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결혼 중개업체는 현지 농촌지역을 돌며 여성을 모집해 한꺼번에 수십명씩 합숙시키면서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온 남성들에게 맞선을 주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맞선 상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들을 수 없고 남성에 의해 선택돼야만 비로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보라는 것도 나이와 경제력, 직업, 가족관계 등으로 매우 빈약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허위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선을 볼 때 통역자는 남편이 기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약혼한 적이 있으며 한 달 수입이 200만원이라고 했다. 근데 한국에 와서 보니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공사장 일용노동자였다. 또 나와 결혼하기 전에 몽골 여성과 결혼했었는데 그 여성이 자해소동을 벌여 이혼했다고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연구용역 의뢰로 지난해 베트남과 필리핀 현지 실태조사를 다녀온 고현웅 소장에 따르면, 한꺼번에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여성과 맞선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여성은 자신이 만나는 남성의 국적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날아온 남성들을 상대로 하루에도 수차례씩 맞선 자리에 불려 나가기 때문이다. 결혼중개업체에 의해 합숙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은 임의로 합숙소를 벗어날 수도 없고 자신을 점 찍은 남성과의 결혼을 기피하면 합숙에 들어간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 자유의사로 결혼 상대를 고르기 쉽지 않은 실정이라는 것이다.
고 소장이 베트남에서 만난 어떤 여성의 고백이다.
“합숙소에서 4개월씩 기다리기도 하는데, 선보는 중간에 포기하면 한 달에 3만원가량 되는 밥값을 물어내야 한다. 합숙할 때 신분증을 맡기기 때문에 몰래 도망가지도 못한다. 나도 계속 선을 봤는데 (결혼 상대자로) 합격하지 못하니깐 마음이 불안했다.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 밥값 내기도 힘들고 해서 눈 딱 감고 결혼했다.”
이처럼 중개업체의 조직적인 연결망에 의한 여성 모집과 관리, 통제는 국제법에서 정한 인신매매적 속성을 띠고 있다. 결혼 상대로 선택되면 현지에서 남성과 합방하게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남성이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을 파기해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은 여성들도 있다. 고 소장은 “1000만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중개업자에 의한 국제결혼은 여성의 몸과 인격이 구매 가능한 ‘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남성이 여성을 삶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소유물로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국인 며느리의 임신이 늦어지자 “비싼 이 ×이 돈값도 못한다”고 폭언을 퍼붓거나 부부싸움에서 남편이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며 윽박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한 남성은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19세 아내를 중개업자 집으로 보내고 자신이 낸 중개비용을 돌려달라고 소비자보호원에 진정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