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⑥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자연 회귀, 노역의 삶에 경종 울린 두 번째 독립혁명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3/8
“나날이 새롭게 하라”

호수와 대면한 설렘이 진정된 후 호수 입구 쪽의 널찍한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북쪽 기슭을 따라 난 작은 길로 들어섰다. 호수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오두막 터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호숫가 모래사장에는 여름철이라서 수영하러 온 사람이 꽤 많았다. 연전에 이곳에 처음 들렀을 때 호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란 기억이 새롭다. 월든 호수를 고즈넉하면서도 어떤 시원적인 신성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것으로 상상하고 있던 내게 이 너무나 일상적인 광경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호숫가에서 보낸 소로의 삶이 염인증(厭人症)의 발로나 사회로부터의 도피가 아닐진대 그런 탈속적인 정경을 기대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 기대는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환경 수호성인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소로의 이미지를 탈(脫)문명적인 원시적 자연과 결부시켜온 고정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소로 자신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호수에서 목욕을 했고, 그것을 그가 행한 최상의 일 중 하나로 꼽았다. 그에게 목욕은 갱생의 의식 같은 것이다. 그는 중국 은(殷)나라 탕왕의 욕조에 새겨져 있다는 “진실로 하루가 새롭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는 ‘대학’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새롭게 거듭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깨끗하고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해 속진(俗塵)과 일상에 찌든 피로를 떨쳐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호수는 콩코드의 주민들에게 크게 봉사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대지와 하늘이 하나로 합체되는 듯한 ‘하늘 물(Skywater)’에 몸을 담금으로써 자연과의 합일을 맛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로가 촉구한 생태적 삶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숲의 재탄생

호수의 사면 중에서 이 북쪽 기슭이 제일 경사가 가파른 편이고, 그래서 호숫가 또한 산기슭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호수 주변의 대부분이 모래흙으로 되어 있어서 토사의 유실을 방지하는 것이 호수를 원래대로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일인 듯하다. 몇 년에 걸쳐서 호숫가를 복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관리 당국의 메모판이 눈에 띈다.

숲으로 들어서니 다람쥐도 눈에 띄고 새소리도 들린다. 나무들 또한 제법 울창하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소로 시대에 심어진 것은 아니다. 소로는 자신이 오두막 주변에 400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나무들은 수해로 사라진 지 오래다.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히코리 등 숲의 대종을 이루는 나무들은 이후 새롭게 조림된 것이다.

오늘날 보는 콩코드 주변의 울창한 숲도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세기말 석유가 대중화하기 전까지 건축자재는 물론 각종 생활가구, 연료용 땔감으로 목재의 수요가 많았다. 기록에 따르면 소로가 살던 1850년대에 이곳 콩코드 지역의 경우 산지는 40% 정도에 불과했으며, 그 또한 남벌이 심해 헐벗었다고 한다. ‘월든’ 전편에 걸쳐 있는 물질주의에 대한 경계와 ‘교역의 저주’에 대한 우려는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 것이다.

게다가 1840년대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레일용 침목으로 많은 목재가 소용되어 매사추세츠 주는 이 무렵 이미 인근 메인 주와 뉴욕 주에서 목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 자연에 대한 소로의 관심은 경제생활의 대부분을 땅에 의존해야 했던 당시에 인구의 증가(당시 매사추세츠 주의 인구는 75만가량이었다)로 주변의 산과 숲이 황폐해지는 상황에서 자극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윽고 호수의 서북쪽 끝 후미진 소로 만(Thoreau’s Cove)을 지나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서니 곧바로 소로의 오두막 터다. ‘월든’에서는 소로가 지은 오두막이 길이 15피트, 넓이 10피트, 높이 8피트라고 밝히고 있다. 네 평 남짓한 그야말로 작은 공간이다. 호수 입구의 안내 센터와 렉싱턴가의 콩코드 박물관 앞뜰에 복원된 오두막을 이미 본 터라 그것을 실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타성을 돌아보다

소로는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이곳에서 2년 2개월 2일을 살았다. 이곳이 집터로 확인된 것은 1945년 11월, 소로의 월든 이주 100주년을 기해 고고학자 롤랜드 로빈슨(Roland W. Robinson)이 발굴하면서다. 1947년 미국 소로학회 주동으로 이곳에 돌기둥을 세워 집터였음을 표시하고, 아울러 집터 안 벽난로 밑돌 자리를 찾아 명판을 세웠다. 명판에는 ‘월든’에 인용된 소로의 시에서 따온, ‘자 그대, 나의 향이여, 이제 이 벽난로에서 위로 솟아라(Go thou my incense upward from this hearth)’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집터의 뒤쪽에는 4개의 작은 돌기둥으로 땔감을 넣어둔 헛간을 표시해놓았다.

3/8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연재

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더보기
목록 닫기

‘생태적 사유’의 발상지, 콩코드 월든 호수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