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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봉투’에 판결 팔고, 차 할부금은 변호사가…

  • 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로비 안 통하는 법정’ 꿈꾸는 전직 판사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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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개업을 해도 전관예우 관행에 따라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식 속에 동료 및 선후배 법관에게서 십시일반으로 특별대접을 받으며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이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기득권이었다. 여기에는 검찰이건 변호사회이건 뜻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다. 재조(在曹) 경험이 있건 없건 많은 변호사는 이런 체제에서 최대의 경제적 수혜자였다. 사건을 처리하는 판·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의뢰인에게 높은 수임료를 당당히 요구하는 게 우리 법조의 현실이다.

이런 문화 양식과 생존 방식에 의문을 품고 어설프게 비판에 나서는 사람은 범법조(汎法曹)의 아름다운 질서를 파괴하는 질서 문란자로, 용서받지 못할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괘씸죄’라고 하지 않는가. 법조계에선 이것이 우스개 말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이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속삭인다. ‘법조 3륜의 어느 하나라도 타격을 입으면 안 된다’고.

현대판 유민, ‘사법 피해자’

이 거대한 기득권체계에 저항하는 자는 지고지순의 사법부가 생각하는 정의, 어쩌면 초헌법적 정의에 따라 처단돼야 할 대상이 됐다. 국민의 처지를 생각하며 사법부가 이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판사가 자격을 박탈당하는 게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그들은 해당 판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과정에서 헌법 제12조에 따라 보장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하고, 단 한 번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했다. 나아가 언론사 법조 출입팀에 그 판사의 사생활을 조작해 알려주고, 그가 쓴 글은 ‘인격적으로 형편없는 인간의 믿을 수 없는 말’로 둔갑시켜 문제의 확대 재생산을 봉쇄했다. 기자들은 ‘설마 대법원 공보관이 거짓말을 하겠냐’며 그들의 공작에 말려들었다. 속내는 부조리와 모순으로 팽배해 있으면서도 위선과 가식으로 허우대만 잘 챙긴, 그야말로 ‘회칠한 무덤’이다.

이런 도착된 현실에서 많은 ‘사법 피해자’가 생겨났다. 그들은 피를 토하듯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국민고충처리위원회도 그들에겐 손을 든 지 오래다. 사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봤자 대답은 뻔하다. 사법 피해자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막막한 투쟁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판을 통해 재산을 다 잃고 가정이 풍비박산났다는 것, 그리고 거대한 공권력과 싸우며 이 사회의 편견에 휘감겨 살아오느라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는 점이다. 기존 법질서에 대한 끝 간 데 없는 불신감으로 그들 옆에 서면 살의(殺意)가 느껴질 정도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관련 사법부가 가식을 벗어던지고 조금은 진실해질 것을 요구한다. 필자의 눈에 비친 사법부의 관행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한 끼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판결을 팔아버리는 일도 왕왕 있지 않았던가. 재판 날 점 찍어둔 변호사를 가장 뒤에 남게 해 그로부터 식사를 대접받으며 한잔 술로 그날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 회합에서 해당 변호사가 바로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소정외(所定外) 변론’을 행할 때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판사도 인간인 이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실비(室費)니 떡값이니 전별금이니 하는 명목으로 받아들인 돈봉투는 과연 재판부의 노고를 헤아린 순수하고 갸륵한 심정에서 나오는 무채색의 기부일까? 필자가 법관으로 발령받은 후 처음으로 맞은 추석 무렵에 노(老) 변호사 한 분이 봉투를 들고 왔다. 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자 그 분이 보여주던 처량하고 난감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결국 봉투를 받고 말았다. 그런데 점점 봉투를 받는 데 맛을 들였다. 그 후로는 힘든 사건을 잘 판결해줬는데도 인사 한번 오지 않는 변호사는 ‘예의 모르는 변호사’로 낙인찍는 어리석은 판사로 변해갔다.

철면피 판사들

‘김홍수 게이트’에서 적나라하게 불거진 ‘관선변호’는 또 어떤가. 이 용어는 판사 세계에서 은어로 통용된 지 오래다. 사법부에서 선배나 동료 법관이 사건과 관련해 청탁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말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런 선배, 동료, 후배 법관의 등에다 ‘관선변호인’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기란 소위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고문(顧問)판사’란 은어도 있다. ‘고문변호사’에 빗대어 쓰는 말로,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법원 내에서 설치고 다니며 청탁을 일삼는 판사를 가리킨다. 고문변호사보다는 고문판사의 말이 더 잘 먹혀들어가리라는 것은 뻔한 이치다. 우리가 좀더 솔직해지자면 법관들의 비리 연루는 이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고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판사실에서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해 돈 봉투가 오가는 등 판결거래를 하는 형편없는 판사도 있다. 이번에 부장판사가 판사실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보도됐으나, 그런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판결을 놓고 노골적인 ‘거래’를 행하는 판사도 있다. 피고인을 보석으로 풀어주면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해 변호사가 성공보수금을 제대로 챙길 기회를 주고, 판사실에는 봉투를 갖고 오게 한다. 이런 순환적 거래 패턴을 따르지 않는 변호사에게는 더 이상 은전(恩典)이 베풀어지지 않는다. 혹여 변호사가 깜빡해 실수라도 하면 그 뒤 몇 사건은 ‘각오’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절대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다. 조관행 부장판사의 혐의사실을 살펴봤더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사건과 아무 관련 없으면서도 새 차를 샀다면서 변호사들을 하나씩 호출해 대금 일부를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철면피 판사’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돈, 적어도 몇 백만원의 돈을 들고 들어간 변호사는 그 판사가 아주 중요한 사건에서 틀림없이 좋은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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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평 경북대 교수·헌법학, 변호사 lawshi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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