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자를 격리한다고 사회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 내 한 수감자.
네 명을 죽이고 다섯 번째 희생자를 찾기 위해 어느 시골을 찾아간 그는 노부부가 사는 한 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마침 집에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담배 한 개비를 청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노인을 죽이고 물건을 훔쳐 나갈까’를 궁리했다.
그런데 노인이 뜬금없이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하며 혀를 차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귀에 푹 꽂혔다. 순간, ‘그렇지. 밥 한 그릇이면 되는데,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밥 한 그릇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는 노인에게 물었다.
“영감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봐. 뭣 때문에 다투는지 이해가 안 돼서 그래”라며 툭 내뱉었다. B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돌렸고,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목숨을 건졌다. 이 말을 가슴에 묻은 B는 더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만난 날 이 말을 중얼거렸던 것이다.
요즘 B가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면 제법 여유가 느껴진다. 사실 그와 가볍게 주고받은 편지만으로도 그는 상당히 교화되고 있었다. 교화가 거창한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귀를 열고 들어주면 대부분의 범죄자는 마음을 열고 과거를 뉘우친다.
이렇듯 순진한 사람이 무서운 살인자로 넘어가는 ‘경계(境界)’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범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흔치 않다. 치정(癡情)에 얽혀 있거나 돈 관계가 복잡했거나 원한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람은 계획적으로 살인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우발적인 사건이다.
B도 마찬가지다.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을 때 사람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저항하자 그는 위협을 느꼈다. 칼은 자신에게 있었지만, 한 팔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겁을 먹었고, 이 때문에 칼을 휘두른 것이다.
살인자를 만나 보면 대부분 체구가 왜소하고 얼굴은 유약하게 생겼다. 아무리 칼을 들었다 해도 상대의 체구가 왜소하면 당하는 사람은 반항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일수록 더욱 난폭해지는 법이다. 상대가 반항하면 여지없이 칼을 휘두른다. 강도와 살인은 엄청난 차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수사요원이 집중 배치된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어떤 강도라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백이면 백 모두 후회한다.
3년 전 부산에서 8명을 죽이고,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J씨도 체구가 자그마했다. 그도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J를 고아원에 맡겨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덩치가 작았던 그는 고아원 친구들에게 매를 맞고 따돌림을 당했다. 이를 견디지 못해 고아원을 도망치듯 나왔고,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배웠다.
늘 약자의 처지에서 산 탓에 그는 방어용 칼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이것도 불안해 그는 칼을 넣어둔 호주머니에 오른손을 넣고 다녔다. 위급할 때 빨리 칼을 꺼내들 생각에서였다. 이런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한 방범대원이 그를 막아섰고, 호주머니를 만져보니 칼 같은 것이 손에 잡혔다. 불안한 J는 칼을 꺼내들었고 방범대원을 찔렀다. 이렇게 해서 살인이 시작됐고, 연이어 희생자가 발생했다.
부산에서 만난 J는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사람의 인상은 평소에 쌓인 감정이 축적된 결과다. 찌들어서 산 사람은 그 모습대로 인상이 맺힌다. 인상이 좋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멀리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사회 바깥으로 격리된다. 격리되면서 대화의 상대가 사라지고, 가슴에 쌓아둔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서 삐뚤어진다. 이들과 비교하면 지금 대화할 상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이다.
불 지르고 주인 부르는 방화범
얼마 전 서울 서대문에서 검거된 방화범을 만나면서 나는 사람에게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끼리 서로 격려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서대문 방화범 K의 나이는 35세, 직업은 없었다. 어릴 때 부모가 죽고 외가에서 자란 K는 10대 때 가출해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 이렇다 할 직업이 없어 주위에 친구가 없었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