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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⑩

‘황비홍(黃飛鴻)’

천당이냐 지옥이냐, 대륙이 풀지 못한 100년 묵은 과제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황비홍(黃飛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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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홍(黃飛鴻)’

사자춤은 광저우를 비롯한 중국 영남 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중국인들은 정초에 사자춤을 추면서 악귀를 몰아내고 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사실 광둥어가 표준어가 될 뻔한 적이 있다. 쑨원이 1912년 중화민국 정부를 출범시켰을 때 몇몇 의원이 광둥어를 중화민국의 표준어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국회의원 중 광둥 출신이 과반수였으니 투표를 하면 그대로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광둥성 출신인 쑨원이 동향 출신 의원들을 설득해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광둥어가 표준어가 됐다면 그 어려운 광둥 말을 배우느라 고생깨나 할 게 뻔했다. 말이 다른 지역과 워낙 다르다 보니, 생각과 문화도 달라져 중국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영남지방만의 독특한 개성이 생겼다. 영남지역만의 독자적인 자의식도 생겼다.

영남지방 사람들에게 황비홍은 영남의 문화와 자존심을 상징했다. 영남 문화권에 속하는 홍콩에서 황비홍 영화와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황비홍은 영남인을 하나로 묶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그동안 홍콩에서 만들어진 황비홍 영화가 모두 영남지방 언어인 광둥어로 제작되고, 광둥 지역 민속음악인 ‘시양양(喜洋洋)’이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새 기르기, 찻집 문화 같은 광둥 사람들 특유의 생활문화가 많이 들어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壯志凌雲, 俠氣仲天

물론 쉬커의 ‘황비홍’ 또한 영남 문화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영화가 사자춤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사자춤은 이 지방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사자춤은 서역에서 불교와 함께 전래됐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선 사자춤이 탈춤의 일부로 들어가지만 중국에서는 독자적인 하나의 연행양식이다. 중국인들은 사자가 위엄과 용맹, 힘을 상징하고, 요귀(妖鬼)와 사악한 것들을 몰아내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되면 정초에 요란하게 북과 징을 치고 사자춤을 추면서 사악한 귀신들을 내쫓고 복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사자춤에는 두 가지 유파가 있다. 남방식인 ‘남사(南獅)’와 북방식인 ‘북사(北獅)’가 그것이다. 북방식은 바지까지 완전히 사자차림을 해 사람이 보이지 않고 사자와 사람이 분간이 되지 않아 외형을 보면 흡사 사자 같다. 사자가 작을 경우 한 사람이, 클 경우 두 사람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남방식은 외형이 훨씬 화려하고 주로 사자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데, 사자탈 속에 들어간 무용수들은 사자 차림을 하지 않고, 중국 전통 복장을 한다. 춤을 추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이다. 황비홍의 고향인 포산은 남방식 사자춤의 탄생지다. 광둥을 비롯해 동남아나 미주 등 해외 차이나타운에서 주로 연출되는 사자춤은 대부분 이 남방식이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자춤도 마찬가지다.



사자춤의 꽃은 ‘채청(采靑)’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시합이다. 사자춤을 추는 무리가 자기 짝의 어깨 위에 올라가 높이 매달려 있는 ‘청(靑)’을 먼저 따내는 것인데, 이때 ‘청’은 돈이나 비싼 물건인 경우가 많다. 영화 ‘황비홍’에서는 채청의 순간, 서양인들이 총을 발사한다. 광둥 사람들이 복을 빌고 악귀를 몰아내며 가장 성스럽고 즐거운 의식을 치르는 순간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채청을 하려던 사람이 총소리에 놀라 떨어지자 황비홍이 대신 나선다. 황비홍은 생전에 사자춤을 잘 춰 ‘사자왕’으로 불렸다고 한다. 명성에 걸맞게 황비홍은 사자 가면을 쓰고 현란한 무공으로 줄을 차고 하늘로 치솟아 ‘큰 뜻은 구름을 뚫고, 정의로운 기상은 하늘을 찌른다(壯志凌雲, 俠氣仲天)’고 적혀 있는 대련(對聯)을 손에 넣는다. 황비홍이 하늘을 찌르는 기개로 큰 뜻을 품고 나서서 악귀들을 물리치고 정의를 수호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는 셈이다.

쉬커 감독은 영화 ‘황비홍’을 통해 영남 문화의 특징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황비홍을 중국의 상징, 중국 근대 운명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는 영화 ‘황비홍’에서 서구 근대의 위협 앞에 선 중국의 운명을, 중국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묻는다. 그래서 ‘황비홍’을 광둥어가 아니라 푸퉁화로 만들었고, 홍콩 배우가 아니라 중국 대륙의 대표적인 무협 영화배우 리렌제(李連杰)를 주연으로 썼다. 그리고 중국이 서구 열강에 침략당하면서 중화제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민족위기에 휩싸이던 청년 황비홍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다. 중국과 서구,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곤경에 처한 황비홍을 그린 것이다.

중국 근현대사의 굴곡

광저우를 한눈에 보고, 광저우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광저우 웨슈(越秀) 공원에 오르는 것이 제일이다. 광저우를 대표하는 이 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섯 마리의 양 조각상이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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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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