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호

한미 FTA ‘시한폭탄’, 의약품·동식물 검역 협상

美 요구 관철되면 ‘20조 약값 대란’ ‘광우병 재앙’ 불 보듯

  • 강양구 프레시안 과학·환경팀 기자 tyio@pressian.com

    입력2006-09-06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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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FTA ‘시한폭탄’, 의약품·동식물 검역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진실게임’이 반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1월18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고 선언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워싱턴과 서울에서 두 차례의 본협상이 진행되면서 한미 FTA는 전국민이 관심을 갖는 현안으로 대두했지만 날선 찬반 목소리 속에서 그 진행상황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서울에서 열린 2차협상이 끝난 뒤 ‘반대’ 여론이 ‘찬성’을 앞질렀다지만, 국민 대다수는 아직 한미 FTA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한 전문가는 한미 FTA 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한 모 주간지에 쓴 칼럼에서 “아직도 나는 내가 찬성 입장인지 반대 입장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국면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한미 FTA 협상이 좌초할 위기에 처한 것. 7월10일부터 14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에서 열린 2차협상 마지막 날, 미국측은 보건복지부가 5월3일 내놓은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을 문제 삼으며 일방적으로 협상장에서 철수했다. 웬디 커틀러 한미 FTA 미국측 수석대표는 협상장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너지는 건강보험 재정

    “한국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은 한미 FTA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에 앞선 6월15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기자회견이 마련됐다. 국내에 진출한 26개 다국적 제약사의 이익단체인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가 개최한 이날 회견에서 KRPIA는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은 ‘혁신적 신약’을 환자들에게 제공하려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복지부를 성토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언론과 관련 전문가들이 이를 설명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지금도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국민은 드물다. 환자들이 처방받은 약을 구매하면 보통 약값의 20%(중환자는 10%)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책임진다. 현재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은 2만2000여 종.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이 이처럼 많은 것은 지금의 약값 결정방식이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즉 미용·성형 등의 목적으로 쓰이는 일부 약을 제외하고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허가를 받기만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선별 등재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약을 평가해서 효과는 우수하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싼 약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것.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은 지금의 2만2000여 종에서 1만여 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만 한다면 전반적으로 약값이 내려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복지부가 이처럼 수십년간 지속된 약가(藥價)제도를 바꾸려고 나선 데에는 약값 선정 시스템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파산 상태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3.5%에서 2002년 25.2%, 2005년 29.2%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지급하는 약값은 2001년 4조1804억원에서 2005년 7조2289억원으로 73%나 늘어났다. 2002년을 기준으로 각 나라의 진료비 중 약값 비중은 미국 12.9%, 독일 14.6%, 일본 18.4%, 프랑스 20.9%로, 한국(25.2%)보다 훨씬 낮다.

    다국적 제약사의 뻔한 거짓말

    그렇다면 다국적 제약사들은 왜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에 반대할까. 고가의 신약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로서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과 같은 방식이 반가울 리 없다. 이 시스템에 의해 자사의 신약이 그 효과에 비해서 가격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명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결국 환자나 의사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보 재정의 약값 지출 중 59.5%가 다국적 제약사의 몫인 현실에서 건보공단은 그 평가 과정에서 ‘보험을 적용받으려면 약값을 현행보다 내리라’고 다국적 제약사를 압박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이런 다국적 제약사의 반발은 ‘염치’ 없는 행동이다. 복지부가 도입하려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유럽,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이들 다국적 제약사의 ‘본국’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약값 결정방식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의 50% 정도가 가입한 민간의료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민간보험회사들이 보험적용을 인정하는 약의 목록은 2000여 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무가입제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에서 민간보험사의 위력은 우리 건보공단의 그것을 앞선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난리를 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다국적 제약사의 ‘봉’이나 다름없었다. 자기 입맛에 딱 맞게 약값을 결정해오던 다국적 제약사 처지에서는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을 도입하려는 한국 정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에서 취한 ‘폭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령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유일한 치료제인 ‘글리벡’(노바티스社)의 한국 약값은 2만3045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경제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비싸야 한다. 그런데 미국 연방정부(FSS)가 직접 구매하는 글리벡 가격은 1만9135원이다. 미국 국방부, 보훈처, 보건소, 해안경비대(BIG4) 등 4개 기관에서 구매하는 가격은 1만2490원으로 더 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이른바 ‘혁신적 신약’에 대해 한국 정부가 ‘특별 대우’를 해왔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글리벡이나 폐암 치료제 ‘이레사’(아스트라제네카社) 등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한 약 중에서 그 효과가 기존의 약보다 탁월한 것을 ‘혁신적 신약’으로 분류한다. 혁신적 신약에 대해서는 1999년부터 ‘선진 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의 약값을 기준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말이 ‘선진 7개국’이지 실상은 미국의 약값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약의 경우 대부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가 나면 수개월도 못 돼, 유럽보다도 빨리 우리 식약청에서 허가가 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이들 신약의 약값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틈도 없이 정해져왔다는 얘기다.

    미국의 진짜 속셈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복지부가 신약 값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다국적 제약사가 미국 연방정부에 제시한 약값 수록 책자인 이른바 ‘레드북(Red Book)’이다. 하지만 레드북에 수록된 약값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실제 거래가보다 턱없이 부풀려진 가격이라는 주장이 끊이질 않았다.

    예를 들어 미국연방정부나 4대 기관에서 구매하는 약값은 레드북에 수록된 가격보다 40~70% 싼 것으로 알려졌다. 폐암 치료제 이레사의 경우 한국에선 6만2010원인데 비해 미국연방정부가 직접 구매하는 가격(FSS 기준)은 4만9104원에 불과하다. 4대 기관이 구매하는 가격(BIG4 기준)은 3만7960원.

    이런 지적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들은 “미국 정부가 직접 구매하는 가격은 대표성이 없다.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이것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들이 미국에서 거래되는 실제 약값을 직접 밝힌 적은 한 번도 없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된 정부 구입단가가 있는데,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이 그보다 더 비싸게 주고 약을 구매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반발의 수준을 넘어, 자신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줄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다국적 제약사 구하기’에 나선 미국은 우선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통상 현안이 해결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한미 FTA 추진에 목을 맸던 노무현 정부는 덥석 이 ‘미끼’를 물었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노 대통령이 7월21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인정했듯, 4대 선결조건은 한미 FTA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미국과 사전협상을 진행한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등 네 가지 통상 현안을 말한다. 물론 이 안에는 ‘약값 결정 방식의 현행 유지’가 들어 있다.

    한미 FTA ‘시한폭탄’, 의약품·동식물 검역 협상

    7월10일 시작된 한미 FTA 2차 협상에서 악수를 하고 있는 양측 대표(웬디 커틀러-김종훈).

    또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총 17개 분야와는 별개로 ‘의약품 분야 작업반’과 ‘자동차 분야 작업반’을 따로 만들었다. 국제통상 전문가로 한미 FTA 전반을 연구하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커틀러 대표가 ‘작업반(working group)이야말로 한미 FTA 협상에서 독특한 것’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작업반은 한미 FTA 협상에서 대단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미국이 복지부의 새로운 약값 결정방식을 ‘약속 위반’으로 규정하면서 그렇게 자신 있게 2차협상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작업반의 입김 때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차협상이 결렬된 뒤 일각에서는 설득력 있는 다른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 도입을 막는 것이 미국의 진짜 목표가 아니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이렇게 경고한다.

    “2차협상 결렬은 ‘쇼’다. 미국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특허기간 연장이나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의 도입이다. 미국은 애초부터 거부할 명분이 없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양보하는 척하면서 이런 제도를 얻어내 더 큰 실리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복지부는 8월11일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무소불위의 지적재산권 신약특허

    특허기간 연장은 말 그대로 현행 20년인 의약품 특허기간을 더 길게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신약에 대한 특허기간이 끝나고 국내 제약업체들이 복제약(제네릭)을 만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독점적인 이윤을 얻을 길이 차단된다.

    2003년 특허가 만료된 화이자사(社)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가 그 단적인 예다. 특허가 만료된 후 노바스크의 복제약이 쏟아져 나와 현재 이 약의 시장점유율은 66.5% 수준으로 떨어졌다. 만약 특허기간이 연장된다면 노바스크를 생산하는 화이자는 연간 4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것이다.

    이런 사정 탓에 다국적 제약사와 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미국 정부는 특허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은 호주와 FTA를 맺으면서 신약에 대한 심사·승인 기간, 특허 신청에 소요되는 기간 등을 특허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보상해줄 것을 호주 식약청에 요구해 관철했다. 이런 기간을 보상하면 현재 20년인 특허기간이 길게는 3년까지 늘어나게 된다.

    ‘비위반 제소(提訴)’ 제의 도입은 더 큰 문제다. 한미 FTA 협상을 통해 미국은 자국 제약업체가 한국시장에서 좀더 많은 이익을 내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의 약품 가격을 일방적으로 내릴 수 있음을 경고하자 미국은 당황했다. 사실 약값 인하는 한미 FTA와는 상관없는, 한 국가의 정책적 판단으로 보는 게 옳다. ‘비위반 제소’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정부나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한국 정부를 제소할 권리를 주는 제도다. 한마디로 국력이 약한 나라의 공공정책을 미국 정부나 미국 기업이 좌지우지하겠다는 것. 비위반 제소는 놀랍게도 한미 FTA 협상의 ‘지적재산권 분야’에 미국측 요구로 버젓이 들어가 있다.

    비위반 제소가 도입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태가 최근 현실로 나타났다. 3월13일 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 치료제 이레사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약값을 조정해줄 것을 복지부에 요구했다. 4개월의 심사 기간을 거쳐 복지부는 7월18일 “8월부터 이레사의 가격을 현행 6만2010원에서 5만5003원으로 인하할 것”을 결정·고시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약값에 대해 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해 이것이 복지부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제약사 이익에 목매는 美 행정부

    그러자 당사자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총대’를 멨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그 즉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처분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약가인하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행정법원은 결국 7월28일 아스트라제네카가 낸 행정처분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약가인하 집행정지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행정법원의 결정 때문에 이제 환자와 국민은 지루한 법정소송이 끝날 때까지 비싼 약값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비위반 제소’는 바로 이런 상황이 일상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다른 나라가 약값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미국 제약업체들이 얼마나 더 이익을 볼 수 있을지를 계산한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1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타국의 약값 통제를 막을 경우 자국의 제약업체들이 연간 267억달러(약 26조원)를 더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허권 강화 등으로 전세계 의약품시장 규모가 연간 7%씩 급성장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타국의 약값 통제를 통해 미국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은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

    미 상무부가 자국 제약사의 이익에 이처럼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의 공화당 행정부와 다국적 제약사의 강한 유착 관계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국적 제약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미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소속 빌리 타우진 전 공화당 의원이 현재 미국제약협회 회장으로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미국 정부에 있어 이러나저러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한미 FTA 2차협상이 한창이던 7월12일, 미국 내 보건의료를 포함한 지식산업 분야의 비정부기구(NGO)인 ‘기술에 관한 소비자 프로젝트(CPTech)’의 제임스 러브 사무국장은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정부의 목표는 미국 제약업체에서 생산한 약의 한국 내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정부든 약값을 통제하거나 약의 특허권 보호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국제기준 수립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한국인에게 전한 메시지는 ‘미국의 제약업체들이 원하는 가격이라면 그게 어떤 수준이든 한국 국민이 그대로 지불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가 만들려는 국제기준은 한국인에게 해악을 끼칠 뿐 아니라 미국 스스로도 높은 약값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국민건강 위한 스위스의 선택

    이러한 미국의 국제기준을 받아들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이런 국제기준을 모두 받아들여 의회 인준만을 남겨놓은 페루의 경고는 섬뜩하다. 페루 보건부는 “FTA 체결 1년 뒤 약값이 9.7%, 10년 뒤엔 100%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한미 FTA 방식으로 추산하면 한국 국민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약값은 1년 뒤 최소 1조원, 10년 뒤에는 10조원이 된다. 2005년 현재 우리 국민의 약값 지출(본인 부담금+건강보험 재정 지출) 규모가 약 1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국민은 10년 뒤 매년 20조원의 ‘약값 폭탄’을 얻어맞는 셈이 된다.

    한미 FTA는 국민 각자의 주머니와 건강보험료 부담만 커지게 하는 게 아니다. 7월11일 건강세상네트워크, 녹색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환경운동연합 등 20여 시민단체는 “한미 FTA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미 FTA의 한 분야로 포함돼 있는 ‘동·식물 검역’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이전부터 자국의 농·수·축산물에 대한 검역 기준을 완화할 것을 계속 요구해왔다. 미국에서 안전하다’고 검증했으니 ‘군말’없이 수입해서 먹으라는 주장이다.

    2차협상 때는 동·식물 검역과 관련된 ‘상설위원회’ 설치가 양국 간에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여전히 견해 차이가 있어 정해진 게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상설위원회 설치는 기정사실화했다는 게 전문가 그룹의 공통된 견해다.

    이 상설위원회에서는 어떤 사안이 논의될까.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부시 대통령과 미 의회에 보낸 ‘2006년 무역 장벽 평가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유전자 조작 작물(GMO)과 관련된 내용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GMO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2005년미국의 GMO 재배면적은 4980만ha에 달해 세계 GMO 재배 면적의 약 55%를 차지했다. 2005년 말 현재 미국에서 재배된 콩의 87%, 옥수수의 52%, 목화의 79%가 GMO로 추정된다.

    이렇게 GMO 재배가 대세가 된 미국 농업은 지금 큰 위기에 빠져 있다.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에서 GMO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커지면서 ‘GMO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2001년 3월부터 콩, 콩나물, 옥수수, 감자 등에 대해서 GMO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동·식물 검역 상설위원회가 설치되면 GMO 표시제 폐지를 관철하려고 온갖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국 정부는 2003년 3월 미국산 생감자에 대해서 GMO 표시제를 면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이 역시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의 성과였다.

    한미 FTA ‘시한폭탄’, 의약품·동식물 검역 협상

    백혈병의 유일한 치료제인 글리벡의 약가 인하를 주장하며 시위 중인 백혈병 환자들.

    이와 관련해 스위스 당국의 대처는 시사적이다. 한국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2월 초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바로 GMO 표시제 때문이었다. “미국산 농산물에 대해서는 GMO 표시제를 배제하라”는 미국측의 집요한 요구를 스위스 정부는 “국민의 반대 여론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끝내 거부한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2005년 11월 유전자 조작 동·식물의 국내 사육 재배를 허용하느냐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투표자의 56%가 ‘반대(5년간 허용 유예)’를 선택했다.

    과연 한국 정부도 먹을거리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 여론에 따라 스위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6일 쇠고기 수입금지 국가 대상에서 광우병 감염 소가 발생한 미국을 제외함으로써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미국과 함께 광우병이 발생한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수입을 계속 금지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만 면죄부를 준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한미 FTA 협상의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인 점을 두고 볼 때 미국에만 ‘특혜’를 줬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acceptable risk’

    1990년 5월16일, 당시 영국의 존 검머 농무부 장관은 “영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감염에서 안전하다”며 자신의 네 살짜리 딸을 데리고 영국산 쇠고기가 든 빵을 전 국민 앞에서 먹었다.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가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을 유발한다는 대중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5년 뒤인 1995년 영국에서는 인간광우병에 걸린 19세 청년이 최초로 사망했다. 현재 영국에는 1만4000여 명이 인간광우병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세계 인간광우병 환자의 90%가 영국인이다.

    영국에서 16년 전에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4월2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놓고 열띤 찬반 토론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일원으로서 수입 재개를 지지하는 ‘전문가’가 다수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 자리에서 경북대 수의대 안수환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acceptable risk(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위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에 있어 한국 정부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한 일본의 도쿄대 의대 가네코 기요토시 교수는 이와 관련해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렸다. 그는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문에 응하는 정부 위원회의 수장으로 활동하다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광우병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쪽으로 방침을 정하자 이에 반발해 위원회를 전격 탈퇴함으로써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감염 위험으로부터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 미국 내에서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광우병 감염 소가 확인됐지만 일본처럼 모든 소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일본·한국 정부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지 않을 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국민을 광우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초래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일본·한국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일본·한국 정부는 ‘acceptable risk’와 같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민을 속이고 있다.”

    가네코 교수의 지적은 농림부 내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9월8일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에 참가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1% (광우병) 병원체의 유입 가능성도 염려해야 한다. 발생국이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수입을) 배척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막아야 한다.” 이런 농림부 안팎의 우려는 2005년 12월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잦아들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미 FTA ‘시한폭탄’, 의약품·동식물 검역 협상

    2003년 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함에 따라 검역관과 수의사가 미국산 쇠고기에 ‘출고금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농림부는 3월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공식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위생 조건’을 발표했다. “도축 소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또는 치아 감별법에 의해 30개월 미만으로 판정된 것이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 ‘치아 감별법’은 소의 나이를 서류상으로 확정할 수 없을 때 치아를 보고 나이를 짐작하는 방법으로 미국 소의 80%가 나이를 확인할 서류가 없음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이는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감별의 정확성을 두고 수의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방법이다. 이런 농림부의 결정이 확정된 지 불과 일주일 뒤인 3월14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세 번째 광우병 감염 소가 확인됐지만 정부의 수입 재개 방침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 주장 뒤집는 증거들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홈페이지에서 인간광우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말기에는 소 광우병과 같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리는 증상을 보이며 죽게 된다. 잠복기는 길어 때로는 감염된 지 몇십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3개월에서 1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현재로는 치료 방법이 전혀 없다.”

    문제는 아주 미량의 감염된 뇌 조직이라도 광우병을 전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조직 1㎎을 먹은 소 열다섯 마리 중 한 마리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발병 원인 물질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고온에서도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 쇠고기를 굽거나 삶아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소의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 의약품도 광우병 감염 위험이 있다.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사례도 1997년 8월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24세의 영국 여성을 보자. 이 여성은 11년 동안 육류를 전혀 섭취한 적이 없는 채식주의자였다. 육류라곤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이 광우병으로 사망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답은 바로 그녀가 먹은 채소류에 있었다. 좀더 정확하게는 그 채소류의 비료로 쓰인 닭똥이 문제였다.

    광우병 소의 사체를 이용해 만든 ‘동물성 비료’가 닭에게 공급됐고, 그 닭의 똥은 식물 재배를 위한 비료로 사용됐다. 결국 광우병 유발 물질이 광우병 소, 닭, 식물을 거쳐 이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5년 2월 인간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초로 발생했다. 사망자는 50대 남성으로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숫자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0년대 일시적으로 영국에 체류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인간광우병 ‘공식’ 사망자가 보고된 바 없다. 그러나 인간광우병 ‘비공식’ 사망자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은 인간광우병 증상으로 사망한 36세 환자에 대해서 결국 최종 판단을 유보했다. 당시 인천의 또 다른 병원에서도 40대 환자가 인간광우병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으나 역시 최종 판단은 유보됐다. 인간광우병 확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부검에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은 탓에 생긴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과연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위험’인가.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맞춰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하고 있다”며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7월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공식 재개한 일본은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을 수입하기로 했다. 미국 협상단이 일본의 이런 기준 강화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2001년 6월 광우병 감염 소가 처음 발견되자 일본 정부는 아예 모든 소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1개월, 23개월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됐다. ‘30개월 미만’이 결코 안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살코기만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할 증거는 너무 많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는 “최근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 32명 중 8명의 근육에서 변형 프리온이 발견된 사실이 보고되는 등 살코기에도 변형 프리온이 있을 것이라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도 “유럽에서는 쇠고기 살코기를 먹인 고양이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됐다”며 “과학계에서는 살코기에 인간광우병 유발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섞여 있는 것을 공인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최근의 연구 동향을 설명했다.

    또 ‘사이언스’ 7월7일자에는 “변형 프리온이 혈액 순환계를 통해 심장에 유입됨으로써 새로운 유형의 심장병 발생 원인이 된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혈액이 드나드는 살코기도 결코 광우병 감염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연구 결과다.

    최근에는 수혈을 통해서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3건이나 보고돼 이런 연구 결과에 힘을 실어준다. 영국에서는 2003년 12월 수혈을 통한 인간광우병 감염 환자가 처음으로 확인된 데 이어 2006년 2월에는 수혈을 통한 세 번째 인간광우병 감염 환자가 보고됐다. 이와 관련해 영국 언론 ‘가디언’은 3월27일 “인간광우병이 수혈, 외과 수술 장비 등을 통해 과거에 알려진 것보다 더욱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민의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쇠고기 수출은 ‘필수 공약’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왜 세계적 석학들의 경고에도 쇠고기 수출에 이토록 집착할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 감염 소가 확인되기 전까지 한국은 일본, 멕시코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의 3대 수입국이었다. 미국은 연간 39억달러(약 4조원)어치의 쇠고기를 수출해왔는데 한국은 그중 20% 정도인 8억달러(약 8000억원)어치를 수입해왔다. 연간 막대한 손해를 봐온 미국 축산업계로서는 한국, 일본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꼭’ 이뤄져야 할 일이었다.

    부시 행정부 처지에서는 더 다급한 이유가 있다. 2000년 대통령선거 당시 미국의 축산업계가 기부한 공식적인 선거 자금은 460만달러. 이 가운데 약 79%가 공화당에 집중됐다. 2004년 대통령 선거 때도 축산업계가 기부한 선거자금의 80%는 공화당으로 흘러간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11월7일 상원과 하원의원의 상당수를 교체하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네브래스카, 몬태나, 미주리,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오클라호마, 위스콘신, 텍사스, 캔자스, 캘리포니아 등 축산업 비중이 높은 10개 주의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서는 한미 FTA를 통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선택 공약’이 아니라 ‘필수 공약’이 돼야 한다.

    이런 다급함을 증명하듯, 8월4일 미국 상원의원 31명은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한미 FTA 협상이 끝나기 전 반드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돼야 한다’는 내용의 경고서한을 보내왔다. 이들은 노 대통령에게 ‘한미 FTA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필수적’이라며 ‘우리의 요구에 응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지 않을 겨우 한미 FTA가 무산될 수도 있음을 대통령에게 직접 경고한 것이다.

    미국 축산업계의 대(對)정부 로비 및 압박 양상은 3월14일 USTR 주최 공청회에서 미국 축산업계 대표 잘레스키가 한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이 완전히 재개된 다음에야 한미 FTA의 1차 본협상을 개시하기 바란다.”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미 상원의원들이 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실상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보낸 편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 축산업계 로비의 희생양은 한국의 현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가 될 공산이 크다. 잠복기가 길게는 30~60년인 광우병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결정한 ‘어른’들이 죽은 후에야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어른들이야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고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학교급식의 쇠고기 반찬에 노출될 우리 아이들은 이를 선택할 능력도 힘도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약가 마진과 쇠고기 수입 재개라는 큰 이득을 얻었다. 반면 한국은 자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거덜낼 수 있는 큰 협상카드를 너무 쉽게 잃거나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큰 대가를 치르고 포기한 것에 대한 보상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 진출’,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등, 정부 관계자들이 온갖 장밋빛 전망을 연일 쏟아내는 데도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보고 “저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고 외쳤다. 비싼 약값 때문에 서민들이 죽어가고, ‘광우병 대공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막연한 기대만을 갖고 한미 FTA를 밀어붙이는 정부와 협상단은 예수의 이 마지막 절규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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