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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맨’ 꿈꾸는 최고령 한국챔피언 이경훈

“나는 40대의 좌절과 맞서 싸우는 아파치…주먹이 운다!”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신데렐라 맨’ 꿈꾸는 최고령 한국챔피언 이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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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에서 다시 낀 글러브

‘신데렐라 맨’ 꿈꾸는 최고령 한국챔피언 이경훈
그는 1950년대 육군 권투부에서 선수활동을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복싱을 접했다. 하지만 어릴 땐 복싱이 재미있기는커녕 지겨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TV만 켰다 하면 복싱만 보셨어요. 만화영화도 보고 싶은데 만날 복싱만 봐야 하니 얼마나 지겨웠겠어요. 하지만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저도 군에 입대해 취미 삼아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1982년 특전사 하사관에 지원 입대했다. 대대 대항 복싱대회가 열릴 정도로 당시 권투는 특전사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을까. 이전까지 스파링 한번 해본 적이 없던 그는 제대할 때까지 11번을 싸워 10번을 KO로 이겼다.

“1987년엔 아마추어 시합에도 나갔어요. 제대 말년이었는데, 저를 가르치던 부대 인근 복싱체육관 관장이 전국신인선수권대회 출전을 권하더라고요. 호기심에 출전해 3전 3승(3KO)으로 우승했죠.”



그 정도 실력이면 본격적으로 복싱계에 뛰어들 수도 있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대 후 전국신인선수권대회 우승 자격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신청을 했다.

“제가 우승했을 때는 부대 앞에 있는 체육관 소속이었어요. 하지만 제대한 후에도 거기 남아 훈련할 이유는 없잖아요. 권투연맹에다 체육관을 옮겨서 출전해도 되느냐고 문의했더니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 근처 체육관으로 옮겨 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경기 당일, 이전에 있던 체육관에서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연맹에선 골치 아프니까 경기 30분 전에 저를 실격 처리했어요. 황당했죠. 권투에 대한 회의도 느끼고….”

하지만 그의 재능을 높이 산 한 대학에서 복싱 특기생 입학을 권유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일본 백화점 납품 회사에도 취직이 됐다. 일본에 있으면서 자사 제품과 판매사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외국에 나가 일하는 기회가 드물던 시절이라 주저 없이 일본행을 택했다.

“러시아에서 초코파이와 라면을 파는 장사도 했어요. 제법 큰돈도 만졌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시던 골재상 일을 돕기도 했고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30평대 아파트도 장만하고…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으로 살았죠.”

먹고 살 만해지자 또 권투가 생각났다. 그때까지 복싱과 연결된 끈을 아주 놓지는 않았다. 인근에 복싱도장이 있으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들러 운동을 했고, 골재상 일을 하면서는 빈터 한쪽에 샌드백을 매달아놓고 심심풀이로 두드려댔다. 그 무렵 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MBC 신인왕전 기사가 마음을 뒤흔들었다.

“신인왕전에 나가 2연속 KO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아깝게 판정으로 졌어요. 그런데 시합이 끝난 후 한 체육관 관장이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해보라며 찾아왔어요. 안 한다고 했죠. 복서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지를 아니까요. 제가 먹고 살 길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배곯지 않고 사는데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진 않았어요. 복싱은 정말 헝그리 스포츠예요. 선수생활 해보니까 정말 고통스러워요(웃음).”

골재상을 정리한 그는 지인이 운영하던 컴퓨터 유통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섣부르게 사업에 손을 댔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1억5000만원의 빚까지 졌다. 다시 컴퓨터 유통회사에 들어갔지만 살길이 막막했다. 한 달 이자만 150만원이 넘으니 월급으로는 죽을 때까지 일해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회사 사장이 4000만원을 줬어요. 그 순간 ‘회사 그만두고 복싱 선수를 하자’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복싱을 해서 성공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잖아요. 물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평생 직장생활 해서 빚도 다 못 갚는다면 도전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서른아홉 살 때였다. 마흔을 앞두고 권투를 하겠다고 하자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 가족의 반대도 심했다. 4000만원으로 권투도장을 차려 생계를 꾸리면서 선수생활을 하는 것으로 아내와 타협을 봤다. 아내도 한번 한다면 하는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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