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의 이화장 이야기

“남편 신발 겨우내 방에 들이라던 내 시어머니 프란체스카”

  • 김승훈 자유기고가 shkim0152@hanmail.net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의 이화장 이야기

3/5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의 이화장 이야기
프란체스카(Francesca Rhee·1900 ~92) 여사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이다. 한국 이름은 이부란(李富蘭). 오스트리아에서 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스코틀랜드에 유학해 국제통역사와 속기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1933년 2월 독립운동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이 전 대통령을 레만 호반의 호텔 ‘드 라 뤼시’ 식당에서 처음 만났고, 그해 7월 빈에서 청혼을 받은 후 다음해 10월8일 뉴욕 몬트클레어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 망명생활을 하는 남편을 12년 동안 뒷바라지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한국에 왔다. 1948년 이후 영부인으로 6·25 전쟁과 4·19 혁명 등 격동기를 겪었고, 이 전 대통령의 하와이 망명길에 동행해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병상을 지켰다. 사별 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겨가 살다가 1970년 한국에 영구 귀국해 이화장에서 여생을 보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일국의 영부인이었지만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는 대통령에게 집착하며 ‘인의 장막’을 쳐 국정운영을 그르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부인의 역할 유형을 6가지로 나눈 고려대 함성득 교수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베갯속 내조형’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평판에 대해 조 여사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시어머님께서 국회 부의장을 지낸 임철호 비서관에게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다 시아버님께서 흥분하면 혈압이 높아질까 걱정했던 거죠. 그 말을 듣고 임 비서관은 비서직에서 물러났어요. 그러자 시아버님께서 다시 임 비서관을 경무대로 불렀죠. 시아버님이 아내의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아내 때문에 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오셨을 리 없죠. 저희 시어머님은 절대 시아버님 일에 참견하는 분이 아니었어요. 곁에서 조용히 돕기만 했습니다.”

조 여사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한국의 다른 어머니들보다 더 한국적’이라고 추억했다.



-1970년부터 1992년 3월19일 별세할 때까지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사셨죠. 프란체스카 여사의 평소 생활은 어땠습니까.

“시어머님은 늘 기도를 열심히 하셨어요. 우리나라의 집 없는 서민들이 다 집 갖게 해달라고, 우리 동포들이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해외에 있을 때부터 늘 기도하셨어요.”

-고부 간의 갈등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저를 친딸처럼 사랑해주셨어요. 물론 아들과 손자를 더 사랑하긴 했지만(웃음). 시어머님께는 남아선호사상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님도 딸만 셋인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당신의 친정아버님이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셨대요. 아들, 손자가 우선이고 며느리는 꼴등이었어요. 하지만 갈등은 없었죠.”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남편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가계부를 썼어요. 10년 동안 보름마다 시어머님께 가계부 검사를 받았어요. 지출을 줄여야 할 항목에는 빨간 줄을 그어주셨죠. 가계부를 매일 쓰라고 하셨는데 그게 좀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검사가 있는 전날 밤에는 밤을 새워가며 정리했죠. 그게 힘들어서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돌아왔을 때 ‘교섭’을 좀 해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시어머님이 저를 불러 ‘가계부 쓰기 싫다고 했다며?’ 하시길래 ‘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앞으로 수도세, 전기세, 기름값은 너희 남편 월급에서 제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좋다’고 했어요. 일단 시험 안 보니까 좋잖아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전기세, 물세 등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정원에 물을 많이 썼는데, 수돗물 절약하라고 잔소리하게 되더군요. 당시 저희 집 자동차가 6기통이었는데 기름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차 쓰는 것 갖고도 잔소리를 했죠.”

-문화적 격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진 않았습니까.

“오히려 시어머님이 저보다 더 한국적이셨어요. 이를테면 시어머님은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남편 앞으로 쓱 밀어놓으세요. 그리고 우리 집은 댓돌에다 신발을 벗어놓는데, 시어머님이 겨울에는 남편 신발을 집안으로 들여놓으라고 하셨어요. ‘머리는 서늘하게 하고 발은 항상 따뜻하게 해야 한다’면서. 한번은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사레들려 기침을 마구 했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님께서 ‘네가 이 달에 열일곱 번이나 구두를 안에 들여놓지 않아서 감기가 들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시어머님께서 남편 신발이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正’자를 써가며 확인하셨던 거예요. 시어머니 방에서 내다보면 댓돌이 보이거든요. 아들을 그렇듯 하늘처럼 받들었죠.”

시부모 장수 비결은 이화장 음식

-손자 사랑은 어땠나요.

“남편이 박사학위 받으러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저 혼자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바깥일은 제가 주로 하고 시어머님은 아이들을 가르치셨죠.

한번은 큰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가 있다기에 갔어요. 토마토를 한 쪽씩 나눠주더군요. 그런데 안 먹고 남긴 아이들 토마토를 큰애가 다 먹는 거예요. 그래서 데리고 오면서 왜 남이 남긴 음식을 먹냐며 야단을 쳤어요. 그날 밤 아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시어머님께선 손자들에게 간식을 해주고 먹다 남긴 게 있으면 다 잡수셨어요. 그걸 보며 자란 큰아이가 그대로 한 거예요.

또 언젠가는 학교 대표로 대구 연수원에 합숙을 하러 갔어요. 갔다 오더니 큰애가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그래요. 연수원에서 선짓국이 나왔는데, 애들이 숟가락을 놓고 도망가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그걸 다 먹었다는 겁니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화장 음식이 건강식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시아버님은 아흔, 시어머님은 아흔둘에 돌아가셨는데, 장수의 비결은 이화장 음식이죠. 두 분 다 기름기를 멀리하고 콩과 두부를 즐겨 드셨어요. 그리고 물김치, 된장찌개, 콩자반, 산채, 생선구이에 현미, 보리, 콩 등을 섞은 잡곡밥은 건강식으로 더할 나위가 없죠. 한마디로 우리집 음식은 한국적이에요. 우리 토속 음식이 최고의 건강식이죠. 임진우 박사라고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가 있는데, 그분이 우리 집 음식이 최고의 건강 장수식이라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3/5
김승훈 자유기고가 shkim0152@hanmail.net
목록 닫기

이승만 전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의 이화장 이야기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