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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오만? ‘CEO형 정치인’ 연구

‘1류 재계’→‘2류 정치’ 수혈은 당연! ‘황제 스타일’은 어쩔 수가 없어!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실력? 오만? ‘CEO형 정치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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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서울시 산하 시립미술관을 야간에도 개장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자율성의 고부가가치’에 일찍이 눈뜬 기업문화가 접목된 것이다. 오전 10시 문을 열어 오후 5시에 문을 닫는 시립미술관은 낮에 일하는 대다수 시민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경기 북부의 역사를 바꿨다”

이 시장은 시청 회의석상에서 에둘러 말했다. “내가 이번에 전시회에 가보고 싶은데 낮에는 바빠서 안 되고 밤에 가야 하는데….” 시립미술관은 이 시장을 위해 특별 개장했다. 며칠 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도 밤에 가고 싶다는데”라며 이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몇 달 후 이 시장은 시립미술관측으로부터 야간에도 개장하겠다는 보고를 듣는다. 이 시장의 얘기다.

“사실 시장이 지시하면 된다. 밤 9시까지 열라고 하면 가장 빨리 해결된다. 그러나 내가 시장직을 떠나면 도로 5시로 당길 것이다. 억지로 명령을 받고 한 것이니까. 두세 달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장점을 체험해서 자발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CEO형 정치인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은 뛰어난 ‘국제감각’이다. CEO 출신은 아니지만 ‘CEO형 지사’를 표방한 손학규 경기지사(영국 옥스퍼드대 박사)는 외국 첨단기업의 경기도 유치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중국이나 대만으로 갈 뻔한 100억달러짜리 LG필립스 공장을 파주에 유치한 것은 ‘경기 북부의 역사를 바꾼 일’로 평가받는다. ‘한류우드’ ‘차이나 타운’ ‘영어마을’ 등 그가 벌이는 사업은 대체로 ‘세계 속의 경기도’라는 그의 콘셉트와 일치한다. 재선 국회의원 A씨는 세계화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광복 직후 ‘세계화’에 가장 앞서 있던 정치인은 이승만과 김일성이었다. 이승만은 미국, 김일성은 소련의 사정에 정통했다. 결국 그 두 사람이 집권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세계화에 가장 앞선 세력은 군대였다. 박정희는 미국 유학파였고 당시 군대는 미국의 선진 조직 시스템을 최초로 받아들인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지금은 기업인의 글로벌 감각이 가장 깨어 있다. ‘가장 세계화된 세력이 당대를 리드한다’는 법칙은 그리 틀린 적이 없다.”

2002년 대선에 실패한 직후 열린 한나라당 워크숍에서 한 대학교수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이 갖지 못한 ‘세계화’라는 뛰어난 장점을 지녀왔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보수층은 이 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적 축제인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세계화의 상징’ 정몽준을 진보 진영에 뺏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회창에겐 세계화의 이미지가 없었고, 노무현은 정몽준과 단일화함으로써 ‘세계화’의 후광을 누렸다. 한나라당이 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된 CEO형 정치인’은 때를 잘 만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CEO출신 정치인들이 가진 기업경영 마인드가 정치문화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CEO는 이해타산이 빠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당장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의리와 호기를 중시하는 풍조가 있다. ‘돈’에 대한 접근법도 다르다.

이명박 시장의 경우 정치권 입문 후 ‘왕소금’이라는 말도 들었다. “공짜를 즐기면 공짜 인생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3월 이 시장의 방미(訪美) 기간 중 논란이 된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발언도 사실 이 같은 충돌이 와전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시장은 “정치인이 돈을 너무 쉽게 쓴다.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마이너스로 신고했는데 나보다 돈을 더 펑펑 쓰더라”고도 했다. 이런 마인드에서 나온 발언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매우 질박한 언어를 구사한다. 이른바 ‘노가다 언어’다. 기업 경영에선 커뮤니케이션이 바로바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엔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의 언어는 다르다.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법이 없다. 에둘러 간다. 여기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 시장의 잦은 설화(舌禍)는 CEO시절부터 몸에 밴 솔직담백한 언어습관이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기업은 실적에 따라 등수가 매겨지는 무한경쟁 시스템이다. 일 잘하는 사람, 능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다. CEO형 정치인은 이런 체제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일 못하는 국민을 정리해고하고 도태시켜선 안 된다. 약자를 더 끌어안아야 한다. 성장도 중요하지만 국민통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정치다.

양극화와 CEO형 대통령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사석에서 “CEO형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를 윤 전 부총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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