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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X-파일 사건’ 핵심 3인방 증언

‘X-파일 제작자’ 공운영 전 안기부 미림팀장 검찰진술

“대통령 빼고는 다 도청 대상이었다…폭우 속에 국정원 내쫓기던 날 피눈물 흘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X-파일 제작자’ 공운영 전 안기부 미림팀장 검찰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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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팀 활동의 불법성 : 맨 처음 활동 땐 대개 유흥업소 망원들로부터 득문 활동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91년 9월 내가 미림팀의 과학화라는 명목으로 장비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도청에 대한 처벌법규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1993년 12월27일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됨으로써 미림팀의 도청활동은 불법이 됐다.

▲보고체계 : 공식 보고체계는 정보수집과장-부국장-국장-차장-부장(원장)이다. 처음에는 계통을 따라 보고하다가 오정소 국장이 등장한 이후로는 직접 국장에게 보고했다. 오정소씨가 차장이 됐을 땐 직접 차장에게 보고했다. 일부가 눈치를 주면 그 사람에게 간혹 문건을 사본해 주기도 했다. 기조실장 등 방계에는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

“식당측이 알아서 도청해주기도”

공씨는 “안기부 내의 같은 부서 직원뿐만 아니라 국내 활동 요원들은 모두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안기부로 개칭된 후까지 미림팀이 어떤 조직이며 무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전담 조직이 주요 인사를 불법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안기부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얘기다. 미림팀의 존재가 안기부 내에서 알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공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림팀은 다른 조직과 달리 밀폐된 단독 사무실과 안가를 사용했다. 미림팀장 차량 역시 고급 승용차에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선탠을 했고 차량에 중형 수신기 안테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당직 근무자나 직원들은 미림팀장이 안가에서 철야 업무를 끝낸 후 보고서 초안을 갖고 녹취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새벽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을 매번 목격했다. 미림팀이 어떤 조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유흥업소나 호텔, 한정식집 등지에서 주로 ‘통신’을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조직으로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다.”

1차 미림팀은 1992년 9월 대선을 3개월 앞두고 안기부 국장의 지시로 활동이 중지된다. 공운영 당시 팀장은 이 때부터 대기발령을 받았다. 공씨는 국장에게 자신을 무보직 발령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나 국장은 “미림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공씨를 냉정하게 대했다고 한다.

1994년 6월7일 오정소 당시 대공정책실장은 공씨를 다시 불러 미림팀을 재조직하라고 지시했다. 공씨는 거절했으나 오 실장은 “승진을 시켜주겠다”며 공씨를 설득해 공씨는 다시 일을 맡게 됐다고 한다. 오 실장은 나중에 공씨를 서기관으로 승진시켰다. 공씨는 “미림팀은 국정원 내부 이외의 별도의 보고체계를 가동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오정소 실장의 보좌관이던 김모씨는 언론 등을 통해 “도청 자료들이 오 실장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 등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공씨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도청자료의 보관 : 미림팀 사무실에 있는 공용 캐비닛 안에 날짜별로 구분해 보관했다. 2, 3부의 녹취보고서를 만들어 상급자들에게 건넸으며 보관된 자료는 3개월 주기로 소각장에서 폐기처분했다.

2차 미림팀은 1997년 12월 대선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그런데 2개월여 뒤인 1998년 2월까지 미림팀이 도청을 했다는 자료가 나왔다. 이에 대해 공씨는 “대선 이후로는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했는데 그 후로도 망원들이 ‘스스로’ 녹음을 하여 나에게 연락해왔다. 그래서 내가 1998년 2월 이를 수거하여 집에 가져다놓은 것이 좀 있다”고 설명했다.

“호남 출신 직원들과 불화”

공운영씨는 도청 자료를 빼내게 된 동기에 대해 말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상관의 냉대, 조직에 대한 배신감, DJ 정부로의 정권교체에 따른 불안감 등이 작용했다고 한다. 특히 국정원 내에서 ‘호남 출신 직원’의 득세를 보며 신변보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공씨는 정권 교체 얼마 뒤 직권면직 처분됐다. 1990년대 국정원에서 일어난 지역감정 갈등 논란이 공씨 사례에서도 묻어나는 듯하다.

국정원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1999년 3월 ‘조직개편에 따른 정원 대비 초과현원 직권면직 처리를 위한 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위원장은 라종일 1차장, 신건 2차장, 문희상 기조실장 3인이었다. 직권면직처분의 기준으로는 정년 임박자, 목적 외 채용자, 직무수행능력 부족자(건강, 판단능력, 근무태도 불량, 자질부족, 업무능력 부족, 지휘통솔력 부족, 근무성적 부족, 정신자세, 대인관계), 징계처분 등 처벌 전력자, 발전가능성 등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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