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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⑬

멧비둘기 노래, 향긋한 냉이, 생강나무 꽃망울…봄의 전령사 당도하다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멧비둘기 노래, 향긋한 냉이, 생강나무 꽃망울…봄의 전령사 당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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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씨앗을 나눈다. 우리는 그동안 나름대로 토종 씨앗을 찾고 또 이어온 게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토종고추와 오이 씨앗은 인기가 높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여러 번 나눠준 적이 있다. 토종고추는 양은 적지만 향기가 좋다. 토종오이는 맛도 담백하거니와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에서 파는 개량오이는 거름이 부족하거나 가뭄이 들면 금방 표가 난다. 오이 끝이 말리며 볼품이 없고 맛도 쓰다.

하지만 토종오이는 가뭄에 강하다. 크기는 개량오이에 견주어 작다. 기껏 손바닥 길이 정도. 하지만 꾸준히 달린다. 서리 올 때까지 달리니 그 생명력이 놀랍다. 시장에 내놓기에는 상품가치가 떨어질지 몰라도 밥상에 올리기에는 더없이 훌륭하다.

“씨는 갈라 써야 혀”

이런저런 씨앗을 구하는 과정에 우리 식구는 마을 이웃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올해는 고구마 씨앗을 바꾸었다. 우리의 고구마 수확량은 해마다 들쭉날쭉했다. 모종을 장에서 사다 심으니 유전자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아랫마을에 알아보니 순희 아주머니네 씨고구마가 좋단다.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이어오던 씨앗이란다.

아주머니네 집에 가니 집에 쓸 고구마 모종을 그릇에 키우고 계신다. 붉은빛이 도는 싹이 예쁘다. 씨고구마를 정성스레 상자에 담아주신다. 게다가 맛도 보라며 몇 개 더 주신다.



“고마워서 어쩌지요?”

“고맙긴. 아무리 없이 살아도 씨는 갈라(나누어) 써야 혀. 그래야 후손이 많이 늘어난디아.”

씨고구마를 얻고 돌아오는 내내 아주머니 말이 귓전을 맴돈다. ‘씨는 갈라 써야 혀’ ‘씨는 갈라 써야 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아주머니네는 참 가난하게 사신다. 없는 집안의 막내에게 시집와, 자식 셋을 대학까지 보내신 분. 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동생을 돌봐야 해서 더는 배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겨울이면 한글 공부를 하시고, 띄엄띄엄 일기를 쓰신다. 못 배운 한을 풀고자, 하루 일을 마치고 일기를 쓰신다. 내가 일기를 보자고 하니 쑥스러워하시며 내놓는다. 아주머니의 고민이 서투른 맞춤법 속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머니가 씨앗을 건네며 던진 말씀이 여러 가지로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가진 걸 아낌없이 나눠주고자 하는 마음. 게다가 요즘 웬만한 씨앗은 죄다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 돈 주고 씨앗을 사야 한다. 씨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세상이니 아주머니 이야기가 더욱 감동스러운지도 모르겠다. 흉년에 배를 곯아가면서도 이듬해 농사를 위해 아껴두었던 씨앗을 나눠주며 배고픔을 함께 이겨낸 백성의 아픔과 사랑이 담긴 말이 아닌가.

아주머니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곡식 씨앗만이 아닌 생각의 씨앗, 마음의 씨앗을 돌아본다. 누군가의 좋은 생각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씨앗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글이나 그린 그림이 어느새 저작권, 지적재산권이 되는 세상이다. 아주머니 말을 내 식으로 패러디해본다. ‘좋은 생각은 나누어야 해. 그래야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계속 진화할 거야.’

날로 먹는 향긋한 ‘냉이회’

봄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거라면 햇살과 바람을 들 수 있다. 햇살이 조금씩 길어지면 땅이 녹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른 봄에는 땅거죽만 녹기 쉽다. 겨우내 언 땅 속은 그냥 얼어 있다. 삽으로 땅을 파보면 어림도 없다. 그나마 낮에 녹은 거죽은 밤이 되면 다시 꽁꽁 언다. 그러니 낮에는 다시 땅이 질척질척하다. 땅 위에 녹은 물이 땅 속으로 스미지는 못하고, 땅 위로 증발하기에는 이른 날씨다.

하지만 하루하루 날씨가 변하면서 땅도 달라진다. 때로는 신발을 떼기가 어려울 만큼 질척거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땅이 보송보송하다. 걸음을 걸으면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다.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같다. 드디어 땅 속 얼음이 사라진 것이다.

땅이 녹은 기념잔치를 안 할 수 없다. 냉이잔치를 벌여야겠다.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겨울을 난 냉이. 아직 푸른빛이 돌지도 않아 흙빛 그대로 땅에 납작 엎드려 있다. 정말 땅이 녹았나? 호미를 먼저 박아본다. 푹 들어간다. 한 손으로 냉이 밑동을 잡고 호미와 함께 냉이를 당긴다. 흙을 잔뜩 안고 달려오는 냉이. 마치 낚싯대에 고기가 달려오는 맛이다. 향이 은은하다. 언 땅이 녹으면 땅이 포슬포슬하다. 그럼 호미를 쓸 것도 없이 그냥 냉이를 당긴다. 하나 둘 캐는 재미에 냉이가 한 바구니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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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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