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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②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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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청년들

이유 없는 범죄 2題… 미쳤거나  멀쩡하거나

무기를 소지하고 은행을 털다가 붙잡힌 고교 동창생들.

최근 경기도에서 벌어진 형제 어린이 납치사건을 보자. 경찰관의 아이를 납치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탄 사건이다. 대학생과 고교생 형제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납치했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대학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세상도 아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한번 범죄자가 되면 긴 인생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따져보지도 않았을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탓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논리가 사회의 규범이나 규칙에 위반된다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들에겐 그런 당위론이 통하지 않는다.

이 청년들은 대학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범죄를 저지렀다. 모순이다. 배우고 싶은 열망이 한참 비뚤어졌다. 돈이 없으면 휴학을 하고 일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게 상식이다. 범죄를 모의하는 수준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도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병증(病症)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예사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다.

2002년 서울에서 벌어진 은행강도사건. 범인 넷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모 지방 고등학교 동창생 사이였다. 대부분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컸다. 제대 후 복학할 날을 기다리던 이들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생각만큼 돈이 벌리지 않자 범죄를 모의했다. 수법은 참으로 대담했다.



이들은 군 복무 경험을 살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들을 제압, 총기를 탈취했다. 그 다음엔 차량을 훔쳤고, 그 길로 모 부대의 탄약창고를 습격했다. 총과 탄약을 손에 쥔 이들은 은행을 급습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손발이 착착 맞았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영화처럼 호락호락한가. 넷은 훔친 돈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체포됐다.

직접 만나보니 만약 두 명이었다면 범죄 모의단계에서 그만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네 명인 것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죄가 4분의 1로 분산된 탓에 주저하지 않고 범행을 결행한 것이다.

이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무용담을 털어놓는 듯했다. 교육 수준은 높았지만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수단의 정당성은 고려대상이 못 되는 듯했다. 쉽게 생각하고, 쉽게 행동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범죄의 매력, ‘리셋’의 편리함

2003년 강도살인 혐의로 붙잡힌 직장인 C씨에게서도 이런 면모가 엿보였다. 그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빈집을 털기로 작정했다. 월급이 적어 저축을 많이 하지 못한 그는 결혼자금을 가장 빠르고 쉽게 확보하는 방법이 강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빈집으로 알고 들어간 곳에 사람이 있었고, 피해자가 완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그만 칼을 휘두르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은 한순간에 깨졌다.

이런 사람들은 고생하지 않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한다. 투자든 투기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주저한다. 그들에게 범죄는 단기간에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범죄를 일종의 아르바이트쯤으로 간주한다. 한 번 하고 손 털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실수하면 ‘리셋’ 버튼을 누르듯 범죄를 저지른 뒤 마음을 고쳐 바로잡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2000년 서울에서 일어난 또 다른 납치사건. 30대 초반의 대졸 직장인 Q씨는 노름에 빠져 있었다. 월급으로는 노름빚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유괴를 생각해냈다. 유괴범을 만나보면 대부분 학력이 높고 멀쩡한 사람들이다. Q씨도 행여 의심을 살까봐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범행대상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만났고, 자신을 아이의 친척이라고 소개했다. “부모님이 잠시 해외로 나가시게 됐으니 내가 널 돌봐야 된다”고 둘러대자 아이는 의심없이 그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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