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장군 잡는 여경’ 강순덕 청부수사 미스터리

얽히고설킨 돈거래, 윤상림과 상부상조, ‘특별한 관계’ 제보자의 수사 개입…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4-28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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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 잡는 여경’ 강순덕 청부수사 미스터리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임상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순덕(姜順德·40) 전 경위의 청부수사 의혹에 대해 내사하고 있다. 검찰은 4월 중순 현재 이 사건에 엠바고(보도 통제)를 걸어놓고 있다.

    이 사건은 최근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국회 법사위에서 한 발언과 관련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주 의원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검찰이 브로커 윤상림(54)씨의 공범을 도피시킨 것으로 알려진 강순덕 전 경위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6500만원이 김인옥 방배경찰서장(현 울산경찰청 차장)에게 건너갔고, 이 돈이 다시 국정원 연락관 송모씨를 통해 김세옥 청와대 경호실장에게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천 장관은 “금시초문”이라고 일축했고, 김세옥 경호실장과 김인옥 차장도 부인했다.

    주 의원의 발언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긴 하지만, 검찰의 반응으로 짐작건대 사실보다는 소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확인한 바로는 검찰이 강 전 경위(이하 강 경위)를 둘러싼 의혹을 내사하면서 그의 경찰 내 후견인으로 알려진 김인옥 울산경찰청 차장을 내사 범위에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뚜렷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고, 김 차장 및 윤상림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김세옥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강 경위 사건 관련자 진술 중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혀 확인된 바 없는 풍문”이라며 “(강 경위의 계좌에 입금된) 돈의 행방에 대해선 밝혀진 게 없다”고 부인했다. 수사 관계자도 “강 경위와 관련한 몇 가지 소문을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 의원의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장군 잡는 여경’으로 이름을 떨치던 강 경위는 지난해 6월, 수배중이던 사기 피의자 김모(53)씨에게 운전면허증을 위조해준 혐의로 구속돼 파문을 일으켰다. 그해 12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는 강 경위에게 위계공무집행방해와 위증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도·강간, 절도, 사기, 사문서 위조, 위증 등의 혐의가 인정된 김씨에게는 징역 7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강 경위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소개해준 사람은 당시 경찰청 소년계장이던 김인옥 울산경찰청 차장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후 강 경위는 사기 피의자 김씨로부터 인사와 관련해 도움을 받고 징계가 무마되자 그에게 6000만원을 빌려주는 등 친분을 유지해왔다.

    운전면허증을 위조해준 것은 2001년 5월. 그해 11월엔 김씨를 통해 겜채널에 5000만원(당시 경기경찰청 방범과장이던 김인옥씨 돈 1000만원과 자신의 언니 돈 4000만원)을 투자했다. 2003년 감사원이 위조 운전면허증 문제를 조사하자, 강 경위는 은폐를 시도했다. 자신에게 운전면허증 사본을 빌려준 김모 경감의 운전면허증 재발급 신청서를 위조해 감사원으로 보낸 것이다(위계공무집행방해).

    첫 여성 경무관인 김인옥씨는 이 사건과 관련, 지난해 6월 제주경찰청장에서 물러났다. 김씨가 수배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친분을 유지했다는 게 직위해제 사유다. 그는 대기발령 상태로 있다가 최근 인사에서 울산경찰청 차장으로 좌천당했다.

    ‘브로커 홍’ 사건의 허망한 결론

    기자가 강 경위에 대한 검찰 내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2월 이른바 ‘브로커 홍’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난 이후다. 지난해 8월 사기혐의로 구속된 홍모(63)씨는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과 검찰,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혐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사건의 결말(비록 1심이긴 하지만)치고는 허망했다.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해 검찰이 기소한 것인데, 경찰에서 실질적으로 수사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강 경위였다. 당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수사팀 4반장이던 강 경위가 운전면허증 위조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 사건 내사를 거의 끝마칠 무렵이었다. 2개월 후인 지난해 8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도피중이던 홍씨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은 그를 사기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홍씨 사건이 관심을 끄는 것은 강 경위가 내사에 착수한 계기가 네팔 인력송출업체 비리에 관한 제보였기 때문이다. 홍씨의 구속 사유는 중소기업중앙회의 네팔 인력송출업체 선정과 관련해 네팔계 홍콩인 라이 프라산타(이하 라이)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5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그런데 검찰 내사 결과 강 경위가 그 사건을 수사하기 전 또 다른 네팔 인력송출업자 김모(39)씨의 회사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강 경위의 가족이 그 회사의 임원으로 등재됐던 사실도 밝혀졌다. 김씨가 주변에 강 경위와 결혼할 사이라고 얘기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그는 또 홍씨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홍씨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라이한테 세 차례에 걸쳐 3500만원을 받았다. 라이는 검찰 조사에서 그 돈에 대해 투자금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강 경위는 남대문경찰서에 근무하던 2004년에도 네팔 인력송출업체 비리사건을 수사해 언론의 각광을 받은 바 있다. 그때도 김씨가 수사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 경위가 구속한 네팔 인력송출업체 룸비니사 국내 지사장 전모씨는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측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기 전에 룸비니사와 맺은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10여 년간 네팔 인력송출사업을 해온 전씨는 하루아침에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최근 검찰을 통해 강 경위와 김씨의 관계를 알게 된 전씨는 중소기업중앙회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담은 진정서를 보내 계약 재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앙회측은 계약 해지는 관련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전씨는 기자에게 “강 경위가 자신과 특별한 관계인 김씨의 부탁을 받고 엉터리 수사를 벌였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사실상 ‘윤사또’가 다 했다”

    지금까지의 내사 결과만으로는 강 경위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지 않다. 의혹을 입증할 딱 떨어지는 물증이 없기 때문. 관계자들 사이의 미심쩍은 돈거래, 강 경위와 특별한 친분을 맺은 남자들이 강 경위의 수사에 관여했다는 점 등 몇 가지 정황이 있을 뿐이다. 특별한 친분을 맺은 남자들 중엔 희대의 브로커 윤상림씨도 포함돼 있다.

    구속 당시 크게 화제가 된 강 경위가 지난해 하반기 다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것도 윤상림씨 때문이다. 윤상림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김경수)는 두 사람의 ‘특별한 친분’을 밝혀냈다. 지난해 12월9일 법원에 제출된 윤씨 사건에 대한 공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피고인 윤상림은 다수의 경찰간부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경찰의 주요 인지부서인 경찰청 특수수사과 5팀 하OO 경감, 팀원 강순덕 경위 등과 특별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검찰에 따르면, 2003년 6월 강 경위를 스타로 만든 군 공사 비리 사건의 제보자가 바로 윤씨다. 당시 강 경위는 인천국제공항의 군 발주 공사와 관련해 전·현직 군 장성 5명이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는 K건설 회장 이모씨와 공모해 장성들에게 뇌물을 건넨 H건설업체의 비리를 강 경위에게 제보해 수사에 착수토록 한 후 H건설측으로부터 수사 확대를 막아준다는 명목으로 9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서의 진술과 H건설 협박 등은 이씨의 몫이었고, 윤씨는 경찰을 움직이는 일을 맡았다. 두 사람은 5억5000만원, 3억5000만원씩 나눠 가졌다.

    윤씨의 공범 이씨는 당시 사기 등 5건의 혐의로 지명수배된 상태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알고도 체포하지 않았다. 군 공사 비리에 관한 증언만 확보하고 그대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 경위는 지난해 12월 직무유기와 범인 도피 혐의로 추가기소되기도 했다. 강 경위의 상관으로, 윤씨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알려진 하모 경감도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3월 재판부는 강 경위에게는 무죄를, 하 경감에게는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강 경위의 혐의를 입증할 경찰 관계자의 진술이 있다며 항소했다.

    당시 강 경위의 수사에 참여한 한 경찰관은 검찰 조사에서 “사실상 윤사또(윤상림씨의 별명)가 수사를 다 했다”며 치를 떨었다고 한다. 실제로 2003년 5월7일 윤씨의 공범인 이씨는 서울 종로에 있는 윤씨의 사무실에서 윤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강 경위에게 H건설과 군 장성들의 뇌물수수 비리에 대해 증언했다.

    윤씨와 강 경위의 특별한 관계는 2003년 12월 강 경위가 설화(舌禍)를 입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남대문경찰서 경무과로 좌천됐을 때도 드러났다. 당시 강 경위는 경찰청 구내 커피숍에서 동료들에게 시중에 떠돌던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및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소재로 한 소문을 얘기했는데 그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좌천인사를 당했다. 당시 윤씨는 대담하게도 청와대 민정수석실 양인석 사정비서관을 찾아가 강 경위를 선처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관계자들 진술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에는 남녀간 감정이 개입됐던 것으로 짐작된다. 윤씨는 검찰에 구속된 후에도 강 경위에 대해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강 경위를 유리하게만 해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

    강 경위는 한때 제3자를 내세워 윤씨의 구애 공세를 차단하기도 했다. 강 경위의 삼촌으로 위장한 이 제3자는 윤씨를 만나 “(강 경위에게는) 결혼할 사람이 있으니 더 이상 치근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강 경위가 구속된 후 윤씨가 그의 언니를 만났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윤씨의 애정 어린 관심이 ‘경고 사건’ 이후에도 식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강 경위는 윤씨를 제보자로 활용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둔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은 투자하고 언니는 대표이사

    검찰은 두 사람의 돈 거래관계를 추적하고 있는데, 강 경위를 구속한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와 윤상림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공조하고 있다. 하지만 추적결과는 수사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수표추적을 통해 2003년 6월 윤씨의 이름이 배서된 수표 800만원이 강 경위의 계좌로 들어간 사실을 확인했다. 그 무렵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천만원이 현금으로 들어간 사실도 밝혀냈다. 강 경위가 윤씨의 도움을 받아 건설업체와 전·현직 군 장성들의 뇌물수수 비리를 수사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강 경위의 수사배경을 의심하는 것은 무리다. 검찰이 그 돈의 출처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경위가 네팔 인력송출업자 김모씨를 알게 된 것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할 때였다. 어떤 사건에서 김씨가 참고인으로 강 경위에게 조사받은 게 인연이 됐다고 한다. 2003년 10월 김씨는 서울 대신동에 에스비휴먼리소스라는 인력송출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이 회사의 초기 자본을 댄 사람이 바로 강 경위였다. 회사 위치도 강 경위 집 바로 옆이었다. 당시 강 경위는 김인옥 현 울산경찰청 차장과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김인옥 차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차장의 승용차를 운전하는 등 개인비서처럼 일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에스비휴먼리소스는 실적 부진으로 몇 달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하지만 법인 등기부등본엔 아직 이 회사의 이름이 살아 있다.

    강 경위가 이 회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임원 등재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회사의 이사는 김씨를 포함해 모두 세 명인데, 그중 두 사람이 강 경위의 언니다. 또 감사에는 강 경위 남동생의 이름이 올라 있다. 대표이사도 김씨가 아니라 강 경위의 언니가 맡았다.

    강 경위는 검찰에서 김씨와의 돈 거래에 대해 “사업하는 데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빌려줬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김씨에게 투자한 돈을 돌려받은 것은 이듬해 초다. 김씨가 강 경위 동생의 계좌로 입금한 4000만원이 그것. 빌려준 금액 그대로 되돌려받은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돈 거래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돈은 김씨의 새로운 동업자 서모씨의 것이었다. 서씨가 김씨를 알게 된 것은 사채업자인 고교 동창 최모씨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다음은 서씨의 증언.

    “김씨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 중국 손님을 데리고 왔다. 중국 회사와 손잡고 인력송출사업을 할 계획이라며 사업계획서를 검토해달라고 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인력송출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인력송출회사의 국내 지사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한 회사는 세계적인 규모의 인력송출회사였다. 그날 데리고 나온 중국인도 그 회사 직원이라고 했다. 두세 번 더 만난 후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투자하게 됐다.”

    김씨가 서씨의 도움으로 새로 차린 회사는 성림휴먼리소스. 소재지는 서울 영등포였다. 서씨가 대표이사, 김씨가 상무를 맡았다. 2004년 3월 설립된 이 회사는 2005년 6월 강 경위가 구속된 직후 김씨가 갑자기 떠나면서 업종을 바꿨다.

    이 회사는 김씨가 이전에 차린 에스비휴먼리소스와 마찬가지로 인력송출과 관련해 아무런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다시 서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처음엔 중국 회사의 지사를 차린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네팔 쪽으로 사업방향을 틀었다. 네팔에 진출해 그곳 인력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네팔에서 인력송출회사로 선정되는 것부터가 순조롭지 않았다. 인력송출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김씨가 네팔 출장을 자주 가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회사 문을 닫을 때까지 단 한 건의 계약도 성사되지 않았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당시 서씨가 김씨를 통해 강 경위를 알고 지낸 사실이다. 서씨의 기억으로는 2003년 12월과 2004년 1, 2월경 두 차례 셋이 만나 함께 식사했다. 김씨는 강 경위에 대해 “결혼할 사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서씨가 막상 만나보니 두 사람은 김씨의 말과는 달리 그다지 친근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강 경위가 김씨를 대하는 태도로 봐선 결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강 경위는 서씨에게 “김OO을 조심하라”고 충고까지 했다. 김씨도 강 경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서씨가 보기엔 두 사람이 서로 이용하는 관계인 듯싶었다. 어쨌든 김씨는 이후 결혼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강 경위와의 관계에 대해 자주 말을 바꿨다고 한다.

    서씨는 성림휴먼리소스에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가 고스란히 날렸다. 그중에는 강 경위에게 건네진 돈도 있다. 김씨는 회사를 설립하기 전 서씨에게 “이전 사업에서 빚을 진 게 있다. 회사 정리하는 데 5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었다. 서씨가 그 돈을 마련해주자, 김씨는 그중 4000만원을 강 경위에게 보냈다. 에스비휴먼리소스 투자금에 대한 변제였다. 말하자면 김씨가 강 경위에게 진 빚을 서씨가 대신 갚아준 것이다.

    병역비리 수사로 화려한 부활

    ‘농담’ 한번 잘못해 경찰청에서 남대문서로 좌천됐던 강 경위가 다시 사건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2004년 10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강 경위는 남대문서 경무과에서 형사과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대형사건을 터뜨렸다. 11월 초 언론에 보도된 병역비리 수사가 그것.

    병역비리 브로커 체포에서 시작된 이 수사는 군검찰과 공조해 육군 의무감 소병조 준장의 옷을 벗기는 데 이르렀다. 강 경위에게는 2003년에 이어 다시 ‘별 잡는 여경’이라는 찬사가 따라붙었다.

    ‘수사통’ 강 경위의 화려한 부활에 ‘제물’이 된 사람은 병역비리 브로커로 불린 최모씨. 최씨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병역비리를 알선한 혐의로 구속됐다. 소 준장은 그의 고교 동창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씨와 강 경위의 관계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강 경위가 최씨를 체포한 것은 ‘우연히’ 접하게 된 의병전역 비리와 관련된 첩보 덕분이었다. 모 일간지에는 강 경위가 생면부지인 최씨의 수첩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라워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그러나 강 경위가 최씨를 체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은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강 경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네팔 인력송출업자 김씨를 통해서였다. 또한 최씨는 김씨의 제의로 성림휴먼리소스에 투자한 서씨와 고교 동창으로, 김씨와 서씨 두 사람을 연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서씨 또한 이 사건으로 강 경위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2003년 말 또는 2004년 초 강 경위의 삼촌으로 행세하며 윤상림씨를 만나 “강 경위에게서 그만 떨어지라”고 경고한 ‘제3자’가 바로 최씨였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강 경위가 구속된 후 검찰 내사를 통해 밝혀졌다.

    병역비리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최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후 친하던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의 혐의는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병역비리 브로커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강 경위가 공명심에서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도 있다.

    최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검찰은 당시 김씨와 최씨 사이가 벌어졌던 점으로 미뤄 김씨가 제보자 노릇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병역비리 수사가 있은 지 한 달 뒤인 2004년 12월 강 경위는 이번엔 네팔 인력송출사업 비리를 파헤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수사대상은 10년간 네팔 인력송출사업을 독점해오던 룸비니사의 한국지사였다. 이 회사의 대표 전모씨는 12월6일 처음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일주일 뒤인 13일에 구속됐다. 그리고 30일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당시 전씨의 구속사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과다한 송출 수수료 수입.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한국 산업연수생 선발을 원하는 네팔인들로부터 정해진 수수료 130만원 외에 120만원씩 더 받아 3년간 2800여 명으로부터 총 33억원을 챙겼다. 둘째는 연수를 마치고 출국한 네팔인들을 이름만 바꿔 재입국시키는 방법으로 3억5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는 것. 하지만 검찰 재수사 결과 두 가지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다만 구속된 후 추가된 환치기 혐의에 대해선 약식기소로 벌금형이 선고됐다. 국내에서 연수중인 네팔인들이 본국에 부쳐달라고 부탁한 월급을 보내지 않고 네팔 현지에서 연수생 선발 대가로 받은 돈으로 송금을 대신한 혐의였다.

    전씨는 “강 경위의 수사 동기가 불순하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두 가지. 첫째는 엉터리 고발장. 수사 착수 계기가 김영석이라는 사람의 고발인데, 확인해보니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 둘째는 강 경위와 특별한 관계인 네팔 인력송출업자 김씨가 수사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어느 날 남대문서에서 조사받다가 우연히 다른 조사실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 방에선 다른 네팔인이 강 경위에게 조사를 받고 있었는데, 옆에서 김씨가 거들고 있었다. 내가 그 장면을 목격하자 강 경위가 크게 화를 내며 문을 닫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가 경찰관인 줄로만 알았다. 그후에도 봤는데, 서류를 들고 왔다갔다 하며 조사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강 경위 옆에서 수사 거들었다”

    전씨가 김씨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이듬해인 2005년 1월13일 타이 방콕에서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직원을 시켜 알아보니 네팔 인력송출업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가 강 경위와 특별한 관계라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전씨는 지난해 가을 검찰에 참고인으로 불려가 조사받으면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격분했다. 하지만 강 경위의 수사가 김씨의 부탁을 받은 것이라거나 그의 사업과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전씨의 추측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전씨에 따르면, 김씨는 네팔에서 자신이 ‘한국 대통령의 동생’이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강 경위의 네팔 인력송출비리 수사는 해가 바뀐 후에도 계속됐다. 탁월한 수사능력을 인정받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옮긴 강 경위는 네팔 인력송출업에 관여하던 사업가 홍모씨를 추적했다. 지난해 가을 언론에 요란하게 보도됐던 ‘브로커 홍’ 사건의 시작이었다. 강 경위는 홍씨 집을 압수수색하고 소환조사도 했지만 뚜렷한 물증은 잡지 못했다고 한다.

    몇 달 뒤 강 경위가 운전면허증 위조혐의로 구속된 후, 이 사건은 홍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청 광역수사대장 강모 경정에게 건넨 일기장이 공개되는 바람에 엉뚱한 쪽으로 비화했다. 일기장에는 홍씨와 친분이 있는 각계각층 인사의 이름과 금품액수가 적혀 있었다.

    일기장에 이름이 적힌 몇몇 경찰간부가 징계를 받았는데, 수사를 총지휘한 강 경정도 홍씨한테 꿀 한 통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직위해제 당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검찰 쪽에서는 홍씨에게 금품을 받은 부장검사가 옷을 벗었고, 검찰 직원 한 명이 같은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언론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2004년 1월 MBC ‘2580’이 홍씨의 제보로 네팔 인력송출업계의 문제점을 보도한 것과 관련해 보도국장과 차장 두 명이 금품로비를 받은 혐의로 해고됐다.

    하지만 정작 홍씨의 범죄혐의는 이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그의 혐의는 앞서 언급한 대로 네팔 인력송출업에 관여하는 네팔계 홍콩인 라이에게 사기를 쳐 5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가로챈 것이다. 홍씨는 구속된 후 라이에게 5000여만원을 주고 합의를 봤지만, 기소를 피하지는 못했다.

    “라이와 김씨가 짜고 수사 부탁했다”

    사실상 강 경위의 작품인 이 수사의 문제점은 1심 판결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재판부가 밝힌 무죄이유는 크게 세 가지.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매번 바뀌었다. ▲피고인이 업체 선정과 관련된 소송 상대방이던 중소기업중앙회 임원을 상대로 로비를 하려 했다는 공소 내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보통의 사기사건처럼 피해자의 고소로 시작된 게 아니라 피해자측이 자신의 지인을 통해 억울한 사정이 수사기관에 알려지면서 수사가 개시됐다고 주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한마디로 부실수사이고 수사배경도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주목한 것은 강 경위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김씨가 홍씨에게 피해를 보았다는 라이와 동업을 한 데다 그 시기에 두 사람 사이에 미심쩍은 돈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투자금’이라는 라이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증거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이 사건은 고소사건이 아닌 강 경위의 인지사건”이라며 “라이와 김씨가 짜고 나를 죽이기 위해 강 경위에게 수사를 부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씨와 전씨가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의심은 강 경위와 김씨의 특별한 관계가 자신들에 대한 수사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이다. 지난해 6월 강 경위가 구속된 직후 김씨가 네팔 인력송출업에서 손을 뗀 것도, 두 사람에게는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하는 정황이다.

    김씨가 떠난 후 성림휴먼리소스는 IT인력개발로 사업방향을 틀었다. 1년3개월간 김씨와 동업했던 성림휴먼리소스 대표 서씨는 “나는 자금만 댔지 네팔 관련 일은 김씨가 다 알아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후 외국에 나갔다고 한다. 가끔 서씨에게 연락을 하는데,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 인도 쪽 사업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고 한다.

    기자는 서씨를 통해 김씨와 접촉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서씨 말로는, 김씨가 발신번호를 가리고 전화를 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먼저 연락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최근 서씨는 기자에게 “얼마 전 김씨가 전화를 걸어왔기에 기자의 취재 내용과 전화번호를 전달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강 경위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그의 법적대리인인 법무법인 율촌의 윤홍근 변호사는 기자가 보낸 취재질의서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변호인 임상준 변호사도 직원을 통해 용건을 전달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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