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는 자연과의 합일을 통한 심신수련의 운동이다. 사진은 ‘골프 천재’ 미셸위의 아이언 샷.
이 말에서 깨달음을 얻은 무사시는 자신의 도를 완성한다. 무려 69명의 최고 검객을 상대해 이겼으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자연과 함께하는 경지에 올랐다.
공자의 道, 그대로 적용
골프도 입문할 때는 당연히 기초를 가르쳐주는 선생이 필요하다. 프로에게 배우면 확실히 감각이 나아진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프로 자격을 획득한 사람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배우기 때문이다. 수련자도 마찬가지다. 골프의 프로와 같은 사람에게 수련법을 익히면 확실히 나아진다. 마치 어느 고승 밑에서 득도(得道)했느냐를 따지는 스님의 세계와 같이.
그러나 골프든 수련이든 최후의 스승은 자연이다. 골프에 빠지면 골프를 모르고, 수련만을 위한 수련을 하다 보면 자기집착에 빠져 득도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바다에서 헤엄치면 바다가 넓은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연을 진정한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겸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인간행동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를 잊어버리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생존활동 이외에 인간이 탐닉하는 주요 행위로 놀이가 있다. 어린아이의 소꿉장난부터 어른의 고스톱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사람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다.
놀이의 특징은 한마디로 몰입이고 그 동기는 재미다. 이에 비해 스포츠는 경쟁을 통한 성취감을 추구한다. 놀이가 자신의 내면에 몰입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면 스포츠는 상대와 겨룸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는 어떠한가. 놀이의 극대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하고, 스포츠나 체육의 범주에 넣기도 애매하다. 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형이하학적이다. 그러나 또한 내면세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놀이와 통하는가 하면, 몸이라는 수단으로 느낌세계(이를테면 깨달음 등)를 인식한다는 면에서는 스포츠의 냄새를 풍긴다.
놀이와 스포츠는 모든 움직임의 내면에 흐르는 형이상학적 길을 일컫기 때문에 결국 ‘한다’와 ‘배운다’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도는 ‘닦는다’라는 용어가 적당하다. 이는 몸과 마음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하늘이 준 최적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몸도 더럽고 마음도 더럽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몸은 운동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고, 마음은 욕심을 제거하고 거울같이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만일 몸과 마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놀이나 스포츠가 있다면 그야말로 ‘도를 닦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자가 이야기한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스스로 그러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임, 머리를 비우고 배를 채우라는 도 닦음의 경지에 어울리는 수련적 운동이 있음을 알게 되면 곧바로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운동, 골프가 바로 그러하다.
골프는 내가 심판이 돼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 자연과 아울리는 천지인 사상, 과학과 자연의 결합, 욕심을 다스리는 절제 등 시작부터 끝까지 심신을 수련하는 운동이다. 스윙의 메커니즘에는 기(氣)의 축적과 발산이 있고 퍼트에는 고도의 몰입이 있다.
“거 참 이상하게 안 되네”
골프에는 공자의 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철학이 있어야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으니 지(知)요, 성급함을 달래야 하니 인(仁)이요, 동반자는 절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 신(信)이요, 스스로에 대해 엄격해야 하니 엄(嚴)이요, 아무리 어려운 코스도 내 식대로 공략하니 용(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