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뮬라크르의 공간, 라스베이거스 뜯어보기

“당신이 상상하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없어요, 라스베이거스에 있답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시뮬라크르의 공간, 라스베이거스 뜯어보기

2/4
시뮬라크르의 공간, 라스베이거스 뜯어보기

라스베이거스 중심대로. 자유의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모방해놓은 호텔 뉴욕뉴욕과 5000여 객실을 자랑하는 MGM그랜드 호텔 간판이 보인다.

이러한 콘셉트 건축은 한때 라스베이거스 전체의 유행이었다. ‘전통의 강자’로 불리는 시저스팰리스 호텔 또한 이름이 말해주듯 로마와 그리스 건축물을 고스란히 현대에 재현해놓은 모양새다. 호텔 안 공연장의 이름은 ‘콜로세움’. 실내에 조성된 쇼핑거리 곳곳의 광장 분수대에는 로마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동상이 서 있다. 호텔 입구에 있는 경기장에서 권투경기가 자주 열린 것도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결투와 가장 흡사한 스포츠였기에 선택된 이벤트였다. 경기장 가운데를 가로지른 호텔 2층의 바에서 타이틀매치를 내려다보는 손님은 네로 황제가 된 듯한 기분에 취했을 것이다.

이러한 콘셉트에 따라 설계되고 꾸며지고 운영되는 호텔들은, 흡사 놀이동산에 온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던 풍경과 그림으로 꾸며놓은, 그렇지만 리얼리티보다는 환상성이 더 강조되는 일종의 ‘키치’다. 건설된 지 시간이 꽤 지난 일부 호텔들은 벌써 상당히 낡아서 중저가 전략으로 전환한 지 오래지만, 방문객을 신기함과 즐거움에 빠져들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흥겨운 분위기, 흥미진진한 느낌이 1990년대까지의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했다.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 라스베이거스다. 사람들은 이집트와 중세 영국과 고대 로마의 귀족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슬롯머신 레버를 당겼다. 약간의 비현실감과 알코올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라스베이거스의 호황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상은 어긋나게 마련이다.

‘키치’와 ‘놀이동산’을 넘어

▼ ‘밤의 도시’이니만큼 라스베이거스의 아침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뉴욕이 교통체증에 진저리를 치고 있을 아침 7시, 거리는 텅 비고 자동차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들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숙소인 호텔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이른 시각임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들 빨간색 별이 그려진 같은 무늬의 명찰을 달고 있다. 단체관광객? 아니다. 이 호텔 초대형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한 전자제품 회사 ‘우수직원’들이란다. 모두 일 때문에 온 셈이지만, 라스베이거스의 분위기 탓에 적당히 들뜬 듯하다. 세일즈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는 패트리시아 캐너헌씨는 귀찮음직한 질문에도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답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자주 오는 편이에요. 업계 컨벤션이 많이 열리거든요. 물론 밤에는 쇼도 보고 쇼핑도 하고 게임도 하지요. 회사도 아냐고요? 당연하죠. 굳이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를 두고 여기서 행사를 여는 건 다른 의미가 아니라고요. 직원들에게 일종의 ‘보너스’를 주는 거지요. 다들 가족도 데리고 왔는 걸요.”

승승장구하던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는,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다. 2001년 9·11테러였다. 대륙의 반대쪽 끝에서 벌어진 이 참사는 지갑 가득히 달러를 꽂고 카지노를 향해 날아오던 해외여행객 숫자에 치명타를 날렸다. 강화된 비자 발급 절차와 입국수속, 공항검색 때문에 특히 오일달러를 흔들어대던 ‘큰손’ 중동 관광객이 급격히 감소했다. 블랙잭과 슬롯머신만으로도 떼돈을 벌 수 있던 시절은 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이던 라스베이거스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이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은 컨벤션이었다. 이미 시 당국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던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가 상당수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때마침 미국은 거센 IT 열풍에 휩싸일 때였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IT 비즈니스의 야심찬 도전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실리콘밸리와 로스앤젤레스가 그리 멀지 않은 라스베이거스에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다는 ‘공무’로 이 도시에 온 이들이 밤에 가벼운 술 한잔과 함께 게임을 한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었다. 호텔들은 앞다투어 카지노 건물 옆에 초대형 컨벤션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붙은 라스베이거스의 컨벤션 비즈니스는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총 2만2000개의 컨벤션을 열었다는 이 도시는 이를 통해 6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이들이 쓰고 간 돈만 도박을 제외하고도 76억달러라는 게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선임국장 크리스 메이어씨의 설명이다.

2/4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목록 닫기

시뮬라크르의 공간, 라스베이거스 뜯어보기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