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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춘향가는 안숙선이 부르고,돈은 프랑스 감독이 벌고…”

  • 김명곤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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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소”

김명곤 국립중앙극장장의 ‘한한류(寒韓流)론’

2004년 영화인과 제작자들이 스크린 쿼터를 지키자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내게 판소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나는 판소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혼자 레코드를 듣고 책을 보며 공부했다. 오페라, 아리아의 열광적인 팬이던 내가 판소리에 빠져든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말 서울 종로 부근을 지나가다 ‘박초월 국악학원’을 발견하고는 무작정 쳐들어갔다. 처음 배운 노래가 ‘진도 아리랑’이었는데, 내가 노래를 부르면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선생님이 나중에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내가 판소리를 소프라노로 노래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벨칸토 창법으로 판소리를 했다.

학원에 들어간 지 두 달째. 학원비가 없어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자네는 공짜로 다니소. 서울대생이니께” 하며 배려하셨다. 몇 달이 더 지나자 선생님께서 “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소”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한식구가 되어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동안 판소리를 공부했다.

가르침을 받는 동안 나는 광대와 명인(名人), 그리고 명창(名唱)의 세계를 깊이 알게 됐고,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 탈춤, 풍물, 굿에도 관심을 쏟았는데 그게 1970년대 문화운동과 연결됐다. 그 흐름이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으로 연결됐고, 우리 사회에 전통문화를 재창조하고 현대화하자는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전통은 묵은 옛날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모 신문에 게재된 ‘미스 킴 라일락과 수수꽃다리’라는 칼럼에서 나온 얘기다. 우리나라에 수수꽃다리라는 라일락 계통의 꽃이 핀다고 한다. 6·25전쟁 때, 원예를 공부한 한 미군 병사가 그 꽃의 씨앗을 채집해 키우면서 품질을 개량해 예쁜 라일락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유일한 단어 ‘미스 킴’으로 꽃 이름을 지었다. 그 라일락이 현재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했고, 미군 병사는 억만장자가 됐다. 한 나라의 들꽃이 때로는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03년 파리 음악축제에서 특집으로 판소리가 공연됐다. 프랑스의 한 예술감독이 한국의 판소리 다섯 마당을 들여와 파리에서 공연하도록 했다. 공연 당시 한국의 명창들은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파리 시민 사이에 판소리 붐이 일어났다. 그 뒤 미국의 링컨센터에서 파리에서 했던 공연을 그대로 재현해달라며 초청했고, 에딘버러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두 공연 모두 대성공이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데는 이때의 성공이 한몫 했다.

신화 속 인물 역사화하는 중국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당시 프랑스 예술감독이 내게 찾아와 자문했을 때 내가 “외국인에게는 판소리 가사를 자막으로 번역해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관광부에 가서 번역료 지원을 부탁했고, 결국 지원을 받았다. 그러고는 자기 앞으로 저작권을 설정했다. 안숙선의 춘향가 등에 저작권을 설정해놓은 덕분에 그는 링컨센터와 에든버러에서 공연할 때 짭짤하게 돈을 벌었다.

얼마 전 튀니지에서 2006년에 안숙선의 춘향가를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국립극장으로 들어왔다. 또 자막을 써야 하는데, 그 프랑스인에게 저작권료를 줘야 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공연담당팀에 “우리가 돈을 들여 다시 번역하고, 국립극장 앞으로 저작권을 설정하자”고 건의했다.

국내 어느 기획자도 판소리 가사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저작권을 설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판소리를 공부한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럽의 기획자는 알고 있었다. 이들은 남미·아프리카·인도·중국·일본 등의 전통예술단을 초청하고, 그 뒤에서 저작권료로 돈을 번다. 문화상품을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데 도사들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단계다. 아직도 ‘판소리는 세계문화 시장에 내놓아도 돈벌이가 될 문화상품이다, 저작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다. 우리 것을 다 뺏기고 나면 우리의 탈춤과 풍물을 공연해도 돈은 외국에서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수수꽃다리만 외국 업체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우리 토종 꽃 종자도 대부분 외국업체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1년에 로열티로 나가는 돈만 1000억원이 넘는다. 전통예술에도 그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문화관광부는 2004년 10월 문화의 달 행사의 캐치프레이즈를 ‘전통이 미래다’로 정했다. 내가 총감독을 맡았는데, 전통은 회귀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가꿔 나가는 핵심 키워드다. 전통과 IT산업, 전통과 영상산업. 언뜻 합쳐지지 않을 것 같지만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런 과제 속에 국가 이미지 제고의 방법과 국가의 미래 전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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