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신고 복지시설에 기거하는 노인들. 시설이 곧 폐쇄될 운명이어서 내일이 암담하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하고 서울 변두리 아파트에 사는 한 은퇴자는 요즘 점심도 굶고 동기들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 은퇴할 당시 비교적 충분한 자금을 은행에 예치했기 때문에 자신의 은퇴 생활이 안정적일 것으로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1억원을 예치해도 한 달에 받는 이자수입은 27만원에 불과하다. 5억원을 예치했다고 가정해도 매월 135만원 정도다. 이 정도의 수입으로는 기대하는 만큼의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결국 원금을 깨야 하지만 용기가 없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주야장천이다. 결국 모임에도 나갈 수 없고 아파트 주위만 맴돌게 된다. 이런 불행의 주범은 다름 아닌 저금리 기조다.
고금리의 추억, 빨리 잊어라
외환위기 이후 7∼8년 동안 국내 금리는 계속해서 하락했다. 시중 금리가 20%대에서 3%대로 하락하면서 저축성 상품의 금리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요즘 세금 공제 후 정기예금의 수익률은 3%에 불과하다. 200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 생활물가 상승률이 4.9%여서 이를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돈을 은행에 맡길수록 돈의 구매력이 하락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초미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투자하다 보니 저금리의 영향을 생각보다 크게 받고 있다. 한국의 개인 금융자산은 1100조원, 이중 640조원이 정기예금과 적금에 분산돼 있다. 펀드에 투입된 것은 65조원. 보험과 연금 상품에도 220조원이 들어가 있지만, 대부분 확정 금리형이다. 수익률이 변화하는 변액 보험에는 3조원밖에 없다.
이렇듯 은행의 확정 금리형 상품을 중심으로 자산을 관리하다 보니 저금리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우리와 다르다. 개인 금융자산 중 예금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13.9%에 불과하다. 반면 펀드가 11.6%이며 27.2%에 달하는 연금 중 상당부분이 펀드를 이용해 투자하고 있다.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을 이용해 저금리 문제를 슬기롭게 이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금리 현상이 하루아침에 뒤집힐 것 같지 않다. 경제 구조가 저성장 구조로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물가, 저성장, 저출산율, 채권 위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 고령화 등의 여러 변수를 생각해보면 금리는 지금처럼 매우 낮은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저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투자자들은 고금리 시대와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생존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낮은 금리의 예금 상품에서 벗어나 주식과 장기채권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걱정은 하되 준비하진 않는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7명이 과거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그간 노후 준비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30∼40년의 노후를 보장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국민연금이 아니라도 베이붐(1954∼1964년생) 세대 끝자락에 태어난 자식까지는 끈끈한 가족의 정을 의무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들과 딸에게 용돈이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문제는 노인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 남은 지금의 젊은층과 중·장년층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지역 직장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생활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32.4%, ‘별 준비가 없다’는 응답은 45.1%,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응답도 22.5%나 나왔다.
연령별로는 40대 응답자의 40%, 50대 응답자의 41.5%가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20대와 30대는 각각 19.2%, 31.5%만이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0∼30대가 준비에 게으른 이유로는 결혼 및 주택자금 충당을 꼽았다. 물론 이들이 멀어 보이는 노후에 대해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후 준비는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길수록 부담이 적어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이 절반이라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