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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행가

중동 오지 서양에 알린 여성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

사막과 산악 헤매며 세계 지도 빈 공간을 채우다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중동 오지 서양에 알린 여성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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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오지 서양에 알린 여성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

①고대 페니키아 문명이 남긴 티레 유적. 레바논의 동지중해 연안에 있다. ② 동지중해의 진주라 부르는 베이루트. ③ 아라비안나이트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려 길을 떠났던 고대 예멘은 유향(乳香)의 길을 따라 번성한 역사를 갖고 있다. 유향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듯 진귀한 물품 중에서도 가장 비쌌다. 그런 예멘이 프레야에게 손짓을 했다. 그는 지도를 구하고 관련 자료들을 읽었다. 향료의 길 중 최고의 포인트는 하트라마우트 왕국의 수도 사브와였다. 방대한 양의 보물이 그곳 폐허 속에 묻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934년 11월, 청명한 어느 날 프레야를 태운 범선은 홍해를 따라 남하하고 있었다. 먼저 찾은 항구도시 아덴에서 사업가이자 아라비안 전문가인 스튜어드 페론을 만났다. 두 사람은 후일 결혼에 이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또 한 사람을 만났는데, 당시 57세인 앵토냉 베세였다. 독신 장교들이 득실대는 아덴에서 홍일점 프레야는 베세의 사무실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공부하고 사랑하고 차 마시고 파티에 참석하는 등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황홀한 한 달을 보내면서 사브와로 가는 대략적인 루트를 짠 프레야는 1935년 1월 증기선을 타고 무칼라로 갔다.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에는 오리온자리와 황소자리, 묘성이 빛나고 있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 세 개와 녹색불빛 하나를 빼고는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았고, 불빛 속에 물방울이 비처럼 쏟아졌다.”

무칼라에 도착해 무칼라 궁전과 시장을 둘러보고는 돌투성이의 불모지 속으로 들어갔다. 늘 베세가 곁에 있어 힘이 됐다. 내륙은 지독한 오지였다. ‘얼마나 씻고 싶은지 말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을 만큼 물 한 방울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거기다 홍역까지 덮쳤다.



무칼라를 떠난 지 한 달 만에 중세 아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이윤에 도착했다. 힘들었지만 드디어 아찔할 만큼 높이 솟은 탑이 있는 하트라마우트에 닿았다. 마을 사람들은 프레야를 환대했다. 프레야는 그곳에서 겪은 바를 ‘아라비아의 남문’에 꼼꼼하게 기록해놓았다.

시밤으로 가는 길에 프레야는 금세라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사브와가 멀지 않은데. 다행히 영국 공군에게 구조되어 아덴으로 이송됐다. 몇 주간 요양을 하고는 이탈리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유럽으로 돌아온 다음인 1935년 여름 한 달 동안 베세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삶에서 그때처럼 행복한 시간은 없었다.

1937년 10월 말, 프레야는 다시 아덴으로 향했다. 사브와에 대한 집념이 그를 다시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게르트루드 카튼 톰프슨과 엘리너 가드너와 함께였다. 11월 중순, 구닥다리 트럭을 타고 내륙으로 들어갔다. 세이윤을 지나 고층 흙벽돌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시밤에 이르렀다. 그걸 보는 순간, 고대 예멘인이야말로 고층 건물의 발명가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동료 여성들이 고열을 호소하는데다 프레야 자신도 몸져눕는 바람에 아덴으로 돌아가야 했다. 장기간 요양한 끝에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후레이다로 가 와디 아무드를 답사하고는 거기서 낙타를 타고 남하하여 인도양 연안의 고대 항구 카나의 위치를 밝혀냈다. 그곳은 한때 캐러밴이 유향을 실어 나르던 곳이기도 했다. 프레야는 끝내 사브와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그곳은 정신 속에 살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많은 사람이 사브와의 존재를 알도록 귀한 계기를 제공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당시 유럽에선 전쟁의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됐다. 1938년 겨울 내내 프레야는 런던에 머물면서 자신의 여행담을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스튜어트 페론을 다시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명문 주교 가문 출신에다 중동전문가인 페론은 이듬해 8월 아덴으로 돌아갔다.

9월에 전쟁이 터지자 프레야의 활동무대인 중동지역도 전화에 휩싸였다. 프레야는 페론을 뒤따르듯 카이로를 거쳐 아덴으로 갔다. 이번 여행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현지 실정을 정부에 보고하는 공식적인 것이었다. 그 자신도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봉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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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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