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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보카트 시차제 토털사커’로 못다 이룬 ‘오렌지 혁명’ 폭발 꿈꾼다

  • 장원재 숭실대 교수·연극학,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j12@ssu.ac.kr

‘아드보카트 시차제 토털사커’로 못다 이룬 ‘오렌지 혁명’ 폭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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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한 경기, 한 경기에 쏟아붓는 에너지의 총량은 여타 리그 경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막대하다. 월드컵 참가팀들은 모든 경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배치하며 총력전으로 격돌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의 전력이 급상승한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쉬어가는 경기’로 간주할 만한 카드는 한 장도 없다. 16강 이상을 염두에 둔 팀들에 이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고질적 딜레마다.

월드컵에서 각 팀은 비교적 단기간에 여러 번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4강에 진출할 경우 한 달에 일곱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다. 더구나 각국의 프로리그 경기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에너지 소모량이 많다. 스리백만으로는 이런 험한 일정을 버티기가 어렵다.

스리백으로 일관한 2002년 히딩크 호(號)의 경우 체력에 문제가 없었던 경기는 단 한 게임, 첫 경기인 대(對) 폴란드전뿐이었다. 두 번째 경기부터는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져 상시적인 부상위험에 시달렸고, 코칭 스태프들은 이에 마음 졸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객석의 관객에게 이러한 ‘무대 뒤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팀 닥터 최주영씨(재활의학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미국전부터는 ‘부상병동’이었다.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하는 심정이 이럴까 싶더라. 이탈리아전을 마치고 나선 정말 암담했다. 김태영은 코뼈 부상, 최진철은 탈진으로 링거를 맞으며 우드드득 몸을 떨었고, 김남일은 발목, 홍명보는 인대가 정상이 아니었다. 수비진뿐이 아니다. 황선홍은 오른쪽 엉덩이뼈 연결부에, 이영표는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에 이상이 왔다. 한마디로 몸 상태가 좋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페인전에 출전할 11명 엔트리를 짤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체력 소모는 스리백 시스템의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세계 축구인들이 2002년 한국의 4강 진출을 기적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4-3은 선수 개개인에게 엄청난 체력소모를, 어쩌면 무리일 수밖에 없는 투혼을 요구하는 포메이션이다.



히딩크의 포백 실험

히딩크의 목표는 애초부터 ‘8강+α’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포백 시스템을 통해 체력을 비축해가며 항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딩크는 6개월의 실험기간이 끝나자 포백을 과감히 용도폐기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완만한 능선을 버리고 화끈하게 절벽을 기어오르며 정상을 향하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도전이었다.

강한 체력훈련에 전념해 대표팀 선수 23명 전원의 체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테크닉의 부족을 인해전술로 보완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술이었다. 경기장 어느 지점에서건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으면 세 명이 에워싸는 ‘삼각압박(triangle pressure)’ 전략으로 공을 처리할 시간과 공간을 봉쇄한다. 이 1차 저지선이 뚫리면 인근의 우군이 재빨리 또 다른 삼각편대를 만들어 계속 압박하고, 모든 병력이 후퇴하며 연속해서 삼각압박 그물을 직조하는 식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직후만 해도 ‘황태자’로 불리며 팀을 리드하던 선수가 고종수다. 그런 그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체력이었다. 분명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선수지만, 수비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그의 약점을 메우려면 나머지 선수들이 90분 내내 도와야 했고 이렇게 쌓인 미세한 피로 탓에 75분이 지날 무렵에는 팀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상황이 여러 번 나타났다. 그래서 감독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고종수를 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비상구급약은 꼭 필요한 법이다. 팀이 절대적인 위기에 몰렸을 때 단 한 방의 섬광 같은 킬 패스로 골을 창조하는 테크니션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를 염두에 두고 히딩크가 택한 카드는 고종수보다 수비가담 능력이 뛰어난 윤정환이었다.

박항서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기간에 윤정환의 투입을 두 차례 고려했다고 한다. 첫 번째 상황은 0-1로 뒤진 이탈리아전 후반 종반이었고, 두 번째는 준준결승전인 스페인전 후반이었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홍명보와 김태영을 빼고 차두리, 이천수를 투입하며 체력적으로 흔들리던 이탈리아를 더욱 거세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넘어갔다. 소모적 공방전이 거듭되던 스페인전에서는 윤정환에게 몸풀기를 지시했지만, 예기치 않게 김남일이 발목을 접질려 교체되면서 수비진을 급히 보강해야 했기에 실전투입 직전에 윤정환에게 벤치복귀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2002년의 뒷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스리백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지 의구심이 생길 법하다. 먼저 살펴볼 것은 히딩크에게는 ‘주최국 프리미엄’이라는 엄청난 특혜가 있었다는 점이다. 18개월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각 선수의 소속 구단, 심지어는 일본 구단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선수들을 담금질하고 합숙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전세계 어디든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상대와 마음껏 연습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특권도 함께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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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숭실대 교수·연극학,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j12@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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