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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1인당 GDP 2008년 2만달러, 2014년 3만달러 가능”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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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리더’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 삼성그룹이 8000억원을 사회복지기금으로 내놓았고 현대자동차도 1조원을 출연했는데요.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총수가 구속되는 와중에 기부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기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타이밍에 문제가 있죠.”

답변의 길이가 질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짧은 경우도 있다. 인터뷰이가 말을 쾅쾅 해야 인터뷰가 재밌는데…. 평생 기업을 경영하면서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습관이 체질화한 것 같다.

그의 고교시절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유행 같은 것이 있었다. 그도 2학년 때인 1957년 서울 법대에 합격하면서 경기고를 중퇴했다. 나중에 명사가 되면서 경기고 명예졸업장을 받긴 했다.

삼성에 들어간 사연



경기고 동기로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한승주 전 주미대사, 방송인 김동건씨 등이 있다. 서울대 법대 동기로는 최종영 전 대법원장,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 정구영 전 검찰총장, 하경철 변호사가 있다.

그는 한일은행에서 3년 동안 근무하다 미국에 건너가 오클라호마 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했다. 귀국하는 길에 일본에 들러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인사를 드렸다. 이 회장은 1967년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한 뒤 도쿄에 머물면서 새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 달 뒤 이 회장이 그를 비서실로 불러들였다.

그는 비서실 신규사업팀에서 삼성의 신수종(新樹種) 산업을 연구하는 일을 맡았다. 상무 팀장에 팀원은 그를 포함해 3명이었다. 이 회장은 전자공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신규사업팀은 이 회장의 구상을 보완, 발전시키는 일을 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타당성 조사를 했다.

이병철 회장의 가르침

▼ 지금 삼성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1960년대에는 전자사업의 미래를 점치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우리는 전자산업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리라고 봤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거대한 해외시장이 있다고 판단했죠. 당시 전자는 조립산업이었죠.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죠.”

정부에서 광주에 있는 아세아자동차를 인수하라고 삼성에 권유했다. 신규사업팀은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올렸다. 그러나 이 회장은 사업 전망을 밝게 보지 않아 없던 일로 됐다.

손 회장의 부친(손영기)은 농림부 양정국장, 경기도지사 서리(署理)를 지냈다.

▼ 삼성가와 사돈을 맺게 된 사연이 궁금하군요. 이병철 회장이 맏며느리를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했을 거 같은데….

“아는 분이 중매해 자연스럽게 됐어요.”

▼ 매형(이맹희)은 건강한가요.

“천식이 있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경영에는 일절 관여 안 하시죠.”

이맹희씨는 한때 삼성그룹의 경영을 책임지는 ‘황태자’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대통(大統)을 이어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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