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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北 인권, 유럽안보협력회의처럼 ‘다자 접근’으로 풀자”

  • 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mhheo@knu.ac.kr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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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위팃 문타폰(왼쪽)의 이야기를 듣는 필자(가운데).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면서도 이를 남북한 관계의 종속변수로 설정한 것은 모순이다.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그 결과로 북한 인권 상황이 개선되도록 하자는 것은 일정 부분 합리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 일반 주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3계층 51개 부류로 나뉘어 차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스스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은 북한인권 문제의 원인과 속성을 간과한 것이고, 한국 정부 스스로 자기주장의 한계를 긋는 일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아무리 도와줘도 북한의 정치체제가 ‘사유화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남아 있는 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결코 해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의 인권 문제가 압박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과거 중·동부유럽 공산주의 체제에서 인권의 신장됐던 것은, 1975년 서방국가들이 헬싱키협정에 공산국가들을 가입시켜 인권조항 준수를 요구하고 내부의 저항세력이 이를 인권운동의 공간으로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인 ‘노동개조장’이 폐쇄된 것도 이른바 도이모이 정책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준 서방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한국의 지원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하고 경제상황이 개선되더라도 그것이 인권 신장의 공간이 되고 인권 개선으로 연결되려면 끊임없는 외부 관찰과 개입이 필요하다.

북한인권 문제의 가장 큰 난점은 공식적인 선언과 현실 간에 현저한 괴리가 있고, 이를 북한당국이 인정하지 않아 개선방법을 강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가 개선에 나서야 할 부분은 바로 이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북한 정부가 1998년 신소청원법을 채택하고 다음해 수정·보완한 것, 사회주의노동법을 1986년 이래 1999년 처음 개정한 것, 1990년대 들어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각각 3회, 5회 수정·보완한 것, 2003년 말에 장애인보호법을 제정한 것 등 일련의 조치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5대조약 운영체계에 따라 북한이 가입한 4대 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한 결과이다.

북한인권 운동은 과연 쓸모없는가



인권을 논할 때는,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베르겐 국제회의의 모토이기도 한 “우리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당신의 자유를 사용해주세요!”라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간청은 바로 북한 주민의 절규가 아닐까.

계급차별정책, 김일성·김정일 권력 창출과정에서 생겨난 정치범수용소에서 만행이 자행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뒤 북한에 송환된 탈북여성이 강제낙태와 영아 살해를 경험해야 하고 초등학생들에게 공개처형 장면을 집단 관람시키는 것이 북한의 인권현주소다. 이러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는 국제사회의 경악과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인권 유린은 북한당국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체제의 비효율성에 기인한 것이므로 외부의 개입 없이는 상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4월14일 한 강연회에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떠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피켓 들고 데모하고 시위하고 성명 낭독한다고 인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우리(통일부)도 100만장의 성명서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 인권 운동의 무용론인 셈이다.

북한인권의 개선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지만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베르겐 국제회의에서 소개된 ‘7인 탈북자 사건’의 경우를 보자. 1999년 11월 러시아에서 탈북자 7명이 체포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연해주정부는 러시아 연방정부로부터 이미 망명비자를 받은 이들을 1999년 12월30일 중국으로 강제송환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2000년 1월12일에 다시 북한으로 강제송환해, 당시 13세이던 김성일은 구류장에서 사망했고, 김광호는 ‘특별독재대상구역’에 수감되었으며, 허영일·방영실·이동명·장호영·김은철은 2000년 7월4일에 요덕수용소 ‘혁명화대상구역’에 수감됐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실과 관계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 때문에 요덕수용소에서 사망한 방영실과 특별독재대상구역에 수감된 김광호를 제외한 4명은 결국 생환할 수 있었다. 비정부단체가 유엔 인권기구와 연계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감시 활동에 나서면 어떠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보여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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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mhheo@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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