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16 군사정변을 성공시킨 박정희 세력이 계엄령을 선포해 권력을 장악해가자, 매그루더 당시 유엔군 사령관은 “박정희를 따르는 군부 세력은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고 군사혁명을 감행했다. 군사혁명에 가담한 세력은 원대복귀하라”는 반(反)혁명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전례가 있는 만큼 미군은 ‘계엄령이 내려졌더라도 미군은 한국군의 작전을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때 자주능력이 커진 한국군에서 ‘대(對)간첩작전 본부장에 불과한 합참의장을 명실상부한 군령권자로 만들고, 합참 통제하에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팎에서 군령권 문제가 거론되자 한미 양국은 작통권을 평시(平時)와 전시(戰時)로 나눠 갖자고 합의했다. 이때 유엔사 기능은 1978년 11월7일 발족한 한미연합사가 맡고 있었다.
한미 양국은 1994년 12월1일부로 전시 작통권은 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 사령관)이, 평시 작통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계엄령이나 위수령발동 상황의 작전이나 대간첩 작전, NLL(북방한계선)과 MDL(군사분계선) 상에서 북한군과 벌이는 교전은 평시 작전으로 규정돼 한국군 합참의장이 통제하게 됐다.
작통권은 평시보다 전시에 의미가 있다. 전시가 되면 휴지가 되는 평시 작통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평시에는 주권국가이지만 유사시엔 종속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인식에 따라 전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시 작통권 환수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 작통권 환수가 쉽지 않다는 것은 미군이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데프콘(DEFCON)’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데프콘Ⅲ까지는 ‘평시’
데프콘은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을 축약한 것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방어준비태세’가 된다. 미국군은 데프콘을 다섯 단계로 나눠놓았다(데프콘을 평시에 발령되는 ‘진돗개’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공작원이 침투한 흔적이 발견되면 합참은 ‘진돗개’를 발령해 평시작전인 대간첩작전을 펼친다).
데프콘Ⅴ는 군사적 긴장이 전혀 없는 태평성대를 뜻하는데 지금의 미국이 이에 해당한다. 미군은 여간한 위협이 아니면 데프콘을 올리지 않는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도 데프콘을 격상하지 않았다. 초대형 테러가 일어났지만 미국이 생각하는 가상 적국에서 미국을 공격하려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프콘 Ⅳ는 국지적 긴장이 있어 군사적 경계가 요구되는 상태다. 군사적 경계란 지금의 한국군처럼 많은 병력을 철책 근무에 투입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데프콘Ⅲ는 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정도의 긴장상태가 전개되거나 군사개입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다. 데프콘Ⅱ는 가상 적국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태세를 강화할 징후를 보이거나 긴장을 고조시킨 상태이고, 데프콘Ⅰ은 가상 적국이 전술적인 적대행위를 보이는 전쟁 임박 상태다.
정전협정 이후의 한반도 상황은 대부분 데프콘Ⅳ에 해당했다. 데프콘Ⅲ는 딱 한 번 발령됐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던 보니파스 미 육군 대위와 발레트 중위 가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찍혀 살해된 직후였다.
한미 양국군은 데프콘Ⅲ까지는 평시로 규정한다. 지금 데프콘Ⅲ가 발령되면 합참의장은 한국군 전 장병에 대해 휴가·외출 금지령을 내리고, 전원 즉각 출동할 태세를 갖추게 한다. 장병들은 사전에 작전지역으로 정해놓은 곳으로 이동하진 않지만, 전투화와 전투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자면서 출동에 대비한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전구(戰區, Theater, 통합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지역)로 옮겨오는 증원군에 대해서는 전·평시를 막론하고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한다.
미군 통수권 가진 미 NCMA
데프콘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 강화된다. 데프콘Ⅲ가 되면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군은 몇몇 신속 배치군을 한반도로 이동시킬 수 있다. 8·18 도끼만행 직후엔 오키나와에 있던 해병대 3사단(지금의 제3해병대 원정군)과 전폭기 대대, 그리고 7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과 구축함인 레이저함·미드웨이함을 한국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증원군 파병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National Command and Military Authorities)’가 결정한다. 이 기구는 대통령과 부통령·국방장관·합참의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미군 통수권은 이 기구가 행사한다. 미국이 대통령 1인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구성된 기구에 통수권 행사를 맡긴 것은 통수권 행사에 따른 대통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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