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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탐욕스러운 한국 귀신, 대접받기 좋아하는 기득권층 닮았죠”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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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은 어떻습니까.

“만신들 얘기로는 상류층 사람들이 굿을 많이 한대요. 하지만 제가 굿당에 갔을 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어요. 상류층은 굿을 매우 사적인 일로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걸 꺼리는 것 같아요. 만신들이 그래서 속상해해요. 상류층 사람들도 굿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만신들의 위상도 높아질 텐데 그렇지 못하다고.”

-교수님은 사람들이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굿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1997년 금융위기가 무속 세계에 미친 영향도 상당했을 듯한데요.

“당시 언론에서 무당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서 돈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꼭 무당들을 비난할 건 아니었어요. 그 무렵 무당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거든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한다고 하는 화이트칼라들도 굿당을 찾았으니까요. 1998년 봄에 만난 무당들은 ‘IMF가 아닌 이유로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만신들에게 어려움이 있었어요. ‘IMF’가 신보다 훨씬 강력했거든요. 한 처녀 무당은 ‘사람들의 요구가 너무 커서 아무리 기도해도 문제를 해결해줄 수가 없다’면서 자기가 하는 일은 ‘카운슬링’에 가깝다고 말했어요. 손님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정도라고. 그래서 한 여자가 찾아와 ‘남편이 직장을 잃었으니 직장 상사에게 해코지를 해달라’고 했을 때 ‘신령님이 가을에는 일이 잘 풀릴 거라고 하시네요. IMF가 다 해결해줄 겁니다’라고 했대요.”

“대통령이 마셨다면 나도 마셔야지”



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오늘날 한국 무속은 공연문화로서의 굿과 은밀하게 진행되는 사적인 굿이라는 이중적 형태를 띠고 있다.

그동안 한국 학자들은 무속의례의 ‘노골적인 물질성’을 병폐로 여겨왔다. 순수한 전통을 서구의 물질주의가 변질시켰다고 봤다. 이 같은 견해는 비단 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굿을 할 때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의뢰인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양주를 마시거나 바나나를 먹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켄덜 교수는 “굿에 사용되는 소품의 변화가 한국의 소비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92년에 자신이 직접 후원했던 굿을 예로 들었다.

“만신은 제단에 놓인 세 병의 위스키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세 병을 모두 움켜쥐려 했어요. 그때 누군가 그중 한 병이 국산이라고 하니까 만신이 나를 향해 경멸하는 표정을 짓고는 그 한 병을 제자리에 올려놓았어요. 만신은 소주나 막걸리 대신 양주를 마시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따라줬어요. 내 친구가 ‘이 술(시바스리갈)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던 순간에 마시던 술’이라고 얘기하자 만신은 ‘대통령이 마셨다면 나도 마셔야지’ 하며 좋아했어요.”

간략한 서술이지만 신의 탐욕스럽고 익살스러운 면모가 드러난다. 이밖에도 무당이 죽은 조상의 모습을 한 채 과거에 겪은 고생과 누리지 못한 것들을 늘어놓으며 그때보다 훨씬 좋은 세상에 사는 후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이 굿의 레퍼토리다.

켄덜 교수는 이러한 광경이 소비재에 대한 의뢰인의 욕망을 극화(劇化)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품, 소비, 급속한 경제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재현해 보임으로써 과도한 욕망을 비난함과 동시에 희구되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 그는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누구도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굶주린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끊임없이 새롭고 더 나은 상품을 만들어냄으로써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는 우리를 감질나게 만들지 않는가.

영험한 능력을 지녀 신으로 하여금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행하도록 하는 사람이 ‘샤먼(Shaman)’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라면 켄덜 교수는 한국 샤먼의 특징을 “대감, 장군, 상제 같은 관리(government official) 이미지를 하고 굿을 하는 스타일”에서 찾는다. 그는 “굿은 고기, 술, 음악 등으로 신을 즐겁게 함으로써 호의를 베풀도록 하는 것인데, 그때 선조나 신령들에게 바치는 음식과 의복, ‘노잣돈’ 같은 제물과 여흥거리는 한국사회에서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모호한 거래’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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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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