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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빵즈’를 아십니까?

망국의 설움, 고구려 기상 함께 품은 ‘중국판 조센진’

  • 정연수 강릉대 강사·국문학 bich42@naver.com

‘꼬리빵즈’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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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빵즈’를 아십니까?

한복을 차려입고 거리축제를 벌이는 옌볜 동포들.

응답에 참여한 많은 조선족이 부모나 조부로부터 꼬리빵즈는 고구려몽둥이에서 유래한 말이라 배웠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석에는 조상의 정체성을 우호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주관이 개입돼 있다는 비판도 있다. 고구려의 기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지만, 이면에는 타민족 속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움과 중국 내 소수민족이 겪는 차별을 고구려 조상의 정신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위안이라는 것이다.

꼬리빵즈가 용맹한 고구려몽둥이의 뜻에서 조선족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어휘로 전락한 것은 민족 몰락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고구려의 기상을 기리며 살아가는 조선족의 민족의식이 살아 있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한반도 끝 방망이 모양의 나라

소수는 꼬리빵즈가 중국에 간 조선사절단이 휘두른 몽둥이 또는 한반도 지형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한다. 또 속어 ‘똥자루’가 어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2002년 ‘베이징저널’에 소개된 ‘꼬리빵즈(高麗棒子)’라는 글에는 “옛날 조선인들이 종주국 중국에 공물(貢物)을 바치러 가는 도중 마적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중국 조정에서 조선사절단에게 접근하는 중국인을 몽둥이로 족칠 수 있는 특권을 줬다. 그러나 사절단이 이를 악용해 중국 양민까지 족쳤기 때문에 조선인을 ‘꼬리빵즈’라고 불렀다”는 설명이 있다.



한반도의 지형이 방망이 모양이라 그렇게 불렀다는 견해는 중국의 영토 확장욕과 연관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륙 기질을 지닌 중국인은 중국 대륙의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한반도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망이나 꼬리 정도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한 조각쯤으로 보고, 고구려 역사까지 중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 주장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시각이 이를 방증한다. 땅에 대한 욕심을 포장한 중화세계의 명분하에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여기는 중국의 의식이 표출된 말이 꼬리빵즈라는 것이다. ‘한반도는 중국이 쥐는 방망이’라는 뜻이다.

한편 단순히 ‘방쯔(방망이)’의 의미를 확장해 머리 없는 방망이란 뜻으로 쓰다가 거기서 머리 없는 자루, 고려자루, 고려똥자루 같은 속된 표현으로 변질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배배 꼬인 듯 움츠렸던 삶

꼬리빵즈는 배배 꼬인 튀김 음식인 ‘마화’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족 자치구에서는 꽈배기 같은 튀김인 마화를 꼬리빵즈라고 불렀다. 마화, 즉 꼬리빵즈의 꼬인 형상과 조선족의 삶이 비슷해 조선족을 마화라 불렀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중일전쟁과 같은 열강의 패권 다툼이 있을 때마다 튀겨져 배배 꼬인 꽈배기 신세가 되는 조선족의 삶을 빗댄 표현이다. 다음은 독립투사 양세봉 장군의 조카인 양이복씨가 마화 꼬리빵즈 때문에 겪은 일화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7년 동안 위구르족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생활했어요. 그때 상하이에서 온 하향지식청년들이 마화를 사면서 꼬리빵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뒤돌아보며 ‘지금 나를 욕했나?’ 하고 다그쳐 물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마화를 그렇게 부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동북 지방에서는 꼬리빵즈가 조선사람을 욕하는 말이라고 알려줬지요. 1982년 상하이에 갔을 때 이 일이 생각나 상하이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봤어요. ‘마화를 꼬리빵즈라고 부르냐?’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양이복씨는 조선족이 배배 꼬인 물건을 잘 만들고 잘 써서 붙은 별명이라 해석한다. 조선족은 짚신, 닭둥지 등 꼬아서 만든 생활용품을 많이 사용했으며, 배배꼰 똬리를 머리에 얹어 물건을 날랐다.

중국의 대도시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이나 시골에서 온 촌뜨기를 빵즈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조선족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의미에서 꼬리빵즈라 불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의 ‘빵즈는 방쯔(膀子)’로 노동일 하는 사람 외에도 천한 일을 하는 사람, 촌뜨기라는 어감도 지니고 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은 ‘도포(道袍)’라는 시에서 “가라면 어디라도 갈 꼬리빵즈”라고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 바 있다. 꼬리빵즈라는 말에 얽힌 조선족의 일화에선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민족의 설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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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강릉대 강사·국문학 bich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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