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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체류 13년, 특파원이 몸으로 쓴 현장 秘話

모스크바 ‘100달러면 안 되는 게 없는 나라’에서 ‘억만장자 수 세계 2위국’으로

  • 김기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러시아 체류 13년, 특파원이 몸으로 쓴 현장 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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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대에 유학하던 시절 겪었던 ‘모라토리엄 사태’는 러시아 경제개혁의 분기점이 됐다. 분명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러시아 경제가 눈부신 호황을 이루는 바탕으로 작용했다. 흔히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한국인의 경제상식이 풍부해졌다고 한다. 전국민이 IMF가 뭐하는 곳인지는 대충 다 알게 됐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에 어두웠던 러시아 국민에게 ‘경제학습’을 톡톡히 시켰다.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장개혁 과정에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루블화 폭락, 산업붕괴 등 경제난을 겪었던 러시아는, 1996년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과열 기미까지 보였다. 해마다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다가 1997년에 이르러 소련 붕괴 후 처음으로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비록 0.1%였지만). 러시아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시장경제가 정착돼 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당시의 러시아 경제는 위기를 안고 있었다. 누적된 재정적자에다 옛 소련에서 물려받은 것까지 포함해 외채는 무려 2000억달러에 달했다. 지하경제의 비중이 커지고 보혁(保革) 노선 갈등으로 개혁입법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원자재 가격까지 폭락하자 자원 수출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의 부담은 커졌고, 결국 아시아발(發) 금융위기가 러시아까지 덮친 것이었다.

미리 위기를 감지한 러시아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러시아 단기국채(GKO) 시장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던 ‘국제금융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 정도만이 “러시아에 위기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며 1998년 중반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이 있기 전부터 러시아 주식시장 주가가 폭락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이 위기의 실체를 몰랐다.

“주식 시세가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1990년대 초의 극심한 경제난도 겪었는데, 그보다 더한 위기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기업인 등 실물경제에 밝은 사람들도 태평스러웠다. 워낙 자주 위기를 넘기다 보니 둔감해졌다 싶었다. 1998년의 위기는 1990년대 초의 경제난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1998년 8월17일 러시아 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 루블화가 폭락하고, 은행예금 인출이 동결되고, 모든 시장이 얼어붙어 거래가 끊기고서야 뭔가 큰일이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기업과 은행의 파산이 잇달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운이 좋았다.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이 늘어났고 1999년부터는 오랫동안 잠자던 국제유가가 뛰기 시작했다.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인 러시아로서는 경제에 날개를 단 셈이었다. 옐친 시대의 정치혼란은 ‘강력한 지도자’ 푸틴의 등장으로 종식됐다.

1998년의 짧은 위기는 이후 1999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5~7%씩 계속되고 있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시장개혁 이후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생겨났다. 이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1998년 모라토리엄 사태 때 시장에서 퇴출됐다.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기업은 그만큼 강해졌다.

모라토리엄 사태는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시장이 얼어붙고 거래하던 러시아 기업이 파산하자 외상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도 보았다. 러시아에서 신규사업을 시작하려고 의욕적으로 진출했다가 모라토리엄 사태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유학생들은 살기가 좋았다. 루블화가 폭락하면서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처럼 달러를 가진 외국인들이 힘을 쓰는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한창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던 필자도 그런 혜택을 누렸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지도교수 댁으로 자주 찾아가야 했는데, 별 부담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 모든 사건에는 명(明)과 암(暗)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러시아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면서 환율은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요란한 열차여행

최근 모스크바의 외신기자들 사이에 또 다른 ‘여름 징크스’가 생겼다. 6월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한 일본 언론 특파원은 “또 시작이군…”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해마다 여름만 되면 반복되는 ‘김정일 방러 신드롬’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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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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