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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 반성, 그리고 2010년을 기다리며

방송·상업자본의 빗나간 ‘애국 마케팅’… 희망은 ‘준비’ 속에 있다

  • 김덕기 한국축구연구소 사무총장 saong50@naver.com

회한, 반성, 그리고 2010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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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의 공영성과 다양성 등 방송언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외면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낯 뜨거운 해설

이런 태도는 시청자에게 왜곡된 축구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심각한 문제점을 양산했다. 무조건 이겨야 하며,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를 부채질했고, 결과와 기분, 애국심을 심판 판정의 잣대로 들이댔다. 스위스전 심판의 오프사이드 판정에 관한 여론몰이식 재판, 그리고 비뚤어진 애국심에 기대 반대편의 의견을 난도질하는 비이성적 떼거리 심리 조성이 그 예다. 방송은 자료화면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매체임에도 자사 해설자의 해설 내용에 따라 이를 왜곡된 화면으로 편집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

해설자들의 전문성 결여도 방송의 질을 떨어뜨렸다. 축구는 룰이 단순하고 심판에게 많은 재량권이 부여된 종목이다. 따라서 경기의 흐름을 정확히 보지 못하면 경기 내용 자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해설자에겐 경기의 흐름과 룰, 숭고한 스포츠 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전문적 식견이 요구된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경기 흐름을 왜곡하고 룰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해설자들을 기용해 심각한 오류를 전달했다.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말고도 그런 사례는 많다. 특히 페널티킥 선언에 대한 ‘제멋대로 해석’은 충격적이었다. 프리킥 때 벽을 쌓은 선수들이 심장과 얼굴, 급소를 가리고 있던 손에 공이 맞았는데 핸드볼 반칙을 선언하지 않는다며 심판을 비난하는 해설자도 있었다.



또한 중계방송 도입부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연예인을 동원하는 등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축구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이나 방송사 로비, 또는 방송사들이 지정한 공개된 장소에 동원된 연예인들은 입만 열면 “애국” “승리”를 외치며 시청자를 ‘애국심 환자’로 몰고 가는 나팔수 노릇을 했다. 한국팀의 현지 연습장과 경기장에는 연일 연예인이 동원되고 촬영과 인터뷰 공세가 이어지는 통에 선수들이 경기에 몰입하지 못할 정도였다.

입만 열면 “애국” “승리”

한국팀의 탈락으로 월드컵 열기가 식은 뒤에도 방송사가 월드컵 프로그램을 중복 편성한 것은 이미 판매된 광고 때문이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관련 광고를 이미 판매한데다 FIFA에 고액의 중계권료를 지급했고 독일 현지 특집 프로그램 제작 등으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해명한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방송 3사가 한국팀 예선 3경기 기간 중 경기 중계와 특집 프로그램 편성 등으로 기대했던 광고 수입은 800억원 규모다. 이 중 실제로 판매된 광고는 전체 물량의 60%대인 500억~600억원. 각 방송사의 수입이 20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그러나 지상파 3사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주장한다. 방송 3사가 방송협회를 통해 FIFA에 지급한 중계권료는 2500만달러(236억원)이다. 여기에 각종 특집 프로그램 제작비용, 방송사별로 200~300명에 이르는 현지 취재인력 파견비용 등을 합하면 각사 지출은 200억원이 넘는다는 것. 한 방송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거나 소폭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한국팀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방송사 광고단가도 수직상승하므로 16강 진출을 학수고대하던 상황이었다. 2002년처럼 4강에 진출할 경우 예상되는 방송 3사의 총수입은 1180억원 규모였다.

온 국민이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염원하는 가운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상업자본이다. 응원은 국민이 알아서 잘할 텐데도 이들은 ‘조국’ ‘대한민국’을 들먹이고 ‘하나가 되자’ ‘할 수 있다’면서 응원단장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4년 전엔 어느 기업이 응원구호와 팔 동작을 친절하게 가르치더니 이번에는 그 경쟁 기업이 ‘응원하기 전엔 체조도 하셔야 된다’며 ‘국민체조’까지 가르치려 했다.

상업자본이 우려했던 것 역시 월드컵 특수의 단축이었다. 이를 돌파하려 동원한 것이 바로 ‘애국 마케팅’이다. ‘한국’ ‘대한민국’을 외치고 태극기를 앞세워 광고를 찍으면서 슬쩍 회사 이름을 집어넣었다. 한국처럼 ‘축구 애국주의’가 사회를 온통 뒤덮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4년마다 등장하는 ‘주기적 애국’이라면 그 본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상업자본은 월드컵 기간에 ‘꿈은 이루어진다’며 국민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었다. 4년 전 붉은악마가 카드섹션으로 선보인 이 문구는 이제 기업광고의 단골 메뉴가 됐다. 꿈이란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다. 꿈꾸는 ‘나’는 현실의 ‘나’와는 항상 단절되어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불합리하고 근거 없고 괴기한 그 무엇이다. 따라서 꿈은 현실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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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 한국축구연구소 사무총장 saong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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