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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딸 독살한 아버지의 음료수 캔을 보고 뇌파가 흔들리는데…”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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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대검 과학수사과 직원이 뇌파측정기를 시연하고 있다.

과학수사기법은 어느 날 획기적인 실험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영감을 받아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온 수사관들의 경험과 고민, 노하우가 축적된 것에 가깝다. 과학수사의 기본인 감청기법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발달했다. 이창세 기획관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소파 밑이나 책장 속에 묵직한 감청기구를 숨기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감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리는 같지만 기술적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용의자 검거와 범죄예방에 결정적인 몫을 해내는 몽타주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 인터넷에서 한 몽타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의 형상이라기보다는 개구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몽타주의 효용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경찰청 과학수사계 손호림 계장이 보여준 범인의 몽타주와 인물사진은 너무도 흡사해 놀라울 정도였다. 유행하는 뻗친 헤어스타일, 최신 디자인의 뿔테안경, 점의 위치. 몽타주는 사진 속 인물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흡사 극사실주의 화가의 솜씨 같았다. 손 계장은 “미국에서 만든 몽타주 프로그램을 쓰며 한계를 느끼다가 수년 전에야 한국인에 맞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며 “이전보다 인물 표현이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유행에 맞는 데이터를 꾸준히 보완하고 있다.

지능범죄 수사에서도 노하우가 중요하기는 마찬가지. 한 대기업의 비자금 비리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이 압수한 컴퓨터 용량은 9TB. 미국 의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와 맞먹는다. 관련문서를 찾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수사관들은 경험을 통해 익힌 직감을 바탕으로 문서를 걸러낸다. 이창세 기획관은 “파일명을 비자금이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며 “간단한 예로 알파벳 ‘B’로 시작하는 이름의 파일부터 검색하는 것이 첫 단계”라고 했다. ‘B-fund’ 같은 국적불명의 조합어로 파일명을 붙인 경우를 찾는 것이다. 또 중요문건은 컬러로 인쇄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서파일 중에 컬러로 복사된 것부터 추려낸다고 한다.

분첩을 든 경찰



수사관들은 이러한 최신 기법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전자감식, 범죄심리 등 각 분야 관련자들은 학회를 통해 의견을 교류하거나 미제(未濟)사건에 대한 회의를 열기도 한다. 국과수 양후열 실장은 “직접 수사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과수 문서분석실 나기현 연구원은 지난 3월 레이저프린트복합기로 출력한 문서에 담긴 암호를 밝혀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 8개월간 연구에 매진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아날로그 컬러복사기에서 출력된 문서에는 보이지 않는 암호가 찍힌다. 암호는 문서를 출력한 기계의 제조사와 제품번호 등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 컬러복사기로 출력한 문서의 출처를 밝혀내는 소프트웨어는 일본이 개발해 각 나라에 배포했다. 나기현 연구원은, 복합기로도 컬러인쇄가 가능한데 비슷한 기능의 프로그램이 있으면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다.

모든 회사의 복합기가 문서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나 연구원은 일단 연구할 제조사의 제품을 추려 샘플을 확보한 뒤, 해당회사에 일일이 협조를 요청했다. 문서를 모아 밤낮으로 뒷면에 찍힌 점들의 간격과 배열을 살폈다. 그는 “일본에서 비슷한 원리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고가 됐다”고 했다. 지난 4월 처음으로 나 연구원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표 위조범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뤘다. 사건을 맡은 동대문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강일수 경위는 “컴퓨터 화면에서 숫자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일련번호가 떠올라 신기했다”며 “이 프로그램 덕분에 용의자의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개발된 간단한 지문감식 방법은 경찰청 과학수사과 신경택 경장의 작품이다. 그가 건넨 두 장의 사진. 한 장은 갈퀴처럼 흐릿한 손 모양을 중심으로 자국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지만, 다른 한 장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기존 지문감식기법으로 채취한 지문과 새로운 기법으로 채취한 지문을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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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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