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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16

‘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한 달 만에 1000배 뛴 땅값…“나진에선 개도 지폐 물고 다닌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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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종단항 결정 직후의 나진 풍경을 묘사한 1932년 11월의 잡지 기사.

길회선은 세 간선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었다. 쓰루가에서 소련의 지배하에 놓인 위험천만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대신 종단항과 길회선을 통하면 창춘, 옌지까지 안전하고 거리상으로도 더 짧게 갈 수 있다. 모지와 다롄을 연결하는 황해항로와 비교하면 이동 거리를 무려 30% 이상 줄일 수 있었다. 황해항로로 사흘 걸리던 여정이 길회선을 이용하면 이틀이면 주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길회선이 완공되면 일본과 대륙 사이의 교역은 대부분 종단항을 통해 이뤄질 것이 분명했다. 이론상으로 길회선 종단항은 남만주철도 종단항 다롄보다 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터였다. 인구 100만의 다롄보다 더 크고 부유한 도시! 그것이 길회선 종단항의 장밋빛 미래였다.

1909년 중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면서 그때까지 조선 땅이던 간도와 길회선 부설권을 맞바꿨을 만큼, 일본은 길회선을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길회선이 착공된 지 10여 년이 지나도록 어느 항구를 종단항으로 삼을 것인지는 결론을 보지 못했다. 16년이 지난 1925년에야 겨우 청진, 웅기, 나진 세 곳의 후보지를 발표할 만큼 종단항 건설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어느 항구로 결정하든 조금씩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결국엔 청진이 종단항으로 선택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지만, 청진이 종단항으로 최적의 입지조건이었다면 그처럼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을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청진은 1925년 당시 함경북도에서 가장 큰 항구였으나 청어와 정어리잡이 고깃배들이 이용하는 어항으로 개발됐다. 함경북도에서 나오는 목재를 원만히 반출하기에도 협소한 청진이 만주와 중국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물자를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입지조건상 조선의 지방항구로는 손색이 없지만 8000t급 대형 선박 수백척이 한꺼번에 정박해야 하는 국제적 대항구가 되기는 역부족이었다.

웅기는 한일강제합방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군항으로 개발된 항구였다. 항만시설이 청진에 비해 새것이라는 이점이 있었지만, 청진과 마찬가지로 항만이 협소하고 물살이 세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청진에 비해 도시기반시설도 부족했다.



청진과 웅기가 종단항 후보지로 10여년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나진이 제3의 후보지로 선정된 것은 청진, 웅기 등 기존의 항구가 그만큼 종단항으로서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진은 만철(만주철도)과 항만협회 기사들이 10여 년 동안 함경북도 해안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천혜의 항구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나진만은 관동령의 비탈이 낮아짐에 따라 해면이 넓어진다. 동남으로 터진 나진만의 어귀에 형이냐? 아우냐? 대초도와 소초도가 무슨 약속이나 있듯이 바깥 바다의 파도를 가로막고 있다. 만(灣)의 가장자리에서 바깥 바다를 볼 수 없어 바다라기보다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동에서 북, 북에서 서, 좌우로 말발굽모양으로 휘어진 해안선을 안고 나진동, 간의동, 신안동, 명호동, 유현동이 붙어 있고, 바깥 바다를 내다볼 여지도 없이 만 가장자리는 나지막한 평원한 지대다. 인위적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천연적으로 생긴 나진만은 1년에 900만톤의 화물을 처리할 대항만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항만 해면의 면적이 2000만평에 가깝다 하거니와 만 가장자리에서 한번 바라보면 타원형으로 생긴 해면은 맑은 날이 아니면 광활한 해면을 전부 시야에 끌어들일 수 없을 만치 크고 창창하다. (‘종단항 나진 답사기’, ‘동아일보’ 1932년 11월13일자)


1925년 가을 답사를 위해 나진을 방문한 김기덕은 한눈에 나진이 항구로서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매료됐다. 나진만을 가득 채울 수백척의 대형 선박과 나진동, 간의동, 신안동, 명호동, 유현동 일대를 가득 채울 30만~40만의 인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물과 허허벌판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폐가인지 사람 사는 집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허름한 초가집이 10여 채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신안면에 들어와 간의동에서 면사무소와 주재소, 보통학교를 본 이후 사람 사는 것 같은 마을은 한 곳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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