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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⑨

‘미국적 계몽주의’의 표상 토머스 제퍼슨의 집 ‘몬티첼로’

‘포용과 실용’으로 승화한 국부(國父)의 양면성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화 mshin@snu.ac.kr

‘미국적 계몽주의’의 표상 토머스 제퍼슨의 집 ‘몬티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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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계몽주의’의 표상 토머스 제퍼슨의 집 ‘몬티첼로’

몬티첼로 앞에 조성된 정원. 꽃과 나무 하나하나에 제퍼슨의 손길이 담겨 있다.

유럽으로부터의 해방, 내추럴 브리지

정계에 진출하기 1년 전인 1767년, 우연히 이 지역을 지나다가 내추럴 브리지를 발견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제퍼슨은 이곳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독립혁명이 발발하기 직전인 1774년 이 일대를 매입해 자신의 소유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공사관 서기 마보와(Fran뛬is Barb?Marbois)의 질의에 대한 답으로 쓴 ‘버지니아 주에 대한 비망록’(1787)에서 제퍼슨은 내추럴 브리지를 다시 거론하며, 이를 구세계 유럽과 달리 광활하고 풍요한 ‘자연의 나라,’ 미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야생적 자연의 상징으로 클로즈업시켰다.

그는 내추럴 브리지를 ‘장엄한 자연의 역사(役事)’로 찬탄하면서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정신을 압도하는 숭엄한 감정이, 아래에서 하늘로 솟구쳐 있는 아름다운 아치를 올려다볼 때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경으로 바뀐다고 기술했다. 칸트의 숭고미학에 의탁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토로하는 제퍼슨의 태도는 식민지 시대를 청산하고 갓 독립한 신생 공화국의 달라진 자연관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청교도들의 눈에 비친 ‘야생 짐승과 야만인으로 가득 찬 무시무시하고 황량한 황야’도, 문명의 행진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아니다. 신대륙의 굽이치는 야생 자연은 유럽의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을 상쇄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새로운 문명의 창출과 번영을 약속하는 신생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새롭게 주목된 것이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서 ‘자연과 자연의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를 빌려 독립을 정당화한 제퍼슨은 1801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독립혁명의 소산인 신생 공화국은 유럽의 낡은 역사의 짐을 벗고 자연과 성약(成約)을 맺은 나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다시금 천명했다.



성서에 입각해 형성된 신앙 공동체는 이렇게 독립과 더불어 자연법에 입각한 공화주의 공동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제퍼슨의 하나님은 이제 저 무서운 칼뱅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성적 질서를 통해 그 존재성을 드러내는 자연의 하나님이었다.

건국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국가주의 수사의 원천이 되면서 자연은, 특히 신대륙의 광활한 자연의 야생성은, 이제 번영을 약속하는 표상으로서 신생 공화국의 자긍심의 원천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연의 경이를 과시하는 내추럴 브리지를 거쳐 몬티첼로로 향하는 여정을 재촉했다. 다시 주간고속도로 81번을 타고 달리다가 곧 동서로 달리는 64번으로 갈아 탄 후 20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니 이윽고 몬티첼로 방문자 안내소였다. 내추럴 브리지를 떠난 지 한 시간 반 만이다.

안내소에서 우리는 ‘토머스 제퍼슨, 자유의 추구’라는 안내 영화를 잠시 보고 안내 책자를 얻은 다음 몬티첼로로 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몬티첼로는 그곳으로부터도 2마일이나 떨어진 산정에 있었다.

서부를 보고 루이지애나를 사다

몬티첼로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산’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주변이 경작지로 개발되고 도로도 잘 닦여 있어서 집이 자리잡은 산정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에는 숲이 울창하고 산등성이 또한 가파르고 거칠어 산정까지의 등정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산정의 높이가 해발 867피트이니 사실 낮은 것도 아니다. 몬티첼로는 그냥 집이 아니라 주변 약 5000에이커에 이르는 상당히 넓은 플랜테이션(재식(栽植)농업)의 중심이었다.

플랜테이션을 산정에 세우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관습을 깨는 행보 속에 자연을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주시한 제퍼슨의 자연관과 더불어 그의 실험정신, 다시 말해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뚜렷이 드러나 있다. 야생의 자연과 거기에서 발견하는 건강한 자연미에 대한 관심은 제퍼슨의 일생을 지배했다. 그는 블루리지 산맥 너머로 여행해본 적이 없지만 그 너머 광활한 서부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을 가졌고, 이것이 곧 신생 공화국 경영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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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화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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