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를 통해 교육과 문명을 받아들여 말레이시아 주류사회에 편입한 룬바왕족.
이런 오지에 리조트가 건설된 연유가 궁금했다. 벌목을 위해 기업이 밀림 한가운데 길을 뚫었는데, 길 주변에서 온천이 발견됐고 때마침 이 지역 출신으로 벌목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했던 부유한 원주민이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본격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여기까지 관광객이 얼마나 찾아올지는 몰라도 밀림 한가운데 자리잡은 덕분에 의료봉사단이 원주민을 불러모아 단체진료하는 데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받게 됐다.
오지에서 생활해본 사람은 깨끗한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더구나 의료봉사에서 이 두 가지는 필수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간이천막에서 고난도 수술을 치르곤 하던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올해 봉사여행은 최적의 환경이라며 봉사단원들은 기뻐했다.
이곳 운영자인 알프레드 빠단(53)씨는 룬바왕족 출신 원주민이다. ‘원주민’이라는 어감과는 상반되게 그는 대학을 졸업했을 뿐 아니라 투표권도 갖고 있는 어엿한 말레이시아 시민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시민’보다 ‘OO부족 출신’이란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고유한 부족언어가 존재하고 부족민끼리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보다는 부족 정체성이 신분의 나침반이 된다.
룬바왕족은 보르네오 북부에서 수천 년간 살아온 원시부족 가운데 하나다. 현재는 4만명가량이 보르네오 섬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경제수준이 매우 높다. 아직도 대다수 원주민이 채집경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빠단씨가 고등교육을 받고 거창한 레저사업을 벌이는 것을 보면 룬바왕족의 역사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빠단씨에 따르면 룬바왕족과 클라빗족은 보르네오 원주민(‘오랑아슬리’·당초 이 땅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를 받아들인 대표적인 부족이다. 아직도 원시적인 삶이 주류를 이루는 이 땅에서 기독교는 교육과 보건, 그리고 현대화를 의미한다는 것.
빠단씨의 증조부 시절, 그러니까 1930년대 말 호주와 영국 선교사들이 원주민 기독교화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맨 처음 룬바왕족이 외래문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손자 대에 이르러서는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고 이 지역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과거에 룬바왕족은 술을 좋아하는 더럽고 게으른 부족이었다고 해요. 개와 밥그릇을 함께 쓸 정도였다니까요. 그리고 이웃 부족과 전쟁을 벌여 상대방의 목을 베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반복해왔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부족이 보르네오에는 적지 않습니다.”
회교도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지만 보르네오 섬의 소수민족 사이에서는 예상외로 기독교를 믿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사라와크 지역은 기독교(35%)와 원시종교(30%), 그리고 이슬람교(25%)가 ‘황금분할’을 이룬다. 국교(國敎)가 이슬람인 나라에서 복합종교 지역이 생긴 데는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다. 우선 페닌슐라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말라카 왕조가 오랜 기간 존재했지만 보르네오 섬에는 뚜렷한 문명을 지닌 왕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영국이 본격적으로 동남아 지배에 나서자 1841년 보르네오 섬에도 변화가 생겼다. 브루나이 술탄이 제임스 브룩이라는 젊은 탐험가를 라자(왕)로 임명한 것. 이후 브룩 일가는 3대 100여 년에 걸쳐 원주민 위에 군림하며 사라와크 주를 지배했다. 그 여파로 선교사들이 백인 왕의 보호 아래 비교적 자유롭게 포교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원시 채집생활 고집하는 뻔안족
진료 첫날.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100여 명의 원주민이 캠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눈에 봐도 교육과 보건의 혜택에서 소외된 원시부족이었다. 추장은 “인도네시아 국경에서 무려 사흘을 걸어 이곳에 당도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