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AI 감염 조류 살처분에 노숙자, 신용불량자 대거 동원… 경로추적 불가능”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2/5
“당시 200명 정도의 공무원과 민간인이 도살처분에 참가했는데 이중 130명 정도는 인력시장에서 1인당 7만원을 주고 구해 쓴 일용잡부였다. 이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나 노숙자, 주거부정 노인 등으로 신분 추적이 불가능했다. 공무원들은 AI가 발생한 농가 외곽지역의 경계를 서는 데만도 인원이 부족했다. 살처분을 마친 뒤 검사를 위해 혈액을 뽑아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혈액을 제공한 사람은 농장주와 가족, 농장인부, 그외에 자기가 원해서 혈액을 뽑은 사람뿐이었다. 보건소는 타미플루와 백신을 주는 일 외에는 한 것이 없다. 일용잡부 살처분자들과 사후에 연락을 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경기도 양주시청 방역담당 및 보건소 관계자)

살처분 인력 동원기준 전무

경기도 양주시에 AI가 발생한 시점은 AI가 수그러들던 2004년 3월. 하지만 사후 추적이 불가능한 살처분자 동원은 이전에도 빈번했다. 2004년 1월에 AI가 발생해 182만마리의 닭을 살처분한 경남 양산시의 경우 살처분에 동원된 1만여 명(연인원) 중 인력시장에서 구해 쓴 인부가 3389명이나 됐다. 양산시 가축방역담당 관계자는 “연인원이라 실제 몇 명이 참가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총 인원의 30%는 인력시장에서 7만∼15만원을 주고 구해 쓴 일용잡부였다. 그중에는 연락처가 파악되지 않는 신용불량자, 노숙자도 많았으며 혈액은 얼마나 뽑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외에 2003년 12월 말에 AI가 발생한 충남 천안시는 40여 명의 일용직 잡부를 살처분에 투입했다. 천안시 보건소 담당자는 “공무원 221명만 채혈을 했는데 인력시장의 일용잡부들은 타미플루를 받으면서 연락처를 적으라고 하니 남의 휴대전화 번호나 용역회사 전화번호만 적어놓았다. 연락처를 알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담당자는 “감염자에 대한 확인이 중요하지만 모든 게 ‘첫 경험’이어서 그렇다”며 이해를 구했다.

충남 아산시는 2003년 12월 신원불명의 일용잡부 10명을 고용해 9개 농가에서 닭 9만5000마리를 살처분했으나, 다음해 4월 이들 농가의 닭과 오리에서 발생한 질환은 AI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살처분에 투입된 일용잡부들은 사후 추적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방역 수칙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지 않아 살처분 당시 AI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국내에 AI가 발생하기 시작한 2003년 12월은 이미 베트남과 태국에서 조류와 접촉한 사람들이 한창 죽어가던 즈음이었다. 2003년 말에 만들어진 질병관리본부 AI 방역지침에 따르면 각 보건당국은 농가 종사자나 그 가족들과 함께 AI 고위험군에 드는 살처분자의 경우 살처분이 끝나면 바로 그들의 혈액을 받아 보관하고, 5일 후 전화나 직접 접촉을 통해 AI와 관련된 임상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토록 하고 있다.

AI 환자는 보통 5∼10일 안에 38℃ 이상의 고열과 기침, 인후통 등 일반 독감과 비슷한 임상증상이 나타나는 까닭에 살처분 직후 임상 증상을 확인하는 것은 감염자를 파악하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혈액을 채취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살처분 후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에서 무증상 감염자가 나올 수도 있고, 만약 살처분자가 이후 사망했다면 살처분 당시 뽑아놓은 혈액이 사망의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WHO(세계보건기구)가 AI 환자 확진 기준을 ‘임상증상이 있으면서 혈액(혈청)에 대한 중앙항체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사람’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적 상황과 규정이 이런데도 시·군의 방역 담당자들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일용잡부들을 살처분에 대거 투입한 것은 왜일까. 각 시·군의 보건소 담당자들은 살처분자 동원에 대해 묻자 한결같이 “가축방역과나 축산과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현장에서 살처분자 동원을 담당하는 주체는 농림부의 지휘를 받는 각 시·군 축산행정 담당 직원들. 그들은 “AI가 인근 농장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살처분자의 감염 가능성에 대해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농림부 가축방역과의 한 관계자는 “어떤 사람이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기준은 따로 만들어진 게 없다”며 “가뜩이나 동원할 인력이 없어 발을 구르는 마당에 그런 기준을 만드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고 짜증을 냈다.

“누가 죽은 닭 만지겠나”

각 시·군의 AI 살처분자 동원 담당자들은 “공무원뿐 아니라 군대나 경찰도 지원을 하지 않아 인력 동원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들은 설사 살처분에 참가했더라도 직접 농장에 들어가 닭과 오리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I가 발생한 농장에 직원들을 동원했으나 누구도 선뜻 살처분 현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부군수가 손수 농장에 들어가 죽은 닭을 쥐고 흔들며 ‘너희들은 왜 안 들어와’ 하고 윽박지르자 할 수 없이 한두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데 누가 죽은 닭을 만지려 하겠는가.”(충북 음성군 살처분 참가자)

2/5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목록 닫기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