의 위협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오기는 위군 주력을 이끌고 진격을 개시해 2년에 걸쳐 적국의 5개 성을 함락시키며 하서지구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오기 병법의 요체는 적군 사령관의 심리 및 생태 파악이고, 다른 한편 아군의 군심 장악이다. 이는 슬기로운 통찰력과 크나큰 영도력을 전제로 한다.



기뻐한 문후는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하서군을 설치하고는 오기를 태수로 임명했다. 군사와 더불어 정치도 일임한 것이다. 정치에서는 청렴의 본보기를 말없이 실천하면서 ‘변법(變法)’이라는 개혁을 단행해 사회 기풍을 신뢰와 화합 위주로 일신했다. 경제에서는 이른바 ‘지력지교(地力之敎)’를 펴나가 지방 실정에 맞는 개발정책으로 세금을 줄이면서 민생을 향상시켰다. 군사에서는 ‘무졸(武卒)’이라는 상비군을 창설해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그 가족들을 따뜻이 보살폈다.

오기는 일상생활에서 특권층 행세를 하지 않았고, 사병과 고락을 같이하며 검소했다. 언행이 자연스럽고 명확하며, 실정을 빨리 이해해 부하들이 우러러 봤다. 오기의 하서지구 통치 기간은 약 20년에 달하는데, 당시의 모든 기록과 문헌이 그를 찬양하고 있다. 그는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통해 장교와 하사관에게 ‘부하 사랑’을 교육하기도 했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해진다.

한번은 한 병사가 종기로 고통을 겪는 안타까운 광경을 발견했다. 오기는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입으로 고름을 빨아냈다. 병상에 있던 병사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통곡했다. 이웃이 타일렀다.

“당신 아들은 병사에 불과하지만, 오 장군께서 친절하게 고름까지 빨아내 주셨는데, 감사 대신 통곡이 웬일이오?”

병사의 모친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이전에 오 장군이 그 애 아비의 고름을 빨아낸 일이 있었지요. 그러자 감격해서 오 장군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고, 전선에 나가서는 형세가 불리해도 후퇴하지 않고 싸우다 전사했어요. 이번에는 아들까지 그렇게 되겠으니 슬퍼 우는 거요.”

야릇한 ‘2세 심리’와 탈출 구상

그런데 오기를 등용하고 신임하던 명군 문후가 세상을 떴다. 후계자는 무후(武侯)였는데 나이가 어렸다. 오기는 무후의 경험 부족을 고려해 간언과 건의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판단은 ‘2세 심리’를 모르는 오판이었다. 2세 또는 후계자는 경험담이나 잔소리를 싫어한다. 아울러 오기 또한 인간이니 때로는 대상에 대한 심리적 통찰에서 실책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무후는 누나인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오기는 이를 거절했다. 여복이 없다고 믿는 자학심리 같은 것이 의식의 심층에 자리잡은 데다, 공주가 가문만 믿고 남편을 업신여기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존심이 손상된 무후는 오기를 불신했다. 그후 신설된 재상직의 주인공이 전문(田文)에서 공숙(公叔)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오기는 승진에서 소외당했다. 2세는 1세의 그늘에 안주하지 않고, 독자적인 권위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애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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