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화곡동 재건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압수한 뇌물과 서류들.
하지만 사업추진 과정에서 고도제한이 강화돼 토목공사 물량이 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첫째, 대우건설이 고도제한 강화로 인한 사업 차질을 조합에 알린 것은 1997년 3월. 하지만 4개월이 지나 고도제한 문제는 해결됐다. 조합은 아파트 단지에 ‘고도제한 해지’라는 플래카드까지 내걸었고, 조합원에게 800억원의 이익이 돌아오게 됐다고 알렸다. 결국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고도제한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둘째, 장애물 차폐면 설치 기준을 명시한 항공법시행규칙 제248조 제2항은 1994년 6월24일 제정됐다. 그 뒤로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건설이 사업에 참여한 것은 시행규칙 제248조 제2항이 제정된 이후인 1995년 6월이다. 이미 장애물 차폐면 설치 기준쯤은 숙지하고 사업에 참여한 셈이다. 그런데도 마치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뒤 장애물 차폐면 적용 기준이 새로 생긴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대우도 알고 있었다?
셋째, 장애물 차폐면 적용이란 비행 안전을 위해 자연지형의 꼭대기에서 수면표면까지 하방경사도 10분의 1의 선을 그어 만든 경사면보다 낮은 높이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연지형인 수명산의 후면에 있을 경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지형 높이(72.3m)까지 건설할 수 있다.
감사원은 이를 문의한 조합에 “수명산 후면에 있다면 산 높이까지 지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서울지방항공청 관계자도 “화곡동 시범아파트는 수명산 후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명산 높이까지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넷째, 1998년 대우건설이 사전 결정 심의를 받기 위해 강서구청에 제출한 ‘화곡주공시범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의 대지 종단면도를 보면 102, 150, 145동을 제외한 모든 동의 높이는 수명산 정상의 높이인 해발 72.3m까지 올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예외인 102, 150, 145동도 장애물 차폐면 적용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동 옆의 도로 때문에 도로사선 제한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암반이 나와 발파작업”
결국 대우건설은 애초부터 없던 고도제한 강화(장애물 차폐면 적용)를 들어 공사비를 올린 셈이다. 이는 자치회장 L씨가 1997년 7월 조합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1995년 6월 시공사 선정시 대우측이 제시한 조감도를 보면 39, 40동(옛 단지의 동·호수, 장애물 차폐면을 적용받는 수명산 측면 추정)에는 저층빌라와 분수대를 설치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며 “이미 대우가 고도제한에 대해 파악하고서도 재건축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우가 있지도 않은 고도제한 강화를 내세운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대우가 일부는 장애물 차폐면 적용을 받았다고 끈질기게 주장한데다, 고도제한으로 인해 공사비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측정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공사비 착복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공사비 230억원이 더 들었다는 암반 공사도 의문투성이다. 대우건설은 검찰에서 시공사 선정 당시에는 토목 공사를 일반 토사(모래)를 기준으로 했지만, 실제 지질조사 결과 암반이 많이 토출돼 공사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 박모 차장도 기자에게 “암반이 많이 나와 발파 작업을 하다 보니 공사비가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각종 자료와 전문가의 견해는 대우건설의 주장과 배치된다. 우선 대우건설은 시공사 선정 이후인 1996년 4월 12곳을 시추해 지반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재건축 부지가 풍화토, 풍화암, 연암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표면에서 지하 6m 정도까지는 풍화토와 풍화암, 지하 6∼23m까지는 연암이 산재해 있었다. 대우건설은 이를 토대로 설계했다.
1998년 사전 결정 심의 때 구청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다수 건물이 풍화토, 풍화암 지대에 세워졌다. 연암층을 깎고 건물을 세운 부분은 극히 일부다. 이에 대해 강서구에서 활동하는 한 건축사는 “풍화토와 풍화암은 손으로 으깨면 부서지고, 연암은 포크레인으로 충분히 파낼 수 있다. 발파작업은 경암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발파작업을 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없고, 설혹 도급업체가 발파작업을 했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가 230억원이나 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