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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제언

‘쌀 비준’ 이후 농촌, 어떻게 할 것인가

식량자급목표 수립, 보조금 지원, 악성부채 탕감 서둘러야

  • 윤석원 중앙대 교수·농업경제학

‘쌀 비준’ 이후 농촌,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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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비준’ 이후 농촌, 어떻게 할 것인가

농촌은 쌀 수입 비준 뒤 허탈감에 빠졌다. 사진은 전북 정읍의 한 들녘에서 생강을 수확하는 농민.

수매제도를 3∼5년 늦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쌀 비준 문제부터 푼 뒤, 시간을 갖고 수매제도 개선을 준비했어야 했다. 쌀 유통 인프라 구축, 마케팅 기법 개발, 대국민 홍보, 학교급식 문제 해결 등 수매제도가 없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면서 동시에 농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양정(糧政·농촌정책)을 연착륙시켰어야 했다.

현재의 사회적 갈등과 농민의 격렬한 저항, 국회의 고민 등 이 모든 갈등구조의 원인은 쌀 재협상과 관련된 비준 문제와 함께 양정의 용감한(?) 전환에서 발생했다. 쌀 비준문제와 동시에 추가 대책, 공공 비축제 시행에 따르는 매입물량, 매입방법, 매입가격, 지역별 품종별 차이문제, 쌀 소득 보전 직불제 시행과 관련된 목표가격 설정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쌀 제외하면 식량자급률 2%

양정제도의 전환 시기를 잘못 선정해 갈등을 증폭시킨 것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다. 정책 입안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농민의 불신과 저항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지나간 일로 묻을 것이 아니라 솔직히 반성하고 인정할 때 미래가 있고 올바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현존하는 WTO 체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WTO 체제가 지닌 문제점이나 한계, 이중성이나 부도덕성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제라도 WTO 체제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를 농업과 농촌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을 지키고 쌀을 살리기 위한 철학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농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농정철학을 바탕으로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식량자급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으며 미래에도 변함없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 중요성이 때로는 희석되기도 하지만, 다시 중요해지는 순환성을 갖고 있다. 쌀 시장의 개방 여부와 상관없이 식량안보나 식량주권의 중요성은 변함없다. 농지를 최대한 보존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이며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2%도 안 된다. 더구나 주식인 쌀만 자급하고 조금 남을 뿐, 매년 약 10조원의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쌀마저 수입해 먹고 살아야 할 경우 우리 후손들은 해마다 쌀을 수입하는 데 수십조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도 쌀에서 얻는 소득이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곡창지대의 경우 거의 쌀에서 소득을 얻고 있어 쌀은 농가의 소득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작물이다.

미국 쌀 농가 소득 50%가 보조금

이뿐만 아니라 쌀 농사는 ‘국토의 정원사’로서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홍수를 조절하며, 공기를 정화한다. 토양의 유실을 방지해 수질을 정화하는 기능도 있다. 또한 쌀 농업이 존재함으로써 농촌이라는 지역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숨쉴 공간을 제공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기능을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 또는 다원적 기능이라고 인정한다.

우리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농정이 추진돼야 지속가능한 쌀 농업과 농촌이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이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쌀 농업과 농촌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선진국형 농업과 농촌정책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WTO 체제하에서는 농산물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유무역을 통한 개방은 불가피하다. 시장기능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농민의 경쟁력 제고 노력은 필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농산물 수출 선진국인 미국, EU,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의 나라가 각종 명목으로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TO 체제하에서도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가령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명목으로 하는 허용대상 보조금(green box) 지급이 가능하며, 품목별 최소허용 보조금(de minimis) 지급도 가능하다. 농가소득이 급격하게 낮아졌을 때 지급하는 보조금 등 다양한 보조금이 있다.

예컨대 미국 쌀농가 소득의 50%가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서 나오며, EU 농업예산의 약 80%가 보조금으로 이뤄져 있다. 캐나다도 농가소득 안정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선진국 농업의 경쟁력과 농촌의 유지는 사실상 각종 명목의 보조금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제3세계국가나 개발도상국은 국가 재정이 빈약해 농업과 농촌에 투자하거나 지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측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농가별 소득안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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