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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조사 중 자살한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 유족 대리인의 육필 원고

“‘인간적 모욕’ 퍼부은 대검 중수부 수사관을 고발한다!”

대검 관계자, “강압수사 있었다면 다른 이들은 왜 항의 안했나”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인간적 모욕’ 퍼부은 대검 중수부 수사관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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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비록 익명으로 처리했다지만, 그 모든 내용은 실시간으로 언론에 흘러나가 활자화됐다.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남과 매형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상황에서 ‘구속시켜 처남과 한방에 넣어주겠다’ ‘두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혈기 왕성한 두 젊은 수사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평생을 샌님처럼 살아온, 예순두 살의 은퇴한 공무원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고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봄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서울 연희동에서 한 중소기업 사옥을 설계하고 감리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현장에 민원이 생겨 불려간 곳이 서대문구 건축과였고, 당시 건축과장이 바로 고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대문구 건축과장은 그가 사무관에 진급한 후 처음 발령받은 자리였다.

그는 나를 세워놓고 한 시간이나 무섭게 호통을 쳤다. 공사현장의 난잡함과 안일한 공사관리로 부근 주민들이 갖가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감리자를 행정조치할 수밖에 없다는 꾸중도 들었다. 이후 나는 3개월 동안 현장에 상주하면서 민원피해를 보수했다. 준공검사 신청을 하자 고인은 직접 현장에 나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참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꼼꼼한 업무 당부 드린다”고 했다. 그게 첫 인연이었고, 그 후로 20여 년을 형제처럼 지냈다.

그의 꼼꼼한 일처리는 정평이 나 있었다. 이후 양천구 건축과장, 건설안전본부 건축지도과 건축계획계장을 거쳐 서기관으로 진급한 후에는 성북구청 도시정비국장, 강남구청 도시관리국장, 건설안전본부 건축부장, 서울시 건축지도과장을 지냈다. 모두 서울이 급속도로 재정비되던 1980~90년대의 일이었고, 무수히 많은 건축사업이 그의 손을 거쳤다.

서울에서도 유난히 불량주택 재개발이 많았던 성북구청 도시정비국장으로 일하던 무렵에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재개발 민원에 대해 일일이 현장을 직접 찾아가 민원인들을 면담하곤 했다. 강남구청 도시관리국장으로 일할 무렵에는 삼성동 현대아이파크와 도곡동 삼성타워팰리스 같은 초대형 사업으로 발생한 주변 주민들의 민원을 직접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민원인들에 의해 창고에 세 시간이나 감금당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깨끗이 해결하고 준공처리를 해낸 주인공이었다. 동(棟)간 간격이 답답하고 비좁은 옛날식 판상형 아파트 대신, 건폐율을 낮추고 층고를 올려 지상공간의 개방감과 조경을 확보한 요즘의 아파트 건축 흐름은 상당부분 그의 공이다.



건축관련 업무가 까다롭고 잡음이 생기기 쉬운 분야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자본과 시간, 노력이 투입되는 만큼 서울의 주요 건축사업과 관련해서는 크고 작은 의혹과 사건들이 터져 나오기 일쑤다. 그러나 그는 맡은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고, 건축직 공무원의 꽃이라는 서울시 주택국장이 됐다. 고시를 보지 않은 건축과 7급 출신의 고인이 조금이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 손을 댔다면 그 자리까지 이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주택국장으로 정년을 맞이한 최초의 서울시 직원이었다.

서울시장과 내무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는 실력 있는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상이 전혀 아깝지 않은 공직자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의 동료들이었다. 장례를 치르던 사흘 내내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상가에 들러 밤을 새운 서울시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미 은퇴한, 게다가 세상을 떠난 이의 빈소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조문객이 많았다. 간부들 중 누구 하나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전임국장 한 사람은 장례식장에서 분을 주체 못해 폭음을 하고 화장실에서 벽을 주먹으로 치며 “왜 그걸 못 견디고 죽느냐”고 울부짖었다.

5월17일, 영구차는 그가 일했던 서울시청 앞에 들러 노제(路祭)를 지냈다. 서울시 공무원 300여 명이 나와서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이날 서울시 직장협의회는 “정치논리와 권력의 칼이 약한 자를 위협하며 양심의 자유를 침탈하는 오늘 선배님은 이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남은 생애의 부와 지위와 명예, 그리고 목숨까지 지불했다”는 고별사를 낭독했다.

“안 했다고만 하면 안 한 것인가”

박 국장이 세상을 뜬 이튿날, TV를 틀었더니 ‘검찰, “강압수사 없었다”’는 뉴스 자막이 흘러간다. 중수부 고위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수사1과 사무실에서 조사했으므로 폭언이나 강압수사를 할 형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유서에 왜 그렇게 썼는지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인격모독을 안 했다는데, 누가 했다고 하면 우리가 한 것이냐”고 말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압박을 느꼈다는데 수사관들이 안 했다고 하면 그냥 안 한 것인가. 왜 제대로 된 감찰이나 진상조사는 할 생각도 하지 않고, 하루 만에 “자체조사를 다 했다”며 “그런 일 없다”고만 말하는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고인이 선임했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고인에게서 검찰에서 폭언을 듣거나 위협을 받았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며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내가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이야기한 것을 언론을 통해 들었다. 법무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변호사는 적지 않은 수임료를 받았지만 실제 검찰 조사과정에선 단 한 번도 고인과 동행한 적이 없다.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그것도 변호사라는 사람이 그렇듯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고인은 죽기 전날에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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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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