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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100년 숙대, ‘섬김 리더십’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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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신입생과 이야기하는 이경숙 총장. 이 총장은 겉모습만 보고도 신입생을 한번에 구별한다.

돈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게 아니니까 보람 있는 곳에 쓰고 싶어하는 분이 의외로 많아요. 보람 있는 일을 알리고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 100만원을 내면 연주홀 의자에 이름을 붙여줘요. 어제 취임식에 온 동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더니 그 자리에서 돈 내고 간 동문도 있습니다.”

-여학교 선생님을 30년 해도 제자 한 명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성차별적인 발언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여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남학생보다 낮고 동창 의식이 남학생보다 옅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학생이 많은 서울 어느 명문대학은 여초(女超)현상이 빚어져 학교 발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더군요. 그런데 숙대에선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성공적으로 벌였다면서요? 비결이 궁금합니다.

“졸업생의 80% 이상이 주부입니다. 캠페인을 시작하던 1994년 인문사회계열 등록금이 150만원이었거든요. 주부들이 한꺼번에 다 낼 수 없으니까, 한 달에 5만원씩 30개월 약정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개미군단이었죠. 1만명 넘게 참여했습니다. 거기에 큰 장점이 있어요. 자기가 투자한 것에는 애착을 갖게 돼요. 돈과 함께 마음이 와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까지 자발적으로 돈을 냈습니다. 자신이 투자한 직장이니까 더 깨끗하게 하고 싶겠죠. ‘여자 제자 소용없다’는 말들을 하는데, 저는 교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제자들이 해마다 생신 때 찾아오고 임종할 때도 여자 제자들이 왔다고 사모님이 전해주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군림하고 대접받던 시절에는 술 사주고 밥 사주는 남자 제자들밖에 없었겠지만 지금은 교수도 학생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잘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칭찬해서 고맙게 느끼면 여자들이 의리가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지금도 졸업생들이 직접 담근 깍두기와 김치를 가져와요. 뭉클한 사랑은 여자들한테서만 느낄 수 있죠. 대학시절에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에서 여성 부하 직원을 여럿 거느리던 분이 친상(親喪)을 당했는데 여직원들이 거의 오지 않았더래요. 자기 딴에는 여성 부하직원들에게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서운했답니다. 아까 여학교 교사 30년에 제자 한 명도 없다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죠. 여성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소홀한 것은 아무래도 사회 문화의 영향 때문 아닐까요.

“그렇죠. 우리 문화가 여성의 사회화를 제약했거든요. 사교와 정보 공유가 대개 술집에서 이뤄졌잖습니까. 여성들은 술을 못하거나 시간이 없어 그런 곳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은 바뀌는 거 같아요. 꼭 술을 마셔야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 술을 못해요. 술 마셔야 모금이 된다면 저는 한푼도 못 모았겠죠. 꿈을 팔아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꿈이 술에 취해 이상해집니다.”

직선제가 만든 앙금

개정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중앙선관위가 국립대 총장선거를 위탁 관리하게 되면서 최근 서울대 평의회가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서울대는 1991년 총장 직선제를 도입했으나 총장선거를 둘러싼 교수간 파벌 형성 같은 폐단이 나타났다.

-총장 직선제가 과연 대학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봅니까.

“저는 교수 선거를 통해 네 번이나 선출됐지만 정말 대학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직선으로 총장을 뽑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총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개혁해 나가야 하거든요. 학교를 발전시키자면 총장이 늘 좋은 얘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총대를 메는 리더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소신껏 개혁의 총대를 메는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힘듭니다. 교수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다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총장을 뽑는 제도는 부작용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술 사고 밥 사는 풍토는 여전합니까.

“그런 폐단도 있고…. 파벌이 생겨 후유증을 겪습니다. 사람이 감정의 동물인지라 지지와 반대로 갈라지면 찜찜하잖아요. 일반 선거에서는 서로 모르니까 괜찮습니다. 대학 사회는 뻔하잖아요. 누가 누구를 찍은지 다 아니까 어색하고 민망할 수밖에 없죠. 대학 사회에선 그런 앙금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서로 화합, 단결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사법·행정·외무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행정고시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이 44%로 급증했다. 사법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도 32.3%로 높아졌다. 이 추세로 가면 시험으로 뽑는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앞지를 날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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